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재경 평론가]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야권의 단일화 여부가 선거의 향방을 가를 단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대권으로 직행하리라던 세간의 관측과 달리 안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점에서 지난주 정치권에서는 꽤나 말들이 많았다. 사실 보궐선거와 재선거는 사유상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의 유고(선거법 위반 등으로 당선 취소무효 또는 사퇴나 사망의 사유)시 치러진다. 특히 재보궐 선거는 정치 신인은 물론이고 기성정치인들까지 자신의 정치적 외연 확장에 굉장히 유용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세력 싸움 형태의 선거판에서 재보궐 선거는 정치인에게는 굉장한 기회인 셈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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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 정치인 재보선 정치적 위상 높이고, 대선 수순 밟아
재보선국회입문, 안철수 서울시장 재보선거 출마 선언, 차기 대선은...

현실 정치 관점에서 재보궐 선거를 다시 분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일반 선거보다 정치적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나올 때 치러지기도 하며, 때로는 야당의 헛발질로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 실시되기도 한다. 정례적 선거를 앞두고는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세몰이를 통해 유리한 판세를 꾸리기 위해 노력하고 일정정도는 예상되는 성과를 거두지만 재보궐 선거는 돌발 변수가 다양하게 작용한다.

심판의 장재보선, 높은 관심 별들의 전쟁

첫째 관심도가 높다. 재보궐 선거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아니다. 국민과 언론의 시선이 출마자에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 총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일제히 이뤄질 때에는 각 지역에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다. 인물론을 내세워 전략 공천이 이뤄지기도 하며 치열한 당내 경선으로 후보가 정해지기도 한다.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서는 정치인들도 상당하다. 또 인물 비중이 낮은 곳에서는 이른바 텃밭 수성과 공략에 나서는 당대당 대결의 구도도 형성된다.

즉 전국 단위 정기선거는 전 국민이 각자 자신의 지역구나 기초 또는 광역단체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시선이 분산된다. 전국에서 국회의원 의석을 여당과 야당이 몇 석을 가져가느냐가 사실 첫 번째 관심사다. 여대야소나 여소야대와 같이 의회권력이 어느 쪽으로 넘어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지방자치단체장도 비슷하다. 서울과 경기, 인천 수도권이 최고의 관심사인데 이는 지역색이 강한 영호남 구도의 정치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재보궐 선거는 통상 여당에서는 지역 발전과 정책 추진의 동력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표심을 공략한다. 당력이 전국 단위 선거보다 재보궐 선거가 이뤄지는 곳에 집중된다는 의미다. 당연히 언론과 국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즉 인지도나 지명도 제고 차원에서 전국 단위 선거보다 한참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둘째,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당내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고, 지역의 조직을 탄탄히 꾸릴 수 있다. 역시 같은 의미로 당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후보 개인의 역량을 떠나 지지세를 당 안팎에서 확산시키기 용이하다. 특별히 정책이나 이념적 성향 또는 개인적 사유로 후보를 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이 속한 당의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세 확산과 유리한 판세 형성에 당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 당선될 경우 상대적으로 짧은 호흡으로 다음 수를 노릴 수 있다. 4년 주기의 임기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선거 구도에서 재보궐 선거 당선자는 어떤 사유든 간에 이전 당선자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게 역할이다. 집중도가 높은 선거에서 지지세를 확산하고 다음 선거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정기적 선거보다는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는 뜻이다.

넷째, 패배하더라도 부담이 적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짧은 기간의 임기로 인해 잠시 휴지기를 갖고 바로 다음 선거 도전이 가능하다. 같은 지역을 노린다면 유권자 입장에서 지난 선거의 잔상이 남아 다소 유리한 판세를 가져올 수도 있다. 더구나 대결하는 상대당의 후보가 바뀐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재보궐 특성상 당 내에서도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비교적 전국 단위 선거보다는 적은 편이다. 물론 정치적 내상을 입을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큰 흠결이 없다면 그 정도의 도전과 실패는 충분히 용납이 가능한 범위로 해석되는 게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다섯째, 대선으로의 지름길로 삼을 수 있다. 임기 4년의 중간에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패배하면 패배하는 대로 이른바 컨벤션 효과를 충분히 누린다. 설사 한 두 번 패배 하더라도 도전의 이미지가 대중에 각인될 수 있고, 당력을 집중하기 때문에 당내 입지도 크게 다질 수 있다. 여러모로 정치적 업그레이드가 재보궐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재보선금배지 달고 혹독한시련기 겪은 DJ.

