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갈등 속 임신중지 여성들만 혼란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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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낙태(임신중단)죄 폐지 관련 법 개정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정부의 ‘임신 14주 이내’ 낙태 허용 개정안이 여성계의 비판에 부딪힌 가운데 국회에서도 낙태를 ‘전면 허용’하거나 ‘임신 6주 이내 허용’하는 등 각기 다른 방향의 다양한 법안들이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모두 관련 논의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연말까지 법 개정이 가능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일요서울은 낙태죄 개정 시한 종료를 앞두고 현 상황을 정리해 봤다. 

- 낙태죄 개정안 입법 논의 ‘눈치 싸움’
- 올해 안에 확실한 방향 결정될까

낙태죄 관련 법 개정 논의는 지난해 4월 헌재의 현행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출발했다. 당시 헌재는 현행 법 조항이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면서도 제도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가능성을 고려해 법 개정 시한을 올해 12월31일까지로 제시했다. 이때까지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21년 1월1일부터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6주 허용 vs 14주 허용 vs 전면 허용’…개정안 운명은?

대체 입법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마련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총 5가지다. 먼저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은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의 경우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게 골자다. 강간·준강간 등에 따른 임신, 친족 간 임신, 임부 건강위험과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엔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낙태죄 처벌규정인 형법 269조, 270조를 현행대로 유지하되 허용 요건을 새로 담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달 27일 2개의 법안을 내놨다. 권인숙,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두 법안의 내용은 일맥상통한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낙태)와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를 삭제하고 정부안에서 규정한 허용 주수나 사유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아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이다. 박 의원의 경우 당초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절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여성계가 반대해 입장을 선회했다. 정의당에서도 이은주 의원이 낙태죄 처벌규정을 삭제해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내놨다.

반면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3일 발의한 법안에는 정부안보다 낙태 허용 범위를 줄였다. 임신 6주 미만은 낙태를 허용하되 친족 간 임신이나 사회 및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는 최대 10주까지 허용하도록 했다. 또한 임신 20주까진 강간·준강간이나 임신부의 생명을 해칠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했다.

입법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결정권은 국회로 넘어왔다. 각 법안들이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형법)와 보건복지위원회(모자보건법)에 회부된 만큼 상임위에서 병합 심사되는 과정에서 입법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법사위나 복지위 모두 법안 심사를 본격화하지 않아 이달 내 결정을 통해 확실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원들의 관련 사안에 대한 무관심도 큰 문제로 꼽힌다. 낙태죄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정당은 현재 정의당이 유일하다. 실질적인 법 개정의 ‘핵심 키’를 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입법 방향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낙태죄 존폐 여부와 낙태 허용 임신 주수 등을 두고 여성계와 종교계, 의료계 의견이 극명히 갈리는 만큼 의원들 사이에선 법 개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길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드러난다. 낙태죄 완전 폐지 법안 발의에 참여한 한 여성 의원은 “낙태죄 관련 법안 개정에 대해 여야 모두 찬반을 떠나 관심 자체가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회동의청원 [사진=국회 홈페이지 캡처]
국회동의청원 [사진=국회 홈페이지 캡처]

법사위, 이달 초 공청회서 논의…진술인 8명 중 6명 반대론자

한편 국회 법사위는 이달 8일 낙태죄 개정안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 공청회를 열고 논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개정시한을 올해 12월30일까지로 정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들이 다수 발의되어 있다”며 “이번 공청회는 위원회가 낙태죄 개정 관련 형법 개정안을 심사하기에 앞서 8일 10시에 여야에서 추천한 8명의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청회는 시작 전부터 편파성 논란에 휩싸였다. 참석 전문가 8명 중 절대 다수인 6명이 ‘낙태죄 유지’ 정부 개정안에 찬성 입장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계는 반발하며 “진술인 구성을 전면 바꾸라”고 요구했다.

실제 참석 전문가는 총 8명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야가 추천한 법조계·학계·의료계·종교계 전문가들이다. 이들에게 ▲낙태죄 폐지 또는 존속에 대한 의견 ▲낙태죄 존속의 경우 대상, 시기, 사유 등 구성 요건과 처벌 수위에 관한 의견 등을 들을 예정이다. 그런데 전문가 8명 중 야당 추천인 4명(이홍락, 연취현, 음선필, 최안나), 법무부 추천인인 2명(정현미, 이필량)은 ‘낙태죄 유지’ 정부 개정안에 찬성 입장으로 알려졌다.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는 여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 발표할 진술인은 단 2명이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지난 3일 성명서를 통해 “현재 구성된 공청회 진술인을 보면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는 여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진술인은 2명에 불과하다”며 “국회의 책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파적인 구성의 공청회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법사위의 이번 공청회는 시기상으로나 진술인 구성으로 보아서나 모두 졸속적이고 편파적”이라며 “국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공청회가 아니라 이미 제출된 법안과 근거들을 책임하게 검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공청회가 정기국회 종료일이자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이달 9일 바로 전날에 열리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방안으로 현재 시간이 부족한 만큼 개정안을 당장 처리하지 않고 우선 낙태죄를 폐지한 뒤, 내년 이후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입법 공백이 생겨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우려가 크다.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인 연말이 지나면 ‘낙태죄 입법 논의’는 자동으로 폐기된다. 하지만 입법 공백 상태에서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더 큰 혼란과 고통에 직면할 수 있다. 국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헌재 판단 후 1년 반이나 시간이 있었는데도 정부와 국회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대체입법을 마련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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