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 킹메이커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여야의 유력 차기주자들처럼 대선무대를 직접 뛰는 것은 아니지만 묵직한 정치적 위상과 경륜을 바탕으로 판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는 마치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설계자로 나섰던 삼봉 정도전과 유사한 역할이다. 과거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허주 김윤환 전 의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킹메이커였다. 언론인 출신의 정무 감각과 시대정신을 꿰뚫은 혜안, 동물적 감각의 여론파악 능력 등으로 소수파민주계 출신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치무대에서는 킹이 아니라 오히려 킹 메이커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차기 대권의 향방을 점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광재와 양정철, 뉴시스
이광재와 양정철, 뉴시스

-친노.친문 복심.가 움직인다 임기말 재집권시나리오 가동
- 김종인 3 후보론김무성 자강론대선 후보 만들기 맞짱

2022년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내로라하는 킹메이커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무대 위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차기 대권의 키를 조율하는 이들이다. 여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자로 불리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강원도지사와 여시재 원장을 지내며 아이디어맨으로 유명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문재인정부 임기말 지지율 하락세와 부동산정책 난맥상 등 불리한 정치적 환경 때문에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한 가운데 물밑에서 임기말 재집권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야권에서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무대로 불리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김무성 전 대표의 정치적 체급은 보수야권의 유력 차기주자 못지않다. 다만 차기 대선 도전보다는 물밑 멘토로 나서면서 정권교체를 위한 그림자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에 따라 2022년 대권의 향방도 달라진다. 여야 킹메이커들의 내밀한 움직임을 추적해봤다.

이낙연·이재명 양강에 제3후보론까지킹메이커 비중 막중

여권의 차기구도는 표면적으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구도로 좁혀졌다. 지난 4월 총선 직후에는 이낙연 대표가 40%대 초반의 압도적인 대세론을 누렸지만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면서 이재명 지사의 거센 추격전이 이어졌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이 대표는 어차피 대선후보는 이낙연이라는 의미의 이른바 어대낙프레임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했지만 부동산정책 실패에 따른 광범위한 민심 이반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볼썽사나운 갈등이 지속되면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과 친문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차기 주자로 올라선 이 대표의 정치적 한계였다.

이 지사는 20186월 경기지사 후보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친문세력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지만 이후 잡초같은 생명력을 발휘하며 부활했다. 코로나19 위기 정국에서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과 재난지원금 논쟁을 주도하는 추진력 등으로 민심을 얻었다. 다만 친문진영의 최종 선택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정치적 한계가 뚜렷하다보니 범여권 안팎에서는 제3후보론도 나온다. 더구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본인의 손사래에도 보수야권의 차기 주자로 우뚝 서면서 차기 지형은 예측불허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불출마로 친문진영의 적자도 없는 셈이다.

여권 안팎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정권을 야권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이때문에 정세균 국무총리가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내년초 개각을 통해 대권 도전에 나선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차기 대선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혈투를 치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 , 임종석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판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압승 직후만 해도 정권재창출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지만 최근 차기 지형의 불투명성이 증대되면서 킹메이커의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후보론친노·친문양정철·이광재 행보 촉각

여권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현 정부 초중반과는 달리 악재가 지속되면서 정권재창출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차기 대권지형이 아직 유동적인 데다 향후 변수가 많은 만큼 킹메이커들의 활동반경도 커지는 것이다. 양정철 전 원장과 이광재 의원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친노·친문진영의 적자로 불린다. 양정철 전 원장의 경우 이른바 문의 남자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복심이다.

문 대통령의 정계입문부터 2012 대선 실패를 거쳐 지난 대선 승리를 기획한 주역 중의 주역이다. 이광재 의원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더불어 이른바 ()희정 우()광재로 불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최근에는 저서 노무현이 옳았다를 출간한 뒤 광폭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저서 발간을 계기로 차기 등판설을 거론하지만 이 의원 본인은 대권에 욕심이 없다며 손사래를 쳐왔다. 주연보다는 조연으로서 민주당 정권재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다.

