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으로…“우리 딸들 같아서 더 안전하게 챙겨요”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 [사진=서초구청 제공]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 [사진=서초구청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바람이 쌩쌩 부는 저녁 9시 40분.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반포지구대 앞에 두꺼운 패딩 위에 형광색 조끼를 덧입고, 주황색 불빛이 번쩍이는 경광등을 손에 쥔 여성들이 모였다. 이들은 서초구청 소속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이다. 

- 수상한 사람이 여성의 뒤를 쫓으면 함께 쫓는다
- 주민들 “지나만 다녀도 든든해” 격려…음료수 등 챙겨줘

서울시는 2014년부터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늦은 시각 귀가하는 여성이나 학원이 늦게 끝난 학생 등 안전 귀가를 돕기 위한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지자체들도 있다. 현재 25개 자치구 중 최다 인원으로 운영 중인 서초구청은 이 같은 상황에도 주민들의 안전 귀갓길을 위해 사업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스카우트 대원은 각 구청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지원을 받는다. 이후 서류와 면접을 통과해야 대원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진다.

어두운 주택가, 유흥가 부근 집중 순찰

반딧불이 대원들은 지구대 앞에서 준비를 마치고 저녁 10시부터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한다. 월요일은 밤 12시까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새벽 1시까지 업무가 이루어진다. 이들은 2인 1조로 팀을 이뤄 심야시간 여성·청소년들의 귀가를 동행 지원하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안전취약지역의 순찰 업무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날 기자와 함께 동행한 두 팀은 논현역과 잠원 방향 담당이었다. 이곳은 서초구 내에서도 1인 여성가구가 많은 주택가와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두 팀 중 한 팀은 구역을 크게 돌고 나머지 한 팀은 골목 사이를 오가며 세심하게 살핀다. 위험 상황은 없는지 가로등 불빛이 꺼지진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고 부실한 부분을 담당 주무관에게 알리는 역할도 한다. 

먼저 구역을 크게 도는 팀은 50대 중후반의 대원들이었다. 2년째 귀갓길을 책임지고 있는 대원 A씨(57)는 “유흥가 거리를 순찰하다가 술에 취한 여성들을 데려다주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시고 길에 쓰러져 있는 걸 보면 일으켜 주고 가족에게 연락해 주거나 상태가 심각할 경우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중화장실에 볼일 보러 갔다가 기절 상태에 있는 여성들도 보고 계단에서 자고 있는 여성들도 많이 봤다”면서 “2년간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주위를 유심히 보다가 술에 취해 버스에서 자고 있는 여성을 깨워 집에 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대원들은 밤늦게 혼자 걷는 여성의 뒤를 쫓는 남성을 조용히 따라가기도 한다. A씨는 “이 일을 하다 보니 이상한 남성들이 눈에 보인다”면서 “어떤 여성이 가만히 벽을 보고 있어서 수상해 다가가 물어보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남성이 여성 뒤를 따라가는 걸 봤을 때 동행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동행을 제안 후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함께 집까지 간다”면서 “주민들이 저희가 지나만 다녀도 든든하다고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이날도 대원들은 주택가에 혼자 걷는 여성들에게 ‘함께 동행해 드릴까요?’라고 먼저 묻기도 했다. 

안심귀가 스카우트 이용 희망자들은 직접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도착 30분 전 서초구청 종합상황실 혹은 다산콜센터(120)에 전화하거나 스마트폰 ‘안심이 앱’을 통해 이용 신청을 할 수 있다. 신청이 접수되면 스카우트 대원들이 약속장소 10분 전에 도착해 출발지에서 이용자를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지난해만큼 동행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원 B씨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해도 괜히 불안해 하셔서 거부하는 분들도 유난히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인여성뿐 아니라 저녁 늦게 하교하는 학생들도 데려다준다. 순찰을 다니다 보면 안심귀가 신청방법을 묻는 부모들도 많다. 학생들의 안심귀가 신청은 주로 부모가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원 B씨(54)는 “지난해 어떤 아버지가 신청을 했는데 딸은 불만스러워 해서 뒤늦게 과자를 들고 나타나 (대원들을) 따라왔다”면서 “어느 날은 먹던 과자를 나눠줬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말했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 [사진=서초구청 제공]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 [사진=서초구청 제공]

8월·12월 날씨 영향으로 힘들지만 주변 격려에 보람 느껴

매일 밤 나와서 일을 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B씨는 “처음에는 길을 외우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몸이 익숙해지니까 이제 괜찮다”면서 “밤에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저녁마다 다 젖어서 가니까 그게 좀 애로사항이었다”면서 “8월에는 더위와 장마 때문에, 12월은 추위 때문에 힘들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딸만 둘’이라는 A씨는 “술 취한 젊은 여성들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친다”면서 “내 딸이 저렇게 있는데 아무도 안 구해준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A씨는 딸들에게 일을 하면서 겪은 사례들을 종종 이야기해 주며 경각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대원들 사이에서는 소위 ‘단골’ 손님도 생긴다. 자주 이용 신청하는 여성들은 특정 요일에 고정적으로 신청하다 보니 얼굴이 익숙해지면서 딸 같은 마음에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학생 손님일 경우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 준다고 했다.

실제 함께하던 대원이 그만둘 때 단골손님이었던 여성이 고맙다고 에그타르트를 선물로 사와서 대원들과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B씨는 “사람 간의 정이 아직은 남아있는 것 같다”면서 “지나가다가 박카스를 건네주면서 격려해 주기도 하고, 웬 청년이 뜨끈한 두유를 품고와 수고하신다며 주고 냉큼 가 버린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새벽 1시 업무를 마친 대원들의 귀갓길은 팀원과 함께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씨는 “동행해 주는 여성분들한테 (우리는) 집에 어떻게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우리는 걱정 말라고 이야기한다”면서 “대원 한 명이 차를 갖고 와 전부 데려다주기도 하고 팀끼리 집 방향이 비슷해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승수 서초구청 주무관은 “근무 조를 편성할 때 거주지를 고려해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이 출퇴근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서초구청 제공]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반딧불이 대원들의 출퇴근 근무 점검 [사진=서초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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