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얼어붙은 도심에 따뜻한 기부 손길 이어져

자원봉사자들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자선냄비를 지켰다. [사진=김혜진 기자]
자원봉사자들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자선냄비를 지켰다.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사람들은 크고 중요하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에는 집중하지만 작고 사소한 일은 근본적인 일이라고 해도 경시해 버린다. 우리 사회에는 작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고마운 사람들의 일터를 동행하며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려 한다. 일요서울은 연말을 앞둔 지난 21일,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 ‘케틀메이트(KETTLEMATE)’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오랫동안 동전 수북하게 모아 냄비 속에 넣기도
- 신용카드·QR코드·각종 페이 활용한 디지털 기부 도입

낮 1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 명동 예술극장 앞 사거리 한쪽에 ‘구세군’ 모자를 쓰고 빨간색 동그란 가방을 든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자선냄비’라고 적힌 사다리꼴 삼각대를 세우고 가운데에 빨간색 자선냄비를 걸었다. 냄비 옆에는 ‘NO CASH? NO PROBLEM’이라고 적힌 작은 쇠 판넬을 함께 걸었다. 그 옆에는 빨간색 패딩을 입은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자선냄비 모금함 설치를 돕고 있었다. 이들은 매년 12월 한 달간 거리 곳곳에서 모금 활동을 진행하는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 ‘케틀메이트’들이다. 

구세군 모자를 쓴 자원봉사자는 구세군 교회 사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달 1일부터 참여하고 있다는 그는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선냄비를 찾아오시는 분들 생각이 많이 난다”며 “‘아직까지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자선냄비를 지켰다. [사진=김혜진 기자]
자원봉사자들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자선냄비를 지켰다. [사진=김혜진 기자]

“소외 이웃들의 삶 변화 위한 유일한 활동”

구세군 자선냄비 사업은 1928년부터 올해로 92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철호 구세군 대한본영 커뮤니케이션스부장은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살피고 돕는 일에 헌신적으로 노력하고자 한다”며 “소외된 이웃들이 삶에 변화를 이뤄낼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자선냄비 사업이 연말에만 이뤄지는 이유와 관련, 그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어려운 성탄을 맞이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쇠솥을 걸고 모금 활동을 한 것이 자선냄비 모금의 계기”라며 “모두가 행복하고 기쁜 성탄절이 있는 12월마다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2시가 되자 명동 거리에는 맑고 청아한 종소리가 5초에 한 번씩 울렸다. 자원봉사자들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자선냄비를 지켰다. 봉사자들이 모금함을 설치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기부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첫 기부자는 점심시간에 잠깐 나온 듯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기부를 하고 얼른 총총 뛰어갔다. 이후 거리를 지나는 할아버지, 아주머니, 젊은 연인, 어린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금함에 손길을 내밀었다.

한 70대 남성 기부자는 “자선냄비에 처음 기부를 해 봤다”며 “마침 가방 속에 천 원짜리가 몇 장 있어 지나가는 길에 하게 됐다. 기회가 될 때마다 종종 하려 한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기부자도 “아이 이름으로 정기 기부를 하고 있었는데, 연말이기도 하고 마침 자선냄비가 보여서 기부를 했다”고 말했다. 9살 어린이 기부자는 “지하철역에서도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이 있어 기부를 했던 적이 있다”며 “살기 어려운 사람들한테 기부금이 가고 있다고 알고 있어서 (기부를 하니까) 마음이 좋다. 앞으로도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기부자가 동전을 수북하게 담은 지퍼백을 자원봉사자에게 전달했다. [사진=김혜진 기자]
한 기부자가 동전을 수북하게 담은 지퍼백을 자원봉사자에게 전달했다. [사진=김혜진 기자]

이날 한 남성은 오랫동안 모은 듯 동전을 수북하게 담은 지퍼백을 자원봉사자에게 전달했다. 전달 받은 자원봉사자는 “12월 한 달만 생각하지 않고 쭉 자선냄비를 생각하며 돈을 모아 기부해 주시는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첫째 날에도 저금통을 가져오셔서 기부하는 분이 계셨는데 꾸준하게 모아 나눔에 동참해주시는 분들께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철호 부장은 “돌도 안 된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돌 반지를 넣어준 분, 3년 동안 폐지를 모아 판 금액을 기부하신 분 등 다양한 기부 사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부자들은 자원봉사자에게 “좋은 곳에 쓰게 해 달라” “감사하다” 등의 말을 건넸다. 몇몇 기부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부끄럽다며 재빠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구세군 사관학교 자원봉사자는 “기부자분들이 좋은 곳에 써 달라고 하거나 날씨가 추울 땐 음료를 갖다 주시기도 한다”며 “적극적으로 사랑의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디지털 기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코로나19로 전년 비해 감소…‘디지털 기부’ 신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거리모금 금액(12월20일 기준)은 14억5천만 원으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12월 한 달간 활동을 해 온 자원봉사자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전체 모금액으로는 적을지 모르지만 100원 동전부터 천원 권, 오천 원 권 이렇게 한 분 한 분이 넣어 주신 작은 정성들이 모여 매년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가장 큰 특징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디지털 기부 방식이 도입된 것”이라며 “현금을 소지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현장에서 신용·후불교통카드나 제로페이 같은 각종 페이 어플, QR코드 등을 활용한 다양한 기부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 부장은 “이 같은 디지털 기부는 젊은 분들이 주로 활용한다”며 “그 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ARS후원 모금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현금이 없던 기자도 디지털 기부를 진행해 봤다. 먼저 스마트폰을 켜고 네이버페이 어플에 들어가 ‘현장 결제하기’를 누르자 QR코드를 찍는 화면이 나왔다. 쇠 판넬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자마자 바로 결제하기로 넘어갔다. 여기에 원하는 금액을 입력하면 페이에 등록된 카드로 1분도 안 돼 손쉽게 결제가 가능하다. 결제 내역에서 기부 금액과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 한 달간 모인 자선냄비 모금액은 ‘기부금품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 공익법인 회계 기준 등에 근거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최 부장은 “자선냄비 모금이 진행되기 전에 행정안전부에 모금 계획서를 내고 모금 이후엔 결과 보고서와 사용계획 승인요청서 등을 제출한다”며 “모든 집행을 마친 뒤에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고 감사보고를 참고해 행정안전부에 결산보고를 하는 투명한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모인 자선냄비 모금액은 ▲아동‧청소년 ▲노인‧장애인 ▲여성‧다문화 ▲긴급구호‧위기가정 ▲사회적 소수자 ▲지역사회 역량강화 ▲북한 및 해외 등 7가지 나눔 영역 중 ‘기초생계·역량강화·환경개선·건강증진·사회안전’이라는 5가지 나눔 원칙과 방향성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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