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수집 알바’ 음지서 성행···수사기관, 법적 근거 미비에 ‘난항’

개인정보 수집. [그래픽=뉴시스]
개인정보 수집. [그래픽=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아파트‧대형 마트 등 차량이 주차된 곳을 다니며 차량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수상한 아르바이트(이하 알바)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차주(車主)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일요서울 취재 결과, 수사기관은 이러한 알바생을 잡더라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해 난항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누가 이런 알바를 시키는 것이고, 수집된 전화번호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한 건당 100전단지 배포 위장해 알바생 모은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등 혐의 적용 어려워···내사종결 수두룩

일요서울은 2019년 4월12일자 ‘[단독] 남의 차량 기웃거리는 수상한 알바생들’ 기사를 통해 아파트‧대형 마트 등 차량이 주차된 곳을 다니며 차량에 붙은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알바에 대해 집중 추적, 세간에 알린 바 있다.

당시 알바생들은 한 알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차량에 붙은 전화번호를 촬영해오면 건당 100원씩 준다’는 광고를 보고 알바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바에 가담한 인물은 2명이었는데, 이들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내 주차장을 다니며 차량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등의 행동을 보이다가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해당 신고를 ‘코드 0(코드 제로)’ 단계로 분류, 강력팀도 동원해 출동했으나 해당 알바생들을 15~20분 뒤에 현장에서 풀어줬다. 코드 제로는 112신고 출동 단계 중 최고 수준이다. 납치‧유괴‧성폭력 등에도 코드 제로가 적용된다.

그렇다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왜 알바생들을 풀어줘야만 했을까.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 전혀 없나

이러한 알바생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주거침입’,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있다. 그러나 이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주거침입의 경우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아파트 지하주차장‧대형 마트 등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개된 곳임을 고려하면 주거침입 혐의로 처벌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 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경우도 차 주인이 전화번호를 차량에 붙인 것이 전화번호를 스스로 남에게 공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수집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행태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일요서울 단독 보도 후 인천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초 경찰(인천 삼산경찰서)은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을 밝혔으나, 내부적인 법률 검토 결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해당 혐의로 입건조차 하지 못했다.

인천 삼산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건조물 침입 혐의로만 기소의견으로 인천지검에 송치했다”면서 “수사 단계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차량 소주유가 직접 노출시킨 전화번호를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는) 입건을 배제했다. 내부적인 법률 검토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사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경찰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거침입,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되는지 고심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던 것.

당시 아파트 분양업체 직원인 20대 남성은 “분양 업무와 홍보에 활용하기 위해 입주민 차량에 부착된 전화번호를 수집했지만 죄가 될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규와 판례를 검토한 경찰은 결국 관련 혐의를 적용할 수 없어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전화번호의 주인은 홍보성 문자 등으로 불편을 겪더라도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미비해 불만을 나타낼 뿐이다.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구체적 사실관계나 행위태양에 따라 혐의 유무가 달라지긴 하지만 이 부분(전화번호 수집)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좀 더 명확한 입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에도 동원?

전화번호 주인 ‘울상’

수집된 전화번호는 부동산 투자 정보 등의 홍보성 문자 메시지 전송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에도 동원된다. 선거의 경우 차량 등에 붙은 개인 전화번호를 무단으로 수집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선거운동 등에서도 이런 행태가 이뤄지고 있지만 단속과 처벌은 사실상 전무하다. 선거 홍보 문자 등을 어디에 발송할 것인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감독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입수 방법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어, 후보별로 전화번호를 자체 입수하는 실정이다.

알바를 찾기 힘든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이러한 수상한 알바가 성행하고 있다. 해당 알바는 차량 내부에 있는 차주의 전화번호를 촬영하거나 적어오면 1건당 적게는 10원, 많게는 100원까지 보수를 지급한다.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서 차량 등의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알바가 공개적으로 올라온다는 논란이 일자, 이제는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단지 배포 알바 등으로 위장, 알바생을 모은 뒤 정작 전화번호 수집 일을 시키는 것.

실제로 한 누리꾼은 “전단지 알바를 지원했는데 차량 전화번호 알아내서 카톡으로 보내라고 하더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차량털이범이 관련 법적 근거가 미비한 점을 노리고, 수사기관에 핑계를 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앞서 밝힌 서울 성동구 사건에서 경찰이 알바생 2명을 조사했지만 위법사항이 없어 현장종결 했기 때문. 차량털이‧절도범이 처벌이 불가한 ‘수상한 알바생’으로 위장할 가능성도 존재해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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