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우외환의 위기에 봉착했다. 21대 총선 직후만 해도 어대낙(어차피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낙연) 프레임이 유행했지만 이제는 모든 게 달라졌다. 특히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불리는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종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가 처한 어려움은 차기 지지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야의 유력 차기주자들을 압도하면서 40%대 초반대의 넘사벽지지율은 옛말이 돼버렸다. 주요 이슈에 대해 선명성 짙은 이른바 사이다발언으로 유명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느덧 이 대표를 추월했다. 더구나 검찰총장 직무배제 사태를 둘러싼 국가적 혼란 속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범야권 부동의 1순위 차기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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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박스권 갇힌 채 친문 늪에 빠져 허우적
 호남·친문 집토끼 다지고 외연확대 산토끼 사냥

지지율로만 본다면 이 대표의 상황은 위험수위다.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난 20%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 주변에서는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지만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만일 20% 안팎의 박스권에서 반등하지 못하고 지지율이 추가하락한다면 상황은 매우 심각해진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나돌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고건 전 국무총리나 2017년 대선 도전에 나섰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중도하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는 5선 의원, 전남지사, 87년 체제 이후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를 거친 경륜의 정치인이다. 정치적 고비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만큼 호남과 친문이라는 양대 키워드로 차기대권 필승비책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흔들리는 이낙연, ‘어대낙에서 이대만으로 전락

이 대표는 여권을 대표하는 차기주자다. 지난 421대 총선을 전후로는 어차피 대선후보는 이낙연이라는 이른바 어대낙이라는 표현마저 나올 정도였다.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근거도 탄탄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초대 국무총리를 맡아 2년 반 이상 문재인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문 대통령의 굳건한 신임을 바탕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실세 총리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누렸다.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수첩에 깨알같이 적는 꼼꼼한 행정가의 모습은 물론 여야의 거친 정쟁 속에서도 차분함과 유머가 묻어나는 사이다 발언으로 정치적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민주당 대선후보는 결국 이낙연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드루킹 댓글재판 사건으로 상처를 입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상황을 고려하면 친문진영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양강 라이벌인 이재명 지사의 경우 지난 대선과정과 20186월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친문진영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상황은 쉽지 않다. 묘하게도 지난 8월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선출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 대표는 총선 이후 조정기를 거쳐 차기 지지율이 20%대 중반의 단독 선두를 유지했지만 8월 이 지사의 상승세 속에 양강구도를 허용했다.

이후 석달여의 기간 동안 이 지사와 양강구도를 이루면서 20% 안팎의 박스권 탈출에 실패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난맥상과 실패에 따른 광범위한 민심 이반은 물론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면충돌이 지속되면서 이 대표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특히 어떤 악재에도 40% 콘크리트를 유지하던 여권 지지층이 돌아선 것도 부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선득표율인 41%보다 저조한 30%대로 급락하면서 이 대표의 차기 행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대낙이 아니라 이대로 민주당 대표만이라는 의미의 이대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야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는 정치생리상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선 본선에 나온다면 가장 손쉬운 맞상대로 평가할 정도다.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 자충수도 적잖게 나왔다. 이른바 추윤갈등이 극심한 국면에서 느닷없는 윤석열 검찰총장 국정조사카드를 제안해 점수를 깎아먹었다. 또 부동산 민심이 극도로 나쁜 상황에서 호텔전세발언 등 예기치 못한 실언으로 체면도 구겼다.

