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대표

개인이나 집단,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합종연횡(合從連衡)이다. 합종과 연횡은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秦)과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 등 6국을 놓고 당시 재상이었던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이 펼친 외교 전술에서 비롯됐다.
 

합종과 연횡,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실제 그 목표는 달랐다. 합종은 소진이 6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힘을 합쳐 최강대국 진나라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면, 연횡은 장의가 진나라가 6국을 평정하여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분열전략이었다. 즉 합종은 연대할 국가들과의 공존을 목표로 한 전략이었다면 연횡은 함께 할 국가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실제 소진이 주장한대로 진나라를 제외한 5국이 합종을 이루자 진나라는 감히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못해 천하가 평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문수학했던 소진이 죽자 진나라 재상으로 있던 장의는 합종책을 깨기 위해 초(楚)에게 제(齊)와의 전쟁을 부추겼고 결국 초. 제에 이어 나머지 나라 모두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합종연횡은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 특히 적의 진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만 쫓아서는 안 된다는, 제 힘만 믿고 까불다가는 돌아오는 것은 멸망 뿐이라는 무서운 교훈을 주고 있다. 

국민의힘이 경자년을 하루 앞두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 룰을 결정하는 공천관리위원회를 열었다. 정진석 위원장은 “누구라도 불이익을 걱정 않고 경선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미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국민의힘 입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자당 후보론'을 재확인한 것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면, 선 입당은 당연한 요구이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최근 오르고 있는 정당지지도나 당원과 조직, 재정 등 뭐를 보더라도 자당 후보를 내지 못해 다른 정당의 후보를, 외부에서 영입해 빌려 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시체말로 개쪽이다. 각종 여론조사는 김종인 위원장의 말처럼 "선거가 결국 우리 국민의힘 쪽으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강해지고 있다. 정 위원장의 말대로 4월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문재인 정권의 폭정 종식'과 '정권 심판'을 위한 승리가 대의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말대로 승리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최적 후보 발굴'인데 국민의힘 내에는 안철수만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김선동, 이종구, 이혜훈 전 의원, 조은희 서초구청장,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김근식 송파병 위원장 등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고 오신환 전 의원은 출마선언을 준비 중이며 윤희숙 의원도 고심중이다. 하지만 이들로는 힘들다. 안철수는 커녕 금태섭 하나만도 못하다.

그나마 나름 경쟁력이 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은 출마 결심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미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때 김종인 위원장이 마음에 두었던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까지 출마의사를 흘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홍정욱 테마주' IR의 일환으로 본다.) 결국 국민의힘과 반문 야권은 합종연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합종과 연횡은 다르다. 국민의힘이나 안철수 모두 함께 공존할 합종인지, 잡아먹기 위한 연횡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YS와 DJ의 후보단일화 실패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87년 오랜 독재정권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로, 새로운 민주정부를 기대하던 국민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터진다. 대표적인 민주화 거목인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이 새헌법에 따라 치러질 13대 대선 야권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것이다.

당시 후보만 단일화 하면 누가 나가도 무조건 승리할 것으로 낙관했지만, 그리고 두 사람이 반드시 단일화를 합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12월16일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두 사람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것은 김대중 후보가,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4자필승론을 맹신한 탓으로 알려지고 있다. 4자필승론이란 노태우(대구.경북), 김영삼(부산.경남), 김종필(충청), 김대중(호남)이 모두 출마해 각자 자기 지역을 가져가면 수도권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김대중 본인이 당선될 수 있다는 이론 아니 괴론이다. 

그때와 지금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당시 여론에 따르면 야권 후보 승리가 매우 유력했다. 김대중 후보가 후보단일화 천명을 알고 있음에도 야권분열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출마를 강행한 것도 이같은 낙관(야당 필승)에 근거한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4자필승론은 그 자체가 허구였으며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직을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또 민주정부 출범 좌절뿐만 아니라 영. 호남 지역갈등과 정치불신, 분열을 본격화시켰다.

김종인 위원장이 1차 공관위 회의에서 밝힌 ‘최적후보론’에 4자필승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최적 후보론이 4자필승론처럼 후보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가능이 높다. 김 위원장이 굳이 흔히 쓰지 않는 ‘최적’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 의도한 바가 있을 것이다. 길을 찾을 때 최적경로는 단지 빠르기나 거리 하나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 요금, 지체요인 등 다양한 조건들을 감안해 추천하는 경로를 의미한다. 즉 김 위원장의 ‘최적후보론’이 기왕이면 자당 후보여야 하고, 기왕이면 본인의 권력을 보장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닐까 매우 염려된다. 

국민의힘과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 ‘후보단일화’ 명령을 무겁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후보단일화에 실패한다면, 또 4자필승론과 같은 유사 논리로 국민을 속이려 한다면, 합종(공생)이 아니라 연횡(흡수)만을 꾀한다면 국민들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2022년 대선에서 냉혹한 심판의 칼날을 야권을 향해 내리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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