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과의 공도식 과장 하면 사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선 사내의 모든 과에서 사무용품이나 비치할 물품을 사야 하는데 공 과장의 결재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팩스 용지가 떨어져 새로 타내려고 하면 두번, 세 번 공과장에게 다녀가야 한다. 왜 물자를 헤프게 쓰느냐며 무턱대고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용지 사용대장을 가져오라느니, 그쪽 과장의 설명서를 가져오라느니 하면서 사람을 괴롭힌다. 특히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심하게 군다.

타 과의 사람들도 공 과장이라면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드는데 같은 자재과에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자재과에는 공도식 과장을 비롯해 모두 네명이 있다.
대리인 인도양은 이름 그대로 도량이 넓고 마음이 너그러워 과 내의 맏형 노릇을 한다.

말단 사원인 조신해 씨는 성질이 꼼꼼하고 자존심이 강해 제일 견디기 어려워 하는 사원이다. 그 외 장부 정리를 맡은 한지순양등 모두 네 명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과장 밑에서 시집살이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느냐고 타과 직원들의 동정을 받고 있는 판이다.

“자, 오늘 저녁 우리 마누라 작품 감상이나 하러 갈까?”
퇴근 무렵이 다 되어 가면 가끔 공과장이 내놓는 제안이다. 그럴 땐 모두가 마음속으로 ‘또야?’하고 한숨을 쉰다.

그가 말하는 ‘작품 감상’이란 공과장 부인이 만든 개성 조랑 떡국이나, 김치말이 냉면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의 모든 식구를 공과장네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함께 먹자는 뜻이다. 그런데 그냥 초청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게 아니고 이런 날이면 과원들이 호주머니를 털어서 작품 감상료를 가지고 가야 한다. 감상료가 좀 적은 날은 공 과장 사모님인 맹 여사에게 온갖 괄시를 다 받게 된다.

공 과장의 별명은 구두쇠 외에도 공처가란 별명이 있다. 부인의 성은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과 직원들이 맹 씨로 명명하고 맹여사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하도 무섭기 때문에 맹호여사라고 했는데 그것을 줄여서 맹여사, 맹여사 하는 것이다.

못난 상사, 못난 사나이의 표본처럼 생각하던 이 공 과장이 지난 여름 바캉스 이후에는 가장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이 회사에서는 한여름 일주일 동안 문을 닫고 연수원이 있는 낙산 해수욕장으로 전 사원이 휴가를 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원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래사장에서 한여름을 즐겼다. 짓궂은 총각 사원들은 비키니 여사원을 따라다니며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도 자재과 직원들은 공 과장에게 잡혀 있어야 했다. 
비치 파라솔 아래서 공 과장과 함께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인도양 대리, 조신해 씨, 한지순 양 모두 돈을 바치다시피하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해변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사람이 파도에 떠내려 가요!”
일행이 화투장을 던지고 나가 보았다. 정말 사원 한 사람이 너무 멀리 수영을 나갔다가 파도에 쓸려 가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수영 솜씨 좋다고 떠들던 사원들은 아무도 구조하러 나서지 않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때 이변이 생겼다. 천하의 이기주의자, 심술꾼, 구두쇠 공도식 과장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아니, 공구두쇠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과장은 사력을 다해 파도를 헤치고 나갔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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