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제조사 입증 책임 판결…테슬라 등 업계 긴장
대법원 넘어간 급발진 의심 사고…BMW 뒤집기 힘들 것

BMW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국내 최초 제조사 패소 결과와 관련, 대법원 3심에서도 판결이 뒤집히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향후 차량 사고 관련 재판에서 제조사 입증 사례가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BMW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한 국내 최초 제조사 패소 결과와 관련, 대법원 3심에서도 판결이 뒤집히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향후 차량 사고 관련 재판에서 제조사 입증 사례가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300m 거리를 시속 200km의 속도로 갓길 주행하던 BMW 승용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최근 재판부가 BMW 측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근거를 내놔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자동차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차량 사고에 대해 차량 제조사의 입증 책임을 묻는 판결로 국내 최초 사례로 남게 됐다. 아울러 BMW 측이 급발진으로 볼 수 없다며 대법원에 항고하면서, 최종 판결은 3심으로 미뤄지게 됐다. 다만 관련 정부 기관 및 업계에서는 2심까지의 진행 사항을 종합해보면 3심에서도 제조사 입증 책임에 대한 부분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낮아 최종 소비자가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테슬라 모델 X 급발진 의심 및 화재발생 사고 조사에 업계 주목
국내 레몬법 도입 만 2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적용 사례 없어

2018년 호남고속도로 유성 나들목 인근에서 60대 부부가 탑승하고 있던 BMW 차량이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갓길을 따라 300여 미터를 주행하다 우회 도로로 빠지면서 가로수를 들이받고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차량은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고, 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60대 여성과 남편 등 부부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당시 경찰과 소방 당국은 사고 조사에 들어갔고, 유가족들은 주변 CCTV와 사고 지점을 통과한 차량의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사고로 의심하고 BMW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BMW 차량이 우회도로 회전 구간으로 진입하기 전까지 무려 300미터 이상을 시속 200km에 가깝게 달리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특히 해당 차량이 사고 발생 직전까지 비상등을 켜고 고속도로의 갓길을 주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유가족 측은 “사고가 나기 전 300미터 넘게, 비상등을 켠 채로 갓길을 주행했는데 이는 차량에 이상이 생긴 상태에서 운전자가 비상조치를 취하려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제조사 측은 사용자 과실 등을 주장하고 있으나, 자동차 정비업계 관계자는 “짧은 거리를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고 가더라도 비상등이 점등된 상태에서 갓길로 300미터 이상을 달린 것은 과실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고속도로의 대부분 차량이 이미 가속페달을 밟고 고속 주행 중인데, 가속 페달을 제동장치로 오인하는 실수는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BMW 대법원 항고심, 결론 뒤집기 힘들 것

이런 가운데 1심 재판부는 국내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차량 사고에 대한 대부분의 소송에서 내려진 재판 결과와 유사한 판결을 내렸다. 유가족이 제출한 증거가 불충분해 자동차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유가족들이 제출한 근거 자료를 대부분 인정했다. 운전자에 의해 차량 운행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나 차량 결함에 따른 문제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 이에 제조사인 BMW가 사고 차량 탑승자 2명에 대해 각각 4000만 원씩 유가족에게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BMW 측은 즉각 항고했고 최종 판결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를 두고 정부 관계 기관에서는 3심에서도 BMW가 이기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운전자가 마지막까지 비상 상황이라고 주변 차량에 전달까지 했던 부분 등 유가족이 제출한 증거가 재판에서 받아들여져 차량결함이 인정됐다”며 “BMW가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과실로 몰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BMW가 레몬법을 적용한 지, 만 2년이 다가오지만 단 한 건의 적용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BMW가 판매 차량의 동일한 문제가 지속 발생할 때 이를 환불 또는 교환해주도록 하는 레몬법을 시행한 지, 만 2년이 다가오지만 단 한 건의 적용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환 기자]

BMW가 급발진 사고가 아닌 정상 상태에서의 사용자 부주의 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차량은 당시 전소돼 ECU컴퓨터나 어떤 기록장치로 건질 수가 없었고, 주변 CCTV 등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이미 이를 제시한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으니, 판결이 뒤집히긴 힘들다는 의미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해당 사고는 급발진이 아니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사례에서 소비자들이 급발진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CCTV와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 등에서 차량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운전자는 끝까지 차량의 이상을 주변에 알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의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재판에서 소비자들이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나라 법 구조상 피해자가 해당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 사건은 정황상 차량 결함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며 “이를 계기로 차량 결함 의심 사고에서 제조사들이 이를 입증하도록 법과 제도가 정착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도마에 오른 BMW 말뿐인 ‘레몬법’

BMW는 레몬법과 관련해서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2월 레몬법 도입을 선언했던 BMW가 최근 X3 신형 차량 구매자의 차량 주행 중 핸들이 잠기는 문제로 위험천만한 상황을 수차례 겪었음에도 사고 수리 입고가 2회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량 환불이나 교환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밝혀 지탄을 받고 있다. 

해당 차주 A씨는 동일한 문제로 수차례 위험한 상황을 겪었고 BMW 서비스 센터에 입고 수리를 맡겼다가 ‘해결됐다’는 말에 다시 운행했으나 고속 주행 중 ‘핸들 잠김’ 현상이 다시 반복돼 재입고시켰고, 수리를 통해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이 됐는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A씨가 레몬법을 적용해 교환 등을 요구했으나, BMW 측은 한 번 더 동일한 증상으로 입고가 돼야 차량 교환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고 입장을 전달했다. 즉 고속으로 주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또다시 나타나 3차례 입고가 되면 차량 교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자동차 정비업계 관계자는 “말뿐인 레몬법으로 소비자를 교란시켜 판매에만 급급하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며 “국내에서 레몬법 도입이 만 2년이 돼 가지만 사례가 아직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충돌 후 화재로 대리 기사는 가까스로 탈출하고 조수석에 있던 테슬라 모델X 차주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테슬라 측에서는 BMW 차량의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제조사 입증을 묻는 판결이 나온 것과 관련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차량 사고에 대한 제조사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 나온 만큼 향후 차량 사고 관련 소송에서 재판부가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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