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징역 29년3개월, ‘철퇴’ 기준 마련돼···내년 시행

[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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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이례적 판결에 멈추지 마라.” 이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및 여성계가 높여 온 목소리다. 그동안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다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 받았기 때문.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이 판결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것. 그러던 중 ‘n번방 사태’와 같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상습적으로 제작하는 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대 29년3개월의 징역형에 처할 양형기준안이 최근 확정 의결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요서울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디지털 성범죄 내부고발특별감형···신종 수법 범행은 가중

앞으로 ‘n번방 사태’와 같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상습적으로 제작하는 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대 29년3개월의 징역형에 처할 양형기준안이 확정 의결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이하 양형위)는 지난 7일 106차 회의를 열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확정 의결했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법률에 따라 선고형을 정하고 결정하는 데 참고하는 기준을 뜻한다.

‘피해자 고통’

공감하는 방향으로 변경

지난 9월 양형위는 청소년성보호법 11조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 양형기준을 세분화한 바 있다. 양형위는 이 기준에 공청회 의견을 반영, 디지털 성범죄 적발 및 근절을 돕고 피해자 고통을 더욱 공감하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제작 범죄는 ‘기본 5~9년’, ‘가중처벌 7~13년’, ‘특별가중처벌 7년~19년6개월’, ‘다수범 7년~29년3개월’, ‘상습범 10년6개월~29년3개월’ 등으로 양형위는 정했다.

영리 등 목적으로 판매할 경우 ‘기본 4~8년’, ‘가중처벌 6~12년’, ‘특별가중처벌 6~18년’, ‘다수범 6~27년’ 등이다. 배포 및 아동‧청소년 알선 범죄는 ‘기본 2년6개월~6년’, ‘가중처벌 4~8년’, ‘특별가중처벌 4~12년’, ‘다수범 4~18년’ 등으로 정했다.

구입 범죄의 경우는 ‘기본 10개월~2년’, ‘가중처벌 1년6개월~3년’, ‘특별가중처벌 1년6개월~4년6개월’, ‘다수범 1년6개월~6년9개월’ 등이다.

양형위는 특히 특별가중처벌할 수 있는 요소를 8개, 특별감경할 만한 사유 5개를 별도로 제시했다. 피해자가 학업을 중단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가중처벌이 된다.

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종 수법을 창출해 범행한 경우, 다수인이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범행하거나 범행을 주도적으로 계획 또는 실행을 지휘하는 등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경우 특별가중인자로 고려된다.

‘고령’ 집행유예 기준 제외

피해자의 인적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고,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을 촬영 또는 이 같은 촬영물, 복제물을 반포‧판매 및 전시‧상영, 소지‧구입‧시청‧저장한 경우에도 특별 가중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처벌 전력 없음’을 감경 요소로 고려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도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불특정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하거나 상당 기간 반복적으로 범행하면 감경 요소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 규정도 양형위는 신설했다.

피해자인 아동‧청소년의 특수성, 이들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 등을 고려, ‘처벌불원’을 특별감경인자가 아닌 일반감경인자로 그 위상을 낮춰 반영 정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나아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의 예시로 ‘자살, 자살시도’ 등이 최초 양형기준안에 포함됐으나, 자칫 이에 못 미칠 경우 심각한 피해에서 제외되는 등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이를 삭제했다.

다만 양형위는 앞서 세분화한 양형기준을 대체적으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되 ‘수사 협조’를 협조 정도에 따라 특별감경인자 또는 일반감경인자로 둬 디지털 성범죄의 조직적 범행을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부고발, 자수 또는 조직적 범행의 전모에 관해 완전하고 자발적인 개시를 할 경우 특별감경인자로 반영하고, 그에 미치지 못해도 자백으로 후속 범죄를 막는 데 기여할 경우 일반감경인자로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양형위는 지속적으로 논란되고 있는 징역형 집행유예 기준도 마련했다.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에게 범행을 하거나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 불특정 또는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당 기간에 걸쳐 반복적 범행을 한 경우 등을 부정적 사유로 제시했다.

아울러 종전 집행유예 기준에서는 피고인이 고령인 경우를 긍정적 참작사유로 반영했으나, 고령 기준이 불분명하고 이미 한국사회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점 등을 고려해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할 사정이 없다며 일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조주빈 [뉴시스]
조주빈. [뉴시스]

앞서 지난달 26일 법원은 아동‧청소년 8명을 협박,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고 범죄집단을 조직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양형위 기준에 따르면 조주빈의 혐의 중 제작 범죄의 경우 최대 징역 29년3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또 가중처벌 요소가 성립돼 당시 조주빈의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5~45년이었다.

비록 조주빈에 대한 선고 당시 양형기준안이 확정 의결되지 않아 직접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기존 사건들과 달리 새로운 양형기준안을 참고해 비교적 무거운 형을 내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편 양형기준의 범위가 넓고 ‘권고’에 불과해, 사회적 관심이 덜한 다른 사건에서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성계에서는 당장 박사방 2, 3심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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