한국갤럽의 121주차 현안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이 대표는 양강구도를 형성했던 이 지사에게 밀렸다. 지지율 최저치인 16%를 기록하면서 20%를 기록한 이 지사와는 4%포인트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범여권의 검찰개혁 드라이브 국면이 윤석열 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수순으로 비춰지면서 지지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물론 본인의 차기 지지율마저 급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사의 맹추격에 이어 윤석열 검찰총장의 도전도 무시못할 대목이다. 범야권은 도토리키재기 수준으로 마땅한 차기주자가 없었지만 윤 총장이 반()문재인 단일후보로 상승세를 타면서 안그래도 갈 길 바쁜 이 대표의 발목도 잡고 있는 셈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가 윤 총장에 뒤진다는 충격적인 결과마저 나올 정도다. 지난 총선에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가볍게 눌렀던 것과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이낙연의 역설적 딜레마, 친문과 여론사이 줄타기

더 큰 문제는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킬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치인 이낙연의 강점은 중도층으로의 외연확대가 가능한 합리적 이미지다. 역대 대선에서 지역과 정치적 성향을 기반으로 여야 지지층이 분명하게 구분됐다는 점에서 대선 판도를 좌우할 중도층 공략은 선거의 핵심 포인트다.

다만 이 대표는 대선 본선에 앞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친문 표심이다. 민주당 대주주가 아닌 이 대표로서는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친문 표심을 의식해 지나친 러브콜을 보내면 중도층 외연확대라는 본인의 강점이 희석된다. 반대로 중도층 공략을 위한 합리적 스탠스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친문진영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 이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최근 민주당 안팎에서는 친문진영을 중심으로 제3후보론에 대한 논의가 무성해지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물론 강원지사를 지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특히 정 총리는 내년초 개각 이후 차기 대권 도전에 나설 전망이 유력시된다. 정 총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주도하면서 최근에는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동반사퇴를 주장하는 등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의원 역시 차기 판도를 뒤흔들 블루칩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사자들은 차기 대권 도전과 관련해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친문 진영의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이낙연 카드를 포기하고 대체재로 선택해 볼 수 있는 카드다. 이 대표로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동안 친문진영의 지지가 본인의 정치적 자산이 아닌 문 대통령의 신임과 후원으로 얻는 간접적 자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호남·친문집토끼다지고 중도층 외연확대산토끼 사냥

길고 긴 차기 대권 레이스를 앞두고 이 대표는 정치적 분수령에 접어들었다. 키워드는 호남의 전통적 지지를 다지면서 친문진영의 표심도 장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토끼를 다진 이후 본인의 정치적 장점을 발휘해 중도층 외연확대라는 산토끼 사냥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시간은 많지 않다.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 탓에 이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무엇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지지층 결집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보여줄 수 있는 성과물이 절실하다. 이는 내년 4월 재보선 승리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다행히 내년도 예산안의 경우 지난 2014년 이후 6년만에 법정시한 준수라는 성과를 남겼다. 남은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공정경제3법 등 개혁입법 성과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지난 3일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는 연일 강성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권의 반발 등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걸림돌이다. 그야말로 이 대표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특히 공수처 출범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여권의 최대 숙제다.

이 대표가 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된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대의마저 가리게 하고 있다기필코 공수처를 출범시켜 검찰에 대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를 제도화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거대 여당의 수장으로 개혁과제를 뒷받침하면서 친문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다. 친노·친문진영의 숙원과제를 해결할 경우 차기 대권으로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하다.

이 대표의 지지율 회복과 차기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는 호남이라는 탄탄한 기반을 다진 이후 친문진영과의 전략적 연대가 논의되고 있다. 당장의 지지율 하락에 정치공학적으로 좌고우면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정치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이 대표는 이 지사의 양강대결에서 그동안 민주당 지지층 및 호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해왔다.

다만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 지지층 선호도는 이낙연 36% vs 이재명 31%’으로 기존 격차가 상당 부분 좁혀졌다. 아울러 이 대표의 명백한 텃밭으로 알려졌던 호남에서는 오차범위 이내에서 역전을 허용했다. 이 지사가 27%를 얻어 26%에 그친 이 대표를 1% 포인트 앞선 셈이다.

민주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권 인사는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 반 동안 차기 지지율 1위를 달려온 저력이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대표의 정치적 내공은 상당하다정기국회 종료 이후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시즌이 도래하면 이 대표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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