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구성·경영권 승계까지 좌지우지?… 가이드라인 ‘선 넘었다’ 비판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이사회에 대한 구성 운영 등 경영권 승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다시 추진했다. 이에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관여가 어디까지가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모습을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적시해 지침으로 정한 것인데, 현재까지는 ‘권장 사항’이지만 추후에는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활동을 위해 주주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업들은 경영을 옥죄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가이드라인 가운데 논란이 되는 규정도 보이면서 기업과 국민연금의 갈등 및 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단체들도 경영권 침해가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외 연기금, 원칙 중심 규제만 갖춰… 간섭하는 국민연금과 비교

경제계 “시장경제 훼손·실적 저하 부작용 이어져”… 우려 목소리

지난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투자 기업의 이사회 구성·운영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 중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이어 투자기업 이사회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등 3개 항목으로 나눈 후 10개 핵심 원칙과 그 아래 27개 세부 원칙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핵심 원칙은 주주 부분에서 ▲주주의 권리 ▲공평한 대우 2개와 이사회 부분에서는 ▲이사회의 기능 ▲이사회의 구성 ▲사외이사의 책임 ▲이사 활동의 평가 및 보상 ▲이사회 운영 ▲이사회 내 위원회 등 6개다. 감사기구의 경우 ▲내부감사기구 ▲외부감사인 등 2개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재계에서 반발하는 규정은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 승계 정책을 마련해 운영하고 지속 개선·보완 노력한다’, ‘회사는 소수주주가 지배주주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자본구조 변경, 분할, 인수·합병 등에 있어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등의 대목이다. 이 외에도 내·외부 감사와 관련해 마련한 구체적인 지침과 이사회 내 위원회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는 것, 총주주수익률(TSR) 적정 수준 유지, 주주서한 공개 등도 논란이 예상된다.

경영권·승계 문제 개입
재계 반발

이 부분에 대해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경영권과 승계 문제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특히 승계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기업이 패를 노출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한 명예회장 등 업무 집행 책임자 승진과 해임, 신규 위촉, 보직 변경 등 주요 인사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한 부분도 논란거리다.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를 두고 해외 연기금의 관련 규정과 비교해 보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 해외 연기금은 다양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고려해 원칙 중심의 가이드라인만을 갖춘 상황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12월 마련됐던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이어 이사회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하는 성격으로 추진된 것으로, 올해 마지막이 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다음 달 열린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최종안을 마련해 연내 의결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지난)7월 해당 가이드라인을 기금위에 보고한 배경은 주주권 행사 방향을 기업 이해관계인에게 안내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투자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원칙과 지침, 관련 가이드라인 등 별도 규정에 따른다”고 밝혔다.

기금위, 가이드라인 지적
“내용 과도”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도 국민연금의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해 지적했다. 이상철 기금위 위원(경영자총협회 상무)은 “기업의 규모, 지배구조 형태 등이 상당히 다양한데 기업들에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면 이 내용은 과도하다”며 “당사자들인 기업의 의견이 제대로 청취가 안 된 것 같아 의견을 듣고 보완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경상 기금위 위원(대한상공회의소 상무)도 “기준을 잘못 만들게 되면 진짜 기업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까지도 기준에 따라 일률적, 경직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정치적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과도한 경영 간섭이다. 결국 기업의 의사소통을 막고 실적 저하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노골적인 개입은 연금 사회주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 여론도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