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한화·롯데順...총수일가 부당 이익 우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지난해 대기업집단이 계열사들에게 거둔 상표권(브랜드) 사용료가 1조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SK·LG그룹은 계열사로부터 받은 상표권 사용료가 2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드 사용료란 대기업 계열사가 지주회사(또는 모회사)에 내는 브랜드 값이다. 상표 소유권이 없는 회사들은 브랜드 소유권을 가진 지주사나 계열회사에 사용료를 내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뚜렷한 기준 없이 자의적인 계산방식을 사용하면서 이를 통해 총수일가 사익편취에 이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 CJ·한국타이어 지주사의 상표권 사용료가 매출의 절반을 넘는 등 '땅 짚고 헤엄치기식' 수익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수취회사의 상표권 사용료 수입비중 높아
37개 기업집단 108개 회사 공시의무 위반...공정위의 공시 의무화에도 '그닥' 


상표권(브랜드) 사용료가 1조원을 넘어선 것은 2017년이다. 이후 계속 증가세를 기록중이다. 

지난해 12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상표권 사용 거래 현황'에 따르면 지난 해 총수가 있는 기업 집단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상표권 유상 사용 비율, 매출액 대비 상표권 사용료 수입액 비율이 높았다. 총수 있는 집단의 상표권 유상 사용 비율은 70.9%, 총수 없는 집단은 33.3%였다.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 회사 중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곳은 매출액 대비 사용료가 많았다. 이런 회사 36곳의 사용료 대비 매출액 비율은 1.32%였다. 총수 일가 지분 20% 미만인 상표권 사용료 수취 회사는 0.05%, 총수 없는 집단의 수취 회사는 0.02%였다.

매출 절반 이상이 브랜드 값

연간 상표권 사용료 규모가 가장 큰 기업집단은 61개 계열사에서 2705억 원을 받은 SK로 나타났다. 2위는 23개 계열사에서 2673억 원을 받은 LG였다.

연간 상표권 사용료 규모가 1000억 원 이상~2000억 원 미만인 곳은 한화(1475억 원)·롯데(1024억 원) 2곳이다. 효성(498억 원), 현대자동차(448억), 두산(337억 원), 한진(289억 원), 코오롱(271억 원), 한라(263억 원), LS(242억 원), DB(202억 원), 현대중공업(167억 원), 삼성(145억 원), 금호아시아나(143억 원), HDC(113억 원), 동원(109억 원), 삼양(104억 원), 미래에셋(103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2019년 상표권 사용료를 낸 집단은 42곳으로 전년 (37곳보다 5곳 늘어났다. 금액 역시 1조4189억 원으로 전년(1조3184억 원) 보다 1005억 원 증가했다.

2019년 사용료를 내지 않은 나머지 22곳은 상표권을 무상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19곳은 상표권 무상사용에 관한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다. 상표권 무상사용 집단 가운데 교보생명보험·이랜드·네이버 3곳은 유상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19년 사용료를 낸 집단 42곳 중 39곳은 기존 매출액을 바탕으로 상표권 사용료율을 매겼다. 상표권 사용료율은 한국타이어(0.75%), 삼성·삼양(0.5%), CJ(0.4%) 순으로 높았다. KT·에쓰-오일(S-Oil)·IMM인베스트먼트는 정액 수취 등 다른 방법으로 사용료를 받았다. 내부 상표권 사용료 거래가 총수일가의 이익을 늘리는데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앉아서 돈 버는 총수일가    

문제는 이렇게 증가 일로인 브랜드 사용료 계산방식이 뚜렷한 기준 없이 대기업집단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통상 브랜드 사용료 계산법은 매출액 또는 영업수익에서 광고 선전비를 뺀 금액에 사용료율을 곱한 금액을 분담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이었던 이태규 의원은 2018년 국정감사 당시 "기업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용료를 산출하는 이유는 기업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이를 악용해 지주사나 대표사에 필요이상으로 과도하게 수수료를 주면서 총수 일가에 부당지원을 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상표권 사용료를 받은 20개 회사 중 13개 회사(65%)는 총수 일가 지분율(상장 30% 이상, 비상장 20% 이상)이 높은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해당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도 이 같은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2018년 4월께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계열사 간 '간판값'(상표권 사용료) 거래 내역을 매년 공개하도록 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회사가 매년 5월 31일까지 전년 계열회사 간 상표권 사용 거래 현황을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상표권 사용료 수취회사뿐만 아니라, 지급회사도 거래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공시 항목은 지급회사, 수취회사, 대상 상표권, 사용 기간, 연간 사용료 거래 금액, 사용료 산정방식 등이다.

개정안에는 거래규모와 상관없이 계열회사와 벌인 모든 상표권 사용료 거래내역을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이 거래를 상품·용역거래로 인식해 일정 규모 이하의 사용료에 대해서는 공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이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근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시의무 위반 건수는 전년 보다 다소 개선됐지만 미의결·미공시 등 사례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미의결·미공시, 장기간 지연공시 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어 사전적으로 교육 및 안내를 강화하고 사후적으로는 이행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정위는 64개 대기업집단 소속 2284개 소속회사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상 3개 공시의무(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비상장사 중요사항 공시, 기업집단현황 공시) 이행 여부를 점검해 공시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37개 집단 108개사(총 156건)에 13억987만원 과태료를 부과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