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코로나19에 지배당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20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먼 훗날 역사는 2020년을 공백의 한 해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이 저무는 것과 함께 삼류 신파극도 끝났다. 관심을 끌었던 ‘이상한 놈’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었다(지난해 12월18일자 졸고 참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이 낸 ‘정직 2개월 효력집행정지 신청사건’을 인용하여, 자신들이 ‘이상한 놈’임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삼류 신파극을 보면서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던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나쁜 놈’이었고,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좋은 놈’이라고 주인공의 캐릭터도 정정해주었다. 엄청난 반전의 삼류 신파극이었다.

삼류 신파극이 막을 내리니 이 극을 연출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바빠졌다. 대국민 사과도 했고, 주인공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교체도 했다. 지난해 12월30일 현재 4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미애 장관이 그대로 법무부장관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이 무책임하기는 해도 무능한 대통령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지난해 11월 27일자 졸고 참조). 그러한 판단도 잘못된 것이었다. 삼류 신파극이 성황리에 막을 내리자, 서울행정법원에 의해 주인공 바꿔치기가 이루어진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차기대권후보 지지도는 여러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범여권과 범야권의 차기대선후보 지지도는 길항하고 있으며, 압도적인 국회 의석수의 차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지지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를 앞서는 조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선봉장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을 뿐인데, 차기 대권지형은 정부여당의 안정적 정권재창출에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이 자초한 결과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2020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 공백의 한 해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을 정치적 공백의 1년으로 치부하기에는 대한민국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5년 임기의 문재인 대통령이 1년의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뭔가 획기적인 노력과 업적이 필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우리 국민들에게도 조금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신축년(辛丑年)이다. 2020년의 정치적 공백을 확실하게 메꾸는 한 해가 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무능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은 싫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것은 더더욱 싫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단이 필요하다. 헌법 개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헌법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야당과의 합의는커녕 여당과의 협의도 없었던 졸렬(拙劣)한 헌법개정안이었다. 국회가 심의하지 않아 폐안이 되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지켰고, 헌법 128조 1항이 보장한 자신의 권한행사에 만족해했다.

당시 헌법개정안이 폐안이 된 것은 개정안의 졸렬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높은 대통령 국정운영지지도, 여당의 정권재창출에 대한 높은 가능성, 야당의 무력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통령 국정운영지지도는 30%대로 추락했고, 임기는 1년 반도 남지 않았다. 여야의 당지지도는 백중세이며, 국민적 지지를 확고히 받고 있는 대선후보도 없다. 개헌논의가 블랙홀이 될 수 있는 개헌의 적기다.

다행히 아직 여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들고 있다. 의회중심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으로 마지막 책무를 다한다면, 유능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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