실제 사례를 찾자면 무수한 이들이 재보궐 선거를 통해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 멀리 올라가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과 당선을 거듭하는 행보를 보였다. 19596대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했고, 1961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엄청난 시련을 겪은 뒤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청문회 스타로 부각됐지만 노 전 대통령도 사실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서울 종로)에서 당선되면서 1996년 선거의 패배를 씻었다. 물론 재보궐 선거는 아니지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부산으로 내려가 낙선하면서도 대중적 이미지는 오히려 높아지는 효과를 거뒀다. 이어진 정치적 굴곡에도 200216대 대통령 선거 승리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성장을 이룬 결정적 순간으로 종로 재보궐 선거와 부산 북강서을 선거를 꼽는 이들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 자격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선거의 과정을 보면 재보궐 선거가 역시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19984월 재보궐선거(대구 달성)을 통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이후 이른바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보수진영을 오랫동안 이끌었기 때문이다. 달성에서 4선을 이룬 뒤 비례대표를 합쳐 5선에 성공한 뒤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18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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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비운의 정치인손학규...정계은퇴 선언

현역 정치인 중에서도 재보궐 선거가 계기가 된 이들이 많다. 그 중 손학규 전 대표는 재보선으로 국회에 발을 디뎠지만 비운의 정치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93년 경기 광명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다음 총선에서 신한국당 의원으로 15.16대 당선에 성공했다. 이후 탄탄대로였다. 복지부장관,경기도지사까지 특히 20114.27 분당을 재보선에서 승리해 차기 대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재보선은 그에게 정계은퇴선언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20147.30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병(팔달)에 출마해 낙선한 그는 바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있는 토담집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2011년 성남분당을 재보궐 선거에 당선된 경력이 있고, 유승민 전 의원은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가 이듬해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대구 동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다시 국회의원이 된 바 있다. 유시민 작가도 2003년 고양 덕양갑 재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다만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적 구분을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같은 재보궐 선거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은 지역구가 서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의정 활동은 중앙정치무대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단체장은 상황이 다르다. 즉 서울시장이 아니라면 국회라는 중앙무대가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입법기관과 행정조직 수장이라는 역할론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치와의 거리감이 정치적 성장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 바로 서울시장직 수행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보궐선거라 해도 그 정치적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서울시장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단체장을 지낸 뒤 유력 정치인 자리로 성장한 예는 있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는 지금까지 없다.

지방 도지사 출신 중앙이목끌기 힘들어

과거 십 수 년전 지역의 큰 자치단체장을 지낸 한 정치인은 필자와의 자리에서 정치적 포부를 밝히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 놓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유력 정치인을 넘어 대통령 자리까지 염두에 두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었는데, 행정조직을 이끌며 언론이나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풀어야 할 지역 현안이 상당한데다 정치적 셈법으로 행보를 가져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필자의 견해로 이런 분석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이념과 사상 그리고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의민주주의를 성숙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열린다. 부적절한 성추문으로 인해 유고가 발생한 탓에 여느 때보다 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정치인은 선거로 성장한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정치적 이념과 사상 그리고 정책으로 공정하게 경쟁해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정치적 성장을 하게 된다면 또 한 명 아니 두 명 세 명 이상의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 탄생할 것이다.

정치적 자산이 많아야 정치 문화도 발전한다. 모쪼록 많은 이들이 공정한 경쟁으로 자신만의 정치 브랜드를 구축해 가길 바란다. 여든 야든 유력 정치인이 많고 나아가 대통령감이 많아야 국회의원 선거든 대통령 선거든 흥행하지 않겠는가. 정치는 사람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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