우리 부부가 불후의 명탐정 셜록 홈즈의 고향인 런던을 찾은 것은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했다.

나는 런던이 초행 길이지만 아내는 여러 번 드나들던 곳이다. 화가인 아내는 직업상 유럽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나는 명탐정의 본고향을 방문했다는 생각 때문에 약간은 흥분해 있었다. 우리는 피카딜리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랭햄이라는 조그만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내가 전에 왔을 때 몇 번 묵었던 호텔로, 영국의 고풍스러운 멋이 곳곳에 배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삐거덕거리며 천천히 오르내리는 불안한 엘리베이터라든가 그을음이 매달린 벽난로, 고풍스러운 로비의 낡은 의자 같은 것이 어쩐지 노재국 영국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는 템즈 강 변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여보, 저기 강 건너 좀 봐요. 환상적이죠!”
아내가 창밖으로 보이는 강변의 의사당을 가리켰다.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이런 나라에 살면 추리소설이 저절로 쓰이겠어!”

내가 감탄스럽게 말했더니 아내는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불가사의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아요?” 말이 씨가 된다고 아내의 이 말은 정말 우리에게 이상한 사건을 가져오고 말았다.
나는 이튿날 셜록 홈즈 기념박물관을 가 보기로 했다. 런던에는 소설 속의 인물인 셜록 홈즈를 실제 인물처럼 대접해 그가 살던 집을 비롯해 각종 기념물이 수두룩했다.

아내는 마침 여기서 학위를 받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와 있는 동창생 남연숙을 만나러 간다고 했기 때문에 나 혼자 나서야만 했다. 그녀는 호텔을 나서면서 평소에 끼고 다니던 꽤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 반지며 진주 목걸이 등을 호텔 계산대에 맡겼다.

배이커가 221의 B에 있는 셜록 홈즈의 기념박물관을 찾아갔다. 거기에는 관광객이 백 미터도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이곳은 소설 속에서 홈즈가 살던 곳일 뿐인데 세계 각국에서 매일 수없이 많은 편지가 이곳 홈즈 앞으로 왔다고 한다. 마침내 여기에 박물관을 만들어 관광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놀란 것은 그 많은 관광객 중에서 한국인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고리타분한 박물관보다는 백화점이 더 인기일 테니까.
어쨌든 혼자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고 내 이름이 영자로 쓰인 밀봉 봉투 한 장이 내 방 문틈에 끼여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를 벌벌 떨게 하는 것이었다. 영어로 타이핑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생 런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선생 아내의 귀중품을 호텔 로비에 맡겨두었지요. 그것을 찾아서 다음 장소로 오십시오. 챠링 크로스 역 서쪽 아파트촌을 돌아오면 노던 바란드가 10번지에 ‘더 셜록 홈스’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거기로 19시까지 오십시오. 이 일을 경찰에 알리면 당신 아내를 다시 보긴 어려울 것이오. 당신 아내는 그 시간에 축구 야간경기 게임을 보고 있을 것이오. 모리아티로부터

모리아티란 셜록 홈스 소설에 나오는 악인이다. 아내의 패물을 맡겨둔 거를 안다든가, 아내가 축구 애호가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보아 거짓 협박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하얗게 질린 채 침대 위에 걸터앉아 생각해 보았다. 편지의 지질이며 글투를 세밀하게 분석해 보았다.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가 지시한 시간에 맞추어 아내의 패물을 가지고 ‘더 셜록 홈즈’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자그마하고 깨끗한 레스토랑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홈즈의 팬들이 웃고 즐기는 낭만적인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내가 찾는 사람, 40대의 동양 여인이 혼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여자 앞으로 걸어가서 눈인사한 뒤 말을 걸었다.

“한국서 유학 오신 남연숙 씨지요?” “어떻게 아셨지요, 선생님?” 그녀는 당황했으나 곧 웃음을 띠었다. “아내는 어디 있지요?” 그는 2층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은 셜록 홈즈의 냄새가 더욱 짙은 레스토랑이었다. 아내는 빨간 장미꽃이 꽂힌 예약된 테이블에 앉아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져온 액세서리로 예쁘게 치장했다. 아내가 그렇게 예뻐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당신이 이리로 오실 줄 알았죠. 나의 저녁 초대 방법 재미있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죠?” 남연숙도 앉으며 물었다.
“그 협박장에 쓴 영어 단어를 보고 알았죠. 영국 사람은 ‘아파트’라 든지 ‘밤 경기’같은 코리아식 영어는 안 쓰거든요.”
“과연 추리작가님이셔. 호호호”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만찬을 즐겼다.
 

[작가 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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