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앞두고 국회서 ‘쿨쿨’···입법 미비로 적용 못 한다

서대문구의 경찰청 로비 모습. [뉴시스]
경찰청 로비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n번방 사태’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선제 대응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 중 하나인 ‘잠입(위장)수사’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도입 제안이 약 7개월이 지났지만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 경찰은 관련 지침 등 활용 준비를 하고도 입법 미비로 인해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비밀 수사 필요” vs “기본권 침해”···잠입 개시 승인 주체도 쟁점

최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책이 나온 후 세부 내용인 ‘잠입수사’ 적용 준비를 사실상 마무리한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선제 대응 등 효과를 고려하면서 잠입수사 도입을 준비해 왔다고 경찰은 밝힌다. 잠복근무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범죄가 위축될 것이고, 불가피한 수사 활동이 적법성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다.

잠입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능력 인정 소지도 높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찰은 기대하는 모양새다. 현재 경찰은 잠입수사 도입을 디지털 성범죄 대응 관련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잠입수사 도입 준비는 막바지 단계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절차를 다룬 지침을 사실상 완성하는 등 적용 대비를 했으나, 관련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활용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책 대부분이 실행, 입법 됐지만 잠입수사는 아직 미진한 상태”라면서 “지침 작업 등 도입 준비는 해 왔지만 아직 법적 토대가 없어 실무에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뉴시스]
조주빈. [뉴시스]

‘성착취물 유통’에 대한

사회적 공분으로 시작

경찰 잠입수사 도입 논의는 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 등 청소년 등을 대상 성착취물 유통에 대한 사회적 공분 속에서 제안됐다. 지난 4월23일 범정부 대책에 담긴 내용으로, 디지털 성범죄 분야 잠입수사 근거를 명문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잠입수사는 일명 ‘함정수사’의 일종이다. 마약‧조직범죄 등 수사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기법이다. 수사기관이 범죄를 교사, 방조한다는 측면 때문에 적법성 논란이 상존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법원은 지난 2007년 이후 함정수사에 대해 대체로 교사(범의유발)에 해당하면 위법 소지가 강하며, 상대적으로 방조(기회제공‧범행용이)에 가까우면 실체적 판단이 이뤄질 수 있다는 방향으로 해석해 왔다.

일례를 살펴보면 최근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 함정수사 쟁점에서 수사기관의 기회 제공에 근접한 단순 범행 관여는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번 논의는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기회 제공 등 성격의 위장‧잠입 수사 기법을 디지털 성범죄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명문 근거를 마련,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상태다.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은밀, 지능적 양태를 강조하고 있다. 다크웹, 보안 메신저, 가상화폐 사용 등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밀행적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착취물 등 시청 제재로 인해 일반 잠입 제보가 어려워, 수사기관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매자 적발을 위한 수사관의 판매자 가장 광고 행위를 법적 테두리 안에 넣기 위한 도입 필요성 요구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 [뉴시스]
경찰. [뉴시스]

수사기관 권한 확대 우려도

반면 잠입수사가 기본권 침해 성격이 강한 기법이라는 점과 수사기관의 권한 확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핵심 쟁점은 ‘개시 전 승인’ 관련 문제다. 경찰은 잠입수사가 기법에 해당한다는 전제 아래 승인 주체를 ‘상급 경찰관서 수사부서장’으로 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잠입수사는 특정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 것인지 ‘방식’에 관한 문제로 1차적 수사기관인 경찰 자체적으로 판단해 집행할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또 진행 과정에서 이뤄지는 압수수색, 체포 등 강제수사 부분은 기존 영장주의 범주에 포함되고, 종결 단계에서는 송치 또는 불송치 관련 검토 절차 등 통제 장치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견해로는 판사 또는 검사 승인을 거쳐 경찰 단계 잠입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잠입수사의 기본권 침해 성격을 고려한 목소리로 해석된다. 경찰의 잠입수사 개시 신청을 검찰이 청구해 법원 승인을 받는 구조 등이 언급되고 있다.

아울러 경찰 잠입수사에 대한 외부적 통제, 잠입수사 관련 자료 전부에 대한 송부 필요성 주장 등도 나오고 있다. 또 ‘위상 신분으로 범죄행위에 관여’한다는 표현의 불분명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 잠입수사 도입이 지연되면서 일부 여성계나 시민단체 등에서의 활성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자 수사, 검거를 위해서는 공권력이 위장, 잠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입법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경찰 잠입수사가 부작용보다는 공익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사회적 합의도 이뤄졌기 때문에 빠른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

정치권에서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 잠입수사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된 상태로, 소관 위원회 심사를 앞뒀거나 접수가 이뤄진 상태로 알려진다.

위장 신분을 통한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수사 여지를 열어주는 등 내용을 반영,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하는 형태로 제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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