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주식 오르자 매도해 '차익실현'…뒤통수 맞은 개인투자자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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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로 주가가 급등한 국내 제약사들의 오너 일가가 지분을 대거 처분해 시세 차익을 올리는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눈총을 받고 있다.  비록 주가가 올랐을 때 차익을 챙기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삼을 순 없지만, 최대주주나 임원의 주식 매각이나 자사주 매각은 주가 하락을 초래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신풍제약ㆍ부광약품ㆍ신일제약 등 잇단 지분 매각 '수억~수십억' 차익
급등 제약주···오너 일가 매도 '눈총'…“거품 대비해야” 경고 목소리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최대주주나 임원들이 주식을 대량 매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오너가 지분 싹 끌어 팔았네요”

우선 신풍제약은 자체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주목받으면서 7월부터 주가가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지난해 말 7240원에서 올해 들어 무려 23배가량 폭등했다. 이후 신풍제약은 지난 9월21일 장마감 후 자사주 128만9550주를 해외 투자자에게 직접 팔았다. 매각 금액은 2153억5485만원으로, 지난해 순이익(18억원)의 120배 규모다. 신풍제약 측은 이에 대해 “생산설비 개선 및 연구 개발 과제를 위한 투자 자금 확보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투자자 사이에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보통 자사주 매각은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각하는 시점은 주가가 가장 높은 때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풀이된다. 또한 21만원대던 주가는 7거래일 만에 12만원대로 급락했다.

신풍제약 오너일가의 특수관계인도 주식을 매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지난달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민영관씨는 지난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신풍제약 보유 주식 97만3900여주(지분율 1.76%)를 전량 처분했다. 처분 금액은 약 192억5000여만원이다. 민씨는 2004년 최초로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이후 신풍제약의 주요 주주로 있다가 최초 지분보유 사실을 신고한 지 약 16년 만에 지분을 모두 청산했다.

민씨는 장원준 신풍제약 사장(비등기임원)의 넷째 누나인 장지이씨의 시부로 알려져 있다. 장 사장 일가와 사돈 지간인 셈이다. 민씨는 2016년 4월 신풍제약이 지주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며느리 장지이씨의 특수관계인으로 편입됐다.

앞서 지난 7월22일 부광약품 투자자 사이에서는 정창수 부회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코로나19 수혜주로 올초 1만4000원이던 주식이 3만9000원까지 치솟자 정 부회장이 개인주식 257만여주(약 1009억원)를 매도 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최대주주이자 비등기임원이다. 갑작스런 대주주의 대규모 매도 소식에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8% 가량 급락했다.

부광약품의 경우 코로나 치료제 개발의 기대감으로 5월초 2만4000원대에서 4만6550원까지 뛰었다.

또다른 바이오기업 신일제약도 같은 시기(20일에서 23일) 총수일가가 100억원대 주식을 팔았다. 매도 직전 6일(거래일 기준)간 주가가 141%나 급등한 상태였다. 이들의 매도 직후 5일간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이들이 주식 매각으로 얻은 시세차익은 126억원에 달한다. 주가는 23일 5만8100원을 찍고 이틀 새 3만850원으로 주저앉았다.

일양약품 오너 일가도 임상허가 발표 후 주가가 오르자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양약품은 지난 5월 28일 러시아 제약사인 알팜 주도로 항암제 '슈펙트'의 임상 3상 승인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발표 전 3만2950원이었던 주가가 발표 직후 4만2800원까지 오른 것이다.

5월28일부터 6월 9일까지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기간 동안 창업주 고(故) 정형식 회장의 삼남인 정재형씨는 6월초에 3만8300주를 처분했다. 차남 정영준 씨와 사남 정재훈 씨 역시 1200주를 장내 매각했다. 모친 이영자 씨도 6월 5일 1만4426주를 전량 처분했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지난 9일(현지시간)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예방률이 90%를 넘었다고 발표했는데 주가가 15%가량 오른 당일 앨버트 부를라 화이자 CEO가 보유 주식을 매각해 62억원 가량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료를 인용해 알버트 보울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 560만달러(약 62억원)어치의 자사 주식을 팔았다고 전했다.

이날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개발 중인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코로나19를 막는 데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에 화이자 주식은 같은 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장중 15% 이상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보울라 CEO가 팔아넘긴 화이자 주식은 13만 2508주다. 매도가는 주당 평균 41.94달러로 52주 최고가(41.99달러)에 가깝다.

화이자 대변인은 CEO의 주식 매각에 대해 “지난 8월 제정된 ‘Rule 10b5-1’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Rule 10b5-1’는 상장기업 내부 인사가 기업에 대해 보유한 주식을 정해진 가격이나 날짜에 매각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중간 임상발표 시기를 주식 매각시점에 맞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악시오스도 "매각은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이뤄졌지만, 여론은 그렇게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유나이티드제약 등도 최대주주 또는 임원들의 지분 처분이 공시된 이후 주가가 10% 이상 급락했다.

법적 문제 없지만, 잡음은 충분히 나올 만

물론 주가가 고점에 올랐을 때 차익을 챙기는 것을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회사 내부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최대주주나 임원들의 주식 매각은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전달, 주가 하락을 초래한다.

시장에서도 바이오제약의 무더기 이상급등 현상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바이오 열풍에 기대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 ‘묻지마 투자’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증하자 오너 일가가 차익 실현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신약 개발 기대감 등 미래 가치에 대한 신뢰로 주가를 형성하는 바이오 시장에선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 주가가 투자자들에게 안좋은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시세 차익을 본 오너 일가들을 향해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으며, 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제약 회사들의 코로나19 백신 임상 실험 결과 발표 이후 바이오주에서 투자경고종목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투자경고 15종목 중 12종목은 화이자 백신 실험 결과 발표일인 지난달 6일 이후 지정됐다. 9일 센코를 시작으로 19일에는 KPX생명과학, THE E&M, 우리바이오, KPX홀딩스, 태경케미컬, 엔투텍, 에이비프로바이오, 아시아나항공, 덕성, 덕성우, 삼보산업이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됐다.

투자위험종목도 나왔다. KPX생명과학과 박셀바이오는 투자경고종목 지정에도 주가가 지속 상승해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됐다.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되면 투자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투자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투자자가 투자위험종목을 매수할 경우 위탁증거금을 100% 납부하여야 한다. 또, 신용융자로 해당종목을 매수할 수 없으며 해당종목은 대용증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시장 감시를 한층 더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거래소는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는 테마주의 이슈별 종목군과 핵심 키워드를 적출·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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