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외쳤지만 묵묵부답…유지·관리는 부실

종로구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비상벨 [사진=김혜진 기자]
종로구 공중화장실 내부에 설치된 비상벨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 새 공중화장실 발생 범죄가 2배 이상 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중화장실 내 비상벨이 설치된 곳은 10곳 중 2곳도 안됐다. 공중화장실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범죄 피해 대안인 비상벨 설치·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수도권 지하철역사 화장실을 비롯한 10여 곳의 공중화장실 비상벨 실태를 확인해 봤다. 

- 최근 5년 새 공중화장실 내 범죄 2배 이상 증가
- 화장실 이용 시민들 “안심 비상벨 신뢰 못 하겠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공중화장실 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공중화장실 범죄는 4528건으로 집계됐다. 2015년 1981건에 비해 약 2.3배 증가했다. 특히 공중화장실 범죄 4건 중 1건은 성범죄였다.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성범죄는 1269건으로 2015년 825건 대비 약 54%가 늘었다. 지방청별 공중화장실 내 성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 경기가 13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1087건, 인천 378건, 부산 286건, 경남 241건, 대구 209건, 충남 191건, 경북 141건, 대전 140건 순으로 나타났다.

공중화장실 범죄 매년 증가…비상벨 설치율은 저조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대검찰청이 내놓은 ‘범죄동향 리포트’에서도 성폭력 범죄 가운데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 다중이용장소에 침입하거나 퇴거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성적 목적의 장소 침입’은 2017년 113건에서 지난해 163건으로 2년 새 44%가 넘게 늘었다. 

2016년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 공중화장실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심이 커져 사회적 화두가 됐었지만 화장실에 몰래 침입해 행하는 범죄는 전혀 줄지 않는 실정이다. 

이처럼 공중화장실내 성범죄 발생률이 갈수록 높아짐에도 불구, 대안으로 나온 ‘비상벨’의 설치율은 전국 평균 22.6%로 조사됐다. 5곳 중 4곳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부산이 13.7%로 가장 낮았으며, 경북 14.5%, 강원 16.2%, 충북·경기 18.3%, 전남 18.5%, 울산 23.1% 순으로 나타났다. 

비상벨 설치된 15곳, 설명 적혀있지만 유지·관리는 과연?

일요서울이 서울 및 경기 남부 수도권지역 지하철역사 화장실을 비롯해 15곳의 공중화장실 비상벨을 직접 확인해 보니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비상벨 설치 및 유지 관리가 시행되고 있었다. 다만 일반 공중화장실은 비상벨이 설치된 곳이 꽤 있었지만 유지 및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광화문역, 종로3가역, 서울역, 노량진역, 용산역, 반포역, 강남역, 사당역, 모란역, 수원역 등 주요 지하철역사 내 화장실에는 입구에서부터 ‘여성 안심화장실’ 스티커와 불법촬영 피해신고, 불법촬영 금지 등 다양한 안내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여성 화장실에는 칸마다 비상벨이 설치돼 있어 위급상황 시에 바로 누를 수 있게 돼있었다. ‘비상벨(Emergency Call)’ 또는 ‘비상호출통화장치’라고 크게 쓰인 장치의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위급상황이나 불편사항 발생 시 호출버튼을 누르면 역 직원과 통화할 수 있습니다’라는 간단한 설명도 적혀 있었다. 

빨간색 비상벨 버튼을 눌러보니 약 1~2초 후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의 역에서는 직원과 바로 연결이 됐다. 다만 수원역에서는 비상벨을 누르자 ‘여자화장실 8번에서 호출합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왔지만 약 1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순찰 직원이 도착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비상벨은 역무실로 바로 연결되는데 역무원이나 지하철 보안관이 (화장실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확인을 위해 먼저 출동한다”면서 “범죄행위가 발생했을 때는 경찰에, 승객이 다쳤을 경우는 119에 신고 조치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비상벨이 지하철 역 화장실에 설치된 이유는 범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범죄 외에도 불편사항을 돕기 위함”이라면서 “실제 범죄가 발생해 비상벨을 누르는 경우보다는 승객들이 잘못 누르는 경우가 많다. 오작동을 줄여 역무원들이 좀 더 필요한 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로구에 위치한 공중화장실 입구에는 경광등이 붙어 있었고 ‘안심 화장실’이라는 노란색 푯말에 ‘첨단 비상벨 시스템 작동 중’이라는 설명도 크게 쓰여 있었다. 화장실 내부에는 비상벨과 비상벨 아래 ‘위급 시 누르면 경찰이 출동합니다’라는 글씨도 크게 적혀 있었다. 

동작구의 외진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공중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 앞에 경광등과 ‘여성안심 화장실’이 적힌 푯말에는 ‘112 비상벨 작동 중’이라는 문구도 함께 쓰여 있었다. 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한 시민 A씨는 “비상벨은 한 번도 눌러본 적이 없다”면서 “경찰서가 근처에 있긴 하지만 벨을 눌러도 크게 기대를 하진 않는다. 15분~20분 사이에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비상벨 시스템 관련 “비상벨을 누르면 자동으로 112에 신고가 된다”면서 “벨만 누른 후 대화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도 신고시스템에 자동 입력돼 위치가 뜨면 관할 파출소에서 출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할구청과 연계해 한 달에 한 번 점검을 통해 유지·관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포 한강공원 공중화장실 비상벨 [사진=김혜진 기자]
반포 한강공원 공중화장실 비상벨 [사진=김혜진 기자]

사계절 내내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는 반포 한강공원의 공중화장실 비상벨은 어떨까. 이곳은 조금 특이하게 직접 누르는 비상벨과 ‘음성인식 비상벨’이 함께 있었다. 음성인식 비상벨은 위급상황 발생 시에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 경찰관이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기자가 큰 소리로 “살려 주세요”라고 세 번이나 외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관할 경찰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현재 음성인식 비상벨은 작동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1년에 5~6번 정도 주기적인 점검을 하고 있다. 마지막 점검은 지난 9월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화장실 비상벨 점검이 안 되는 부분은 한강공원사업소에 통지하고 수리가 된 뒤 경찰이 확인하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불법촬영 장비 점검표에는 올해 3월까지만 체크가 돼있었다. 이에 대한 지적에 경찰 관계자는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장비점검은 다양한 지자체에서 함께 시행한다”면서 “경찰 여성청소년과, 관할 구청, 서울시 등이 같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포 한강공원 공중화장실을 이용한 시민 B씨는 “한 번도 누를 만한 일은 없었지만 비상벨을 누르거나 부른다고 해서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딸에게도 차라리 호신용 기구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 방어하라고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공중화장실에 점검 목적에 범죄 예방 위함을 추가하고 정기 점검 횟수를 연 2회 이상으로 확대하려 한다”면서 “또한 공중 화장실의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설치 및 관리에 대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도록 규정해 공중화장실의 범죄 및 긴급 상황을 예방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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