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4곳에서 실시되는 10·26 국회의원 재선거의 최대 빅매치 지역은 역시 대구 동을이다. 특히 이곳 선거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는 대구로 이전할 공공기관을 한데 모아 건설될 혁신도시를 동구로 이전하는데 누가 적임자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는 혁신도시 동구 유치 이슈를 선점한 상태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실력자’임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는 “대통령 친구라고 해서 혁신도시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특히 유승민 후보측은 이강철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라는 점을 은연중 부각시키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세인 대구정서를 감안해 ‘대통령 친구’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잘 알려진대로 이강철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는 노 대통령이 부산에서 국회의원선거와 시장선거에 출마했다가 계속 실패해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이강철 후보가 대구에서 부인이 운영하던 횟집을 팔아 선거빚을 갚아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본다.이강철 후보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7년6개월을 복역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유인태 의원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특히 1991년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연구소에 이강철 후보가 합류하고 이후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일을 함께 하면서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아 마치 죽마고우처럼 지냈다.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가 급부상하기 시작하자 그때 벌써 정치권에선 “노무현 후보가 집권하면 이강철이 실질적인 ‘정권의 2인자’가 될 것”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후 그는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으면서도 ‘왕특보’ 등으로 불리면서 실세로 자리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 외부인사영입단장으로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올인’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친구가 발목잡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지만 아마도 친구들 때문에 가장 많은 구설수에 오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만큼 취임 직후부터 친구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 최 전 비서관은 대선 직후 SK로부터 10억원에 가까운 양도성 예금증서(CD)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었다.노 대통령과 최 전 비서관은 오랜 친구이자 부산상고 1년 선·후배 사이다. 노 대통령은 고교시절 독서실에서 독서실 총무이자 고교 1년 후배인 최 전 비서관과 사소한 다툼으로 서로 주먹다짐을 한 것을 시작으로 친해졌다고 한다. 이후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최 전 비서관이 사무장을 맡았다. 또 대선에서 부산지역 대선자금을 총괄하며 참여 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살림을 총괄하는 총무 비서관 자리에 올랐다. 독서실 총무 출신이 친구 덕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된 셈이다.그러나 결국 노 대통령은 그 친구 때문에 정권 초기에 큰 타격을 받았다. 도덕성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해오던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국정수행과 관련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천명하는 사태로 치달았던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친구야”
역시 정권 초반인 2003년 7월에 터진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충북 청주 ‘술자리 향응 파문’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인 정화삼씨가 술자리에 동석함으로써 ‘조연’으로 등장, 말썽을 일으킨 바 있다.가장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월13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자신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강금원씨를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던 강씨는 당시 서울구치소로 가기 직전 “내가 속죄양이 됐으니 정치권도 이제 그만 싸우고 용서하라”고 일갈한 인물이다. 강씨를 사면할 것이라는 보도가 미리 나오자 여론이 악화됐지만 현정권은 대통령 친구의 사면을 강행했다.

노 대통령의 친구들이 이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가운데 얼마전에는 조선일보 정치부 홍 모 기자가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등 소란을 피우면서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 운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인들의 실소를 자아내는 일도 있었다. 젊어서부터 정치를 시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회친구’들이 많다. 지금은 대부분 작고했거나 현직에서 은퇴했다.특이한 점은 DJ는 해외에 절친한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은 물론 영국·프랑스·스웨덴 등 유럽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들은 대게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따라서 이들은 DJ가 해외망명 생활 중 사귄 친구들로, 대부분 정치인들이다. DJ는 현직 대통령 시절 외국순방을 가면 꼭 이들과 해후하는 비공식 일정을 만들곤 했다.

YS, 해외에 친구 없는 국내파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DJ처럼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철저한 ‘국내파’였기 때문에 해외에 친구가 거의 없다. 재임 시 해외순방 때도 현지인과 비공식으로 만나는 별도 일정은 별로 없었다.대신 YS는 정치판에서 고락을 같이 한 친구들이 많다. 주목할 것은 문민정부 출범 초기 재산공개 파문으로 공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박준규·김재순 전 국회의장과도 정치동료이기 이전에 매우 절친한 친구였다는 점이다.박준규 전 의장과 YS는 막연한 술친구였다 한다. 특히 두 사람은 정치권의 ‘밤 문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화제에 오르는 여러 가지 일화를 함께 만들어낸 친구사이였다.

1990년 3당통합 때도 민정당 소속이었던 박준규 전 의장이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YS를 설득하는 데 총대를 맸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문민정부 초기 사정의 칼날을 맞은 박준규 전 의장은 ‘격화소양’(신발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이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 YS와 결별했다.김재순 전 의장 역시 YS의 대통령선거를 도왔지만 박준규 전 의장과 비슷한 처지로 몰리자 ‘토사구팽’(兎死拘烹·토끼를 다 잡아 먹은 사냥꾼은 마지막에는 사냥개까지 잡아 먹는다)이란 유명한 말을 던졌다.김재순 전 의장은 YS와 5대 국회 이래 때로는 같은 길을, 때로는 다른 길을 걷기도 했지만 ‘30년 친구’였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 공개 과정에서 30년 우정은 파국을 맞았다.

5·6공은 대통령 친구들의 전성시대
그렇다면 역시 30년 이상 정치를 함께 하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해 온 DJ와 YS의 개인적인 관계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은 결코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간혹 협력을 할 때도 서로의 필요에 의한 정략적 결합이지 인간적으로는 절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DJ의 동교동계와 YS의 상도동계에 모두 정통한 한 정치권 인사는 “상고를 나온 DJ는 YS가 서울대를 나왔지만 너무 무식하다고 취급했고, YS는 DJ가 항상 속마음을 감추고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이에 앞선 5·6공은 가히 ‘대통령 친구들의 전성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5공의 전두환, 6공의 노태우 대통령부터가 절친한 친구였다.

여기다 5·6공을 이으면서 육사 11기의 대통령 친구들이 권력의 요소요소에 배치됐다. 정호용·김복동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복동 전 의원은 생전에 대권 꿈을 키운 적도 있어 육사 11기 친구 세 사람이 대통령에 오르는 진기록을 낳을 뻔 했다.또 군 출신이 아닌 대통령의 친구들도 이 시기에 정권을 좌지우지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절친한 고향친구인 이원조 전 의원이 ‘금융가의 황제’로 불리면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진 일이 대표적이다.그러나 5·6공의 대통령 친구들은 결국에는 서로가 여러갈래로 흩어져 서로 등을 돌렸다. 육사 시절부터 전두환 대통령을 자주 찾아 별명이 ‘친구야’였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들리는 노태우 대통령은 친구를 백담사로 유배 보냈다. 또 정호용 의원은 5공 청산 와중에서 의원직을 잃고 정치권에서 밀려났다.

“승룡이 째째한 놈”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사범 시절과 일본 육사 시절 친구 이야기가 간혹 화젯거리로 들리기는 했지만 뚜렷이 소개할 만한 부분은 찾기 어렵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어땠을까. 며느리 조혜자씨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릴 때 한양 서당에서 동문수학하던 친구가 찾아와 ‘나 산삼 좀 먹으려 하니 고성군수 자리 좀 달라’고 한 청탁을 거절하신 적이 있다. 대신 군수 자리는 주지 않았지만 간혹 선물로 들어오는 삼은 꼭 그 친구에게 보내줬다. 그러나 그 친구는 죽는 날까지 ‘승룡(이전대통령의 아명)이 째째한 놈’이라며 화를 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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