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 [뉴시스]
마라도나 [뉴시스]

 

[일요서울]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AP, BBC 등 주요 외신은 25(현지시각)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르사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최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통원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전설이 세상을 떠난 것에 가장 깊은 슬픔을 표한다”라며 “그는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아르헨티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사흘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며 “마라도나는 이 나라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고, 우리에게 대단한 행복을 안겨줬다”라며 “그는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마라도나와 최고의 축구 영웅 자리를 놓고 다퉜던 브라질의 펠레도 “언젠가 우리가 함께 하늘나라에서 공을 찰 것”이라고 애도 성명을 냈다. 마라도나가 뛰었던 보카 주니어스 구단은 공식 SNS에 그의 사진과 함께 “영원히 감사하다”라고 썼다.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라누스에서 크로아티아계 이민자 아버지와 스페인계 이민자 훈손 어머니 사이에 3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코리엔테스주에서 이주했으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 외곽의 판자촌인 비야 피오리토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 돈 디에고는 가족을 위해 새벽 4시에 막노동을 하러 나간 뒤 밤늦게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을 제외하면 집안의 장남인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하는 전쟁놀이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는 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바로 축구였다. 축구공을 차며 재주 부리기를 좋아했던 마라도나는 8살 때 지역 클럽 에스트레야 로하에서 뛰던 중 온종일 공만 갖고 논다는 빈민가 소년으로 소문은 금세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마라도나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카우트에게 목격되어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11살에 불과했던 마라도나에게 과감한 투자를 결심하며 계약하게 된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의 유소년팀인 로스 세볼리타스에서 뛰게 된 마라도나는 그곳에서 에이스가 되며 팀의 주축이 됐고 1부 리그 경기에서 볼보이로 나와 하프타임 중간 휴식시간에 공으로 마법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이런 마라도나에게 아파트를 선물했다. 판잣집에서 연명하던 소년과 그의 가족들은 꿈처럼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고 그 광경을 본 마라도나는 축구로 꼭 성공해 가족들과 평생 부유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는 마라도나라는 이름을 아르헨티나 전역에 알리는 발판이 됐다. 

마라도나는 펠레와 함께 축구사의 양대산맥으로 각종 축구 언론매체들이 선정하는 역대 선수 랭킹에서 탑3에 거의 고정적으로 포함됐다. 1978년 10대이던 마라도나를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가 직접 보기위해 아르헨티나로 찾아와 관찰을 하고 작성한 보고서가 있었는데 마치 축구의 신을 본 느낌이라는 그야말로 극찬의 일색으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1979년 남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고 그해 발롱도르 수상자였던 케빈 키건을 누르고 구에린 스포르티보 당해 최고의 선수에 뽑혔을만큼 아직 유럽으로 넘어오지 않았던 10대 후반부터 신성 불가침한 영역이었던 펠레, 디 스테파노를 소환할만큼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실력을 뽐냈다. 

마라도나는 일개 플레이로서도 역대 최고의 반열에 놓인 선수였지만, 동료들을 잘 이용하면서도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뛰어난 리더 역할도 했다. 일례로 마라도나는 고작 18살 소년일 때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부터 이미 주장을 맡을 정도로 강인한 리더십을 가진 선수였다. 국가대표로서도 당시 영원한 캡틴 파사레야가 있었던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주장이 아니었지만, 선수 1인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계속해서 주장으로 역할을 맡았다. 

마라도나는 국내·국제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마라도나는 2018년 10월 한 매체와의 안터뷰에서 “국민이 고통을 받는 게 보인다. 페론당이 불러준다면 대선에서 부통령후보로 나설 용의가 있다”며 “과거 피델 카스트로 쿠바 평의회 의장이 (축구 못지않게 정치에도 재질이 있다며) 나에게 정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권한 바 있다”고 했다. 마라도나가 정치의 뜻을 밝힌 건 국민적 분노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마라도나는 “여동생들이 월급을 받아도 월말까지 견디기 힘들어 한다. 국민은 분노하고 있고, 이런 조국의 현실에 나는 매우 화가 난다”며 “지금의 아르헨티나 정부는 썩었고 무능하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나를 부통령후보로 불러준다면 기꺼이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마라도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미국을 비난해 벌금을 냈다. 마라도나는 2019년 3월30일 축구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승리를 고통 받는 마두로와 베네술엘라 국민들에 바치고 싶다. 세계의 보안관이라는 양키드(미국)은 누구인가”라며 “세계에서 가장 큰 폭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아버지와 다름없는 분’이라고 호칭하는 등 중남미 지역 좌파 지도자들과 종종 친근감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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