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께/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에 불났다 쇠스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기원을 알 수 없지만 어린 아이들이 모래나 흙 속에 한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흙과 모래를 긁어 모아 쌓은 뒤 무너지지 않고 집이 되길 바라면서 부른 한국의 전래 동요다. 요즘 아이들이야 집 안에 아동용 유트브, 게임기 등 더 좋은 장난감이 있어 밖에 나앉을 일도 없지만 땅바닥과 모래, 나뭇가지가 유일한 장난감이었던 필자 또래들에겐 어린 시절을 소환하는 주문과 같다.

 지난 15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결행한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심정이 꼭 이랬을 것 같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사과를 결행했다고 표현하니 좀 이상하지만 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상륙작전하듯이 사과 내용을 위장하고 발표 시각도 새벽에야 통보하는 등 대국민사과 기습작전을 벌였으니 말이다.

 그 결과는 김종인이었다. 지난 8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끓고 사과했을 때도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김종인 뿐이었다. 거기에는 국민의힘도, 서울. 부산 시장선거 예비후보나 잠재적 대권후보, 소속의원과 당원도 없었다. 오로지 김종인 뿐이었다.

 이번 대국민사과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5.18사과 때는 당 이미지가 악화되진 않았는데 이번 대국민사과는 결과적으로 당의 '꼴통'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김 위원장과 그를 지지하는 측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중도확장 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가재. 붕어. 개구리'들의 몽니가 빚은 결과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도리어 김 위원장의 과거와의 단절을 향한 역사적인 첫걸음에 스크래치를 낸 그들을 출당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지역당협 당무감사를 통해 이들을 쫓아내겠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당내 지지그룹은 알아야 한다. 대국민사과를 반대했던 대다수는 사과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김종인 원맨쇼'를 반대한 것이다. 선한 의미로 해석하면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힘 전체의 사과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고 하지 않나. 김 위원장은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확고한 당내 리더십이 없다. 또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같은 철통 공권력도 없다. 더구나 지금은 스트롱 리더십보다 소프트 리더십을 더 선호하는 시대다. 나 홀로 리더십으로는 꿩도 닭도 다 놓칠 수 있다. 

 이미 탄핵관련해서 사과한 바가 있다. 2017년 2월 정우택 원내대표가, 탄핵이 확정된 2017년 3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지지율과 비호감도는 여전했다. 도리어 더 악화됐다. 이번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분명 이전 두 번의 사과와는 다른 결과를 내놔야 한다. 이제부터 김종인의 시간이 시작됐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이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제1야당 자리를 평화민주당(김대중)에 뺏기자 밀실야합, 사쿠라 등 온갖 비난과 조직이탈을 감수하면서도 3당 합당을 결행했다. YS는 민정계의 가진 모략과 음모를 깨고 당을 장악하고 대선에서 승리,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국민은 물론 야권 내부의 비난을 무릅쓰고 1995년 은퇴를 번복하고 정계복귀를 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비록 15대 총선에서도 졌지만 재야운동권 영입확대와 보수와의 연대(DJT연대)를 통해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기록을 세웠다. 양김 전 대통령의 진짜 정치는 3당 합당과 정계은퇴 번복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과 이후 많은 언론에서는 김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보여줄 실천, 즉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내년 서울. 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지난 21대 총선 참극을 피하기 위해 참고 있는 당원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형식과 내용은 매우 미흡하지만 이번 사과로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 다시 미래통합당의 과거사 청소는 일단락됐다. 지금부터는 김종인의 정치, 김종인의 개혁을 보여줘야 한다. 이 순간에도 김종인의 정치시계는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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