양 전 원장은 민주당의 21대 압승 이후 홀연 자취를 감췄다. 다만 문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양 전 원장이 이대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교체될 경우 차기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지금이야 언론 접촉을 극도로 피하고 있지만 비서실장 타이틀을 달고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경우 양 전 원장의 위상과 영향력은 보다 막강해진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여권의 차기 대권판세가 출렁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양 전 원장이 적극 나선다면 정계은퇴 의지가 확고한 유시민 이사장 설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광재 의원의 움직임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의원 본인도 차기 잠룡으로 손꼽히지만 킹메이커로서 차기 주자간 거중 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능력과 정무 감각은 물론 무명의 블루칩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이끌어냈던 경험이 차기 대선국면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양정철 전 원장이나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경우 여론을 살피면서 정치판 수읽기가 누구보다 탁월하다위기에 처한 여권의 차기 지형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는 두 사람의 향후 행보와 그들이 내놓은 메시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 도토리키재기3후보 영입 가능성

현 정부의 레임덕 상황이 지속되면서 보수야권은 총선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뜯어보면 여전히 위기다. 차기 대권을 담보할 마땅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풍요속의 빈곤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차기 레이스에 나섰지만 정치적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대부분이 5% 안팎에 그치고 있다. 더구나 차기 대권직행을 선언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면서 보수야권의 인재풀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당 외곽으로 시선을 돌리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영입설이 대표적이다. 홍준표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원희룡 지사 모두 정치적 강점도 분명하지만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와 차기 대선에서 맞붙기에는 여전히 열세라는 인식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보수야권에서 당 외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력적인 주자들도 넘쳐난다. 최고의 후보는 문 대통령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윤석열 총장이다. 또 현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 역시 매력적인 카드다.

이밖에 최재형 감사원장 역시 월성 원전1호기 감사 과정에서 보여준 소신과 강단이 보수야권 지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보수야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이나 김동연 전 부총리의 영입설은 너무 앞서간 이야기라면서도 중량감있는 킹메이커들이 적극 나설 경우 뜻밖의 깜짝 이벤트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김종인과 김무성, 뉴시스
김종인과 김무성, 뉴시스

김종인, 여야최고 킹메이커김무성, 2선 후퇴 영향력 여전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현존하는 여야 정치인 중 최고의 킹메이커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걸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었다. 또 안철수 대표가 주도하는 국민의당 창당 돌풍으로 민주당이 최악의 위기에 처했던 201620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그해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여의도 정치무대에서 본명보다는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김무성 전 대표는 눈여겨볼 킹메이커다. 한때 차기 대권을 꿈꾸는 여야 1순위 주자였지만 지난 20대 총선 당시 옥쇄파동은 물론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 등으로 정치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다만 2선 후퇴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을 여전히 막강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캠프 좌장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로 등판해 위기에서 구해냈다.

다만 김 위원장과 김 전 대표의 역할은 다소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은 보수야권 후보들의 경쟁을 촉진시키는 제3후보론을 거론하면서 연일 메기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때 경제를 아는 70년대생 정치인을 언급하면서 40대 기수론을 지원사격한 게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이 기존 주자보다는 제3후보론에 무게를 둔 것은 안철수 대표에 대한 평가절하나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한 복당 허용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김 전 대표는 기존 유력후보들을 지원사격하는 자강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만큼 사심없이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다. 6선 관록에 당 대표를 거쳐 한때 유력 대선후보였던 김 전 대표는 주변에 흙 속의 진주가 있다며 차기 주자 발굴에 나섰다. 지난 6월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모임인 마포포럼 창립 당시에는 킹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보수야권 차기주자들을 잇따라 초청해 정책과 메시지를 소개하면서 차기 대선주자들의 경연무대를 만들고 있다.

여의도에서 활동 중인 한 정치평론가는 보통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여야의 차기 대선주자에게 쏠리지만 여의도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이른바 선수들의 경우 여야 대선후보보다는 킹메이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양정철 전 원장, 이광재 의원, 김종인 위원장, 김무성 전 대표 등 여야를 대표하는 킹메이커들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의 향방도 엇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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