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정책의 정점’ 아닌 “진정한 시작”···文정부의 ‘중국몽’ 연장선?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김태기 교수 [사진=본인 제공]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김태기 교수 [사진=본인 제공]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지난 2017년 11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의 언급을 통해 ‘신(新)남방정책’을 본격 추진해 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4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최대자유무역협정(FTA)에 최종 서명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한일수출규제 ▲미중무역갈등 ▲美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 기조로 세계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된 가운데, 이번 RCEP 서명으로 ‘신남방정책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발표날 연일 보도된 내용처럼 ‘RCEP 서명’을 진정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이에 일요서울은 지난 17일 경제전문가인 단국대 경제학과 김태기 교수를 만나 RCEP과 관련한 국내외 현황을 진단했다. 특히 한국노동경제학회장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역임한 바 있으며, 美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과 日 게이오대학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한 이력을 지니고 있어 깊은 이해도를 갖고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참석해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15.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참석해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15. [뉴시스]

- 문정부의 ‘RCEP 최종 서명’에 대한 평가는.
▲ 기본적으로 ‘중국의 승리’라고 본다. 미국에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자유무역에서 허점을 보인 것. 이 틈새를 노려 중국은 대항마로 RCEP을 끌어낸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동남아시아로 진출 파이를 넓혀가야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고 국익에도 부합해 잘된 일이다. 하지만 RCEP 협약국인 호주, 뉴질랜드는 이미 빅딜이 아니다. 또한 동남아의 경제 맹주는 사실 일본이다. 여기에 중국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도전장을 내는 셈. 한국은 그에 파고들어 숟가락을 얹는 꼴이다. 결국, RCEP에 들어간 것이 ‘신남방정책의 진짜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주 험난할 것이다. 

- RCEP에 동참한 우리나라의 득과 실은.
▲ 다자간 FTA기 때문에 관세가 조금 떨어지는 이점은 있겠다. 하지만 이것도 韓-中-日 중에서는 중국이 제일 이점을 볼 것. RCEP에 탑승한 한국이 그 안에서 최대 이익을 볼 수 있을지가 첫 번째 문제. 당장 동남아국가들을 상대로 수출-수입만 봐도 RCEP 서명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또한 RCEP 내용도 허술하다. 자유무역의 틀만 갖췄을 뿐, 내용 면에서는 단계적으로 긴 시간을 요구하고 품목도 제한돼 있다. 시간이 흘러도 큰 성과는 없을 것.

오히려 정말 득을 본 것은 RCEP을 통해서 일본과 자유무역을 재개할 계기를 되찾은 것이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일본과 손잡을 일도 많다고 본다. 현재 문정부는 이런 부분에서 입체적으로 RCEP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앞서 험난할 것이라 예상한 것은 중국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총력을 모아 RCEP을 끌고 가려 할 것.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중국의 지원은 우리나라와는 게임이 안 될 정도이기 때문에 자본력에서 밀리는 그림이 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 RCEP 서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 당장 효과가 미미하다. 당장 미국 대선만 해도 바이든주, 트럼프주같은 카테고리가 나오는데. RCEP이 주가에도 크게 반영이 없다. 현재 동남아주, 중국주, RCEP주가 있나. (반응이 없는 것은) 주가를 보면 안다. RCEP 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문 대통령뿐이고, 일반 국민들은 관심도 없다. RCEP 해서 세상이 바뀐 게 없다고. 

당연히 산업계 쪽에서도 “아휴 전에 다 했던 건데. 이전에 하던 거 조금 다듬었나”하는 반응이다. 새로운 게 나올 것이 없다는 것. 

베트남 통신사(VNA)가 화상회의 장면들을 합성해 만든 사진 속에서 15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국가 정상과 통상장관들이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및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이날 RCEP 서명식을 마쳐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이 출범했다. 2020.11.15 [뉴시스]
베트남 통신사(VNA)가 화상회의 장면들을 합성해 만든 사진 속에서 15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국가 정상과 통상장관들이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및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이날 RCEP 서명식을 마쳐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이 출범했다. 2020.11.15 [뉴시스]

- 중국을 제외한 RCEP 참여국들의 속내는. 
▲ 먼저 자유무역에서 빠진 미국과 독주하려는 중국을 보며 일본은 중국에 맞설 수 있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바깥에서 뺑뺑이 도는 방법보다는 RCEP에 참여해 내부에서 견제하겠다는 전략을 편 것. 호주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독주를 감시하기 위해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사실 동남아시아는 세력에 따라 본인들은 짐만 뒤집어쓰거나 중국을 상대로 손해 보는 무역을 할 가능성이 높다. 참여한 동남아 국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현실을 알면서도 RCEP에 가담했다. 그 때문에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속으로는 한국-일본-호주가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길 원할 것. 여기에 엄청난 노동력을 가진 인도가 들어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 빠지게 됐다. 

문 정부가 이끄는 한국은 RCEP이 중국이 주도하는 FTA라서 눈 딱 감고 참여한 것이다. 아직도 마치 중국을 우리의 구세주로 생각하는데 진짜 꿈을 깨야 할 얘기다. 통상 국제 규범이나 다자간 무역에서는 규범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근데 중국은 한 번도 규범과 신뢰를 보여준 적이 없다. 과거 중국과의 무역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나라가 중국에 저자세로 나간다 해서 얻은 게 없다. 이미 기술을 탈취하고 노동력을 굴려서 우리나라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RCEP 참여국 중 위기감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 RCEP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할 방법은.
▲ 앞서 말했듯이 한국-일본-호주가 연합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개별적으로 움직일 경우에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을 택할 것이고, 일본과 호주는 한국을 무시할 것이다. 독자적으로 움직일만한 자본과 기술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력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 

결국 한국-일본-호주가 연합해 서로 자본력과 기술력, 숙련도 면에서 상호보완하는 방식을 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중국의 동남아 시장 확장에 들러리 서는 꼴이다. 

일본이 중국에 당차게 대항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한국은 개방 국가이고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나라기 때문에 협정 대상이 중국이든 미국이든 어떤 국가든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일본이 RCEP에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있던 수출규제 문제나 과거 역사 문제를 들이대면서 협력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처세라고 판단된다. 

- 아직까진 일본, 호주와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상황인데.
▲ 전혀 없다. 그런 면에서 ‘RCEP이 신남방정책의 결실이다, 정점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우물 안에 개구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화자찬의 선수들이다. 

(下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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