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귀국 보따리’에 무슨 선물 담았나?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 8월 26일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플러싱에서 열린 제2차 한미 FTA 비준 촉진세미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내우외환에 빠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같기도 정치’가 다시 성행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한미 FTA 비준을 비롯해 국정쇄신, 대북문제,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당-정-청이 엇박자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172명이나 되지만 원내 1당의 위상이 무색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한 고질적인 컨트롤 타워 부재론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이명박 대통령의 11박 13일 해외 순방을 두고 친이재오계는 이 대통령과 이재오 전 의원의 ‘워싱턴 회동’을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 중 이 전 의원 및 이재오계 참모들과 ‘비밀 회동설’부터 ‘대통령 특보단과 만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회동 배경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행정부에 인맥이 없는 이명박 정부가 이 전 의원을 통해 ‘대미 비밀 특사 역할을 맡겠다’는 그럴듯한 소문도 퍼졌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견우와 직녀’로 변한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으로 두 인사의 만남 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친이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진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주최로 이명박 후보 경선 캠프에 몸을 담았던 안국포럼 출신 의원 12명과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다가 무산됐다.


공성진 최고의원 워싱턴행 무산 내막

모임이 사전에 언론에 노출된 것이 그 배경으로 꼽히고 있지만 친이 내부 분위기는 친이 직계 진영을 견제하려는 세력이 외부에 고의로 흘렸다고 분개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차라리 모임을 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며 이상득 의원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친이재오 인사로 알려진 공성진 최고위원의 워싱턴행이 좌절됐다. 공 위원은 그동안 ‘이재오 조기복귀론’을 주장하며 친박 진영과 중립진영의 ‘불가론’에 맞서왔다.

특히 공 위원은 이 대통령이 2박3일간 워싱턴행을 계기로 이 전 의원과 만나서 대통령과 만남을 주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 의원이 이런 워싱턴행 계획이 외부로 알려지자 역풍이 불었다.


당장 중립 성향의 당내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권영세 의원이 들고 일어섰다.

권 의원은 지난 12일 작심한 듯 한 라디오 방송에 출현해 “누구를 데려와 강제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해서는 안 된다”며 “활력 있는 정당으로 변해야할 때 당을 찢어 놓는 행태”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나아가 권 의원실에서는 “당내 의원들을 거수기 정도로 생각해 당내 민주화를 후퇴시키고 지도부는 무능해 대북 문제나 한미 FTA에 어정쩡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같기도 정치’를 하고 있다”며 “게다가 친박 진영은 ‘잘하나 보자’식의 수수방관하는 데 이재오 복귀론 주장은 당내 분란만 가져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 위원은 당초 워싱턴행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전 최고와 만남 주선 계획 역시 불투명하게 됐다.

공 위원 측은 이에 대해 “워싱턴행이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 갈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공 위원 측은 이 전 의원과 이 대통령의 회동과 관련 “당내 이재오 불가론이 확산되는 시점에 비밀 회동을 가진다면 ‘이재오 최고를 만나러 미국에 갔느냐’는 역풍이 불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았지만 이제 두 사람의 만남은 힘들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한나라당 의원 워싱턴 방문 ‘봇물’

이어 공 위원 측은 “두 사람이 비밀 만남을 갖기보다 이 전 의원이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만큼 공식적인 행사에서 얼굴을 보는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내 친박 진영 및 중립적인 인사들의 시각은 친이재오계와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특히 이 대통령의 워싱턴 일정에 대통령과 이 의원이 비밀 접촉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근거로 한나라당 친이 성향의 의원들이 각종 행사를 빌미로 워싱턴 행이 이뤄져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을 보면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11월4일부터 16일까지 워싱턴을 방문했다. 이어 17일부터 19일까지 브라질을 공식 방문했고 20일부터 21일까지 페루를 방문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22일부터 23일까지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후 귀국하는 길인 24일에 로스앤젤레스 등 13일간 일정을 소화했다.

이 대통령의 방문일정 중 눈에 띄는 것은 워싱턴 일정이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역시 워싱턴 방문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학계, 전직 각료급 인사 등 간담회를 갖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미 업계 대표 등과 만났다.

한편 한나라당 의원들의 워싱턴행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들이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 먼저 방문했다.

참석자는 한나라당 박진 위원장을 비롯해 황진하, 민주당 문학진, 선진과 창조모임의 박선영 의원이 17일부터 5일간 방문했다. 또 독도영토수호 위원인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과 민주당 김유정 의원 역시 워싱턴을 20일부터 26일까지 찾았다.

나아가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UN총회에는 ‘이재오 조기 복귀론’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을 주축으로 주호영 의원과 민주당 서갑원 의원이 17일부터 24일까지 방문했다.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반기문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워싱턴 방문에 눈에 띄는 인사가 한나라당 정옥임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재오 전 의원 사람으로 알려진 정 의원은 외교안보연구원 초청으로 17일부터 24일까지 워싱턴을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정 의원의 방문은 공성진 최고위원의 워싱턴행 무산으로 인해 대신 이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가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공 위원과 정 의원은 친이재오계로 절친한 사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 측은 미국 방문 전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이 비밀 회동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해 당내 주목을 받았다.


이재오, 대통령 대미 비밀 특사 역할?

특히 두 사람의 회동 관련해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을 미국에 연초까지 머물게 하는 대신 대미 비밀 특사 역할을 맡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이 대통령간 메신저 역할을 할 것’, ‘오바마 대통령과 친분으로 화려하게 국내 복귀를 할 것’이라는 등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실제로 회동이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소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의 만남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친박 진영에서는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이 만남이 무산될 경우 대통령을 특별 수행했던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만남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 대통령과 함께 워싱턴을 특별 방문한 수행원으로는 김덕룡 국민통합 특보와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대통령 경제특보, 박형준 대통령실 홍보기획관이 있다. 당초 박 기획관은 미국을 방문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대통령의 강력한 설득으로 동행하게 됐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박 기획관이 대통령의 ‘밀지’를 들고 이 전 의원과 만났을 공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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