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대표
김대진 대표

지난 4일 방송인 사유리 씨의 결혼 없는 출산, 이른바 “비혼 출산” 소식이 전해지며 우리 사회에 “전통적인 가족과 출산”에 대한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그동안 우리에겐 결혼 적령기의 청년을 향해 결혼·임신·출산을 거치는 “정상적인” 가정 탄생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요즘 결혼 적령기의 청년들에게 결혼·주거·육아 등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게 작용하면서,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비혼(非婚)주의가 팽배하게 퍼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은 다양한 가족 관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 필요성과 결혼·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그리고 가장 사적인 가족 영역에 대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엄청난 의제를 던진 셈이다.

한국에서도 사유리 씨와 같은 체외수정 시술(또는 정자공여시술)이 법적으론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정자공여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윤리지침을 고수하고 있어, 비혼 여성에게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제도 또한 답답한 상황이다. 한국의 출생신고는 신고 시 신고자의 신원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시스템이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비밀출생신고제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혼부의 입적 또한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실정이어서 친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본인의 호적에 입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될 경우 증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비혼 임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비혼 여성의 출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통계청이 지난 5월13일부터 28일까지 전국 만 13세 이상 약 3만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비율은 30.7%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엠브레인 조사에서도 48.3%로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전통적 가족관계”를 벗어난 가족관계를 수용하기엔 아직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유리 씨의 SNS에는 그녀를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자국민이 아니지만, 그녀의 용기 있는 행보는 우리 사회가 결혼·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즉 “낳을 권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고령화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2040년에 한국 인구는 4000만 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통적 가정의 탄생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이해와 변화는 필수불가결이다. 이미 많은 나라가 동거 가족 역시 가족의 형태로 받아들여 그에 상응하는 지원과 정책을 진행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사회는 물론 국가 정책에서도 부모-자녀 직계 중심의 가족 관계만 고집되고 있다. 이제는 혈연의 가족에서 관계의 가족으로 변화를 가져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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