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작년 5월 30일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등이 출연하여 관객 1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대(大)영화다. 영화 ‘기생충’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였지만, 세계적으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올 2월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휩쓸었다. 특히 작품상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기생충’이 처음으로 수상하였다. 이러한 ‘기생충’이 이룩한 쾌거는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침체되어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소식 덕분에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내게 축하하는 덕담을 건넨 뒤, 한국에서는 반 지하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어와 적당히 얼버무려 대답한 기억이 새롭다.

미국 현지시간 21일 CNN이 ‘2020년을 정의한 문화적 순간’ 15개 장면을 발표했는데, 그 중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수상을 두 번째로 소개했다고 한다. 2020년은 코로나19와 더불어 ‘기생충’으로 시작해서 ‘기생충’으로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기생충(寄生蟲)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생물의 몸 안이나 밖에 붙어 살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동물’이다. 이러한 기생생물이 기생의 대상으로 삼는 동물이나 식물은 숙주(宿主)라고 불린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생충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송강호 일가와 이정은씨가 열연한 가정부 부부이며, 이선균과 조여정은 이들의 숙주에 해당한다. 송강호 일가와 이정은 일가가 전적으로 기대어 이익을 취하는 대상인 이선균과 조여정은 숙주였지만, 초기에는 기생충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하지는 않았다. 영화 ‘기생충’은 기생충들 간 이익의 충돌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기생충과 숙주의 충돌로 파탄에 이르게 된다. 기생충과 숙주의 숙명이다.

우리 정치현실도 이들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생명을 다했던 사람이 누군가를 숙주로 하여 기사회생하고,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것을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누군가도 그러한 과정을 꿈꾼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세 번째 도전이라 하니 식상하기도 하지만, 누구말대로 선거 때만 되면 참을 수 없는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워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는 ‘야권단일후보’로 나서겠다는 비책(?策)도 함께 내놓았다. 누군가를 숙주로 삼겠다는 심산이다.

그의 정치역정을 되짚어보면, 그는 기생한적보다는 숙주의 역할을 한 적이 많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5%지지의 박원순 후보에게 50%지지를 헌납했을 때가 그랬고,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어정쩡한 양보를 했을 때가 그랬으며,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본인은 숙주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기생충을 품은 숙주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숙주를 찾아다니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의 속셈을 알고 있지만 선뜻 숙주가 되기는 싫은 것 같다. 그와의 공존이 ‘악어와 악어새’간의 공생을 담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의 숙주, 기생충 관계가 그의 정치역정을 통해 누군가가 파멸한다는 이치를 이미 터득했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누구보다도 그러한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숙주의 정치에서 기생의 정치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도전에 나선 안철수 대표가 살아남는 길은 그가 숙주를 결코 해하지 않는다는 기생충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국민의당을 접을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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