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입장 내놓지 않은 지도부…대통령에만 입장 요구
보궐선거 앞 與 계산된 전략, 보수 분열 카드로 의심
중도 외연 확장에도 부담…"잘못하면 당 지지율 타격"
"사전에 靑과 교감 없었을리 없어…반성 운운도 모순"

잠시 생각에 잠긴 김종인 위원장 [뉴시스]
잠시 생각에 잠긴 김종인 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론을 촉발시켰지만 보수야권은 자체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되 사면 자체에 대한 찬반 주장은 유보하는 쪽으로 기운 상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면이) 필요할 시점이란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사면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대통령이 판단해서 사면해야겠다고 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사면이다. 다른 사람이 이러고저러고 얘기할 게 아니다"라고만 언급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대통령께서 직접 본인 생각을 국민 앞에 밝히는 게 '정도'(正道)"라고 강조했다.

야권에서 섣불리 입장을 결정하지 않은 데는 우선 여당의 선거용 전략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속내가 있다. 4월에 있을 보궐선거를 대비해 여당이 '보수 분열' 카드로 이용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이에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보수가 탄핵과 반(反)탄핵으로 나눠져 있지 않나. 이를 갈라치기 해서 보궐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득을 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보고, 거기에 말려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당 지도부는 애매한 입장을 내고 일부에선 찬성 목소리가 나오는 등 섞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발언하는 주호영 원내대표 [뉴시스]
발언하는 주호영 원내대표 [뉴시스]

 

김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 입장에서도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이 있는데, 섣불리 사면에 동조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다른 의원은 "영남권에서는 지역 민심을 의식해서 어느 정도 찬성 이야기도 나오지만, 사실 김종인 위원장을 비롯해 호남 표를 구애해 온 이들의 입장에서는 잘못하면 당 지지율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서 조심해야 한다. 일괄적인입장을 내기가 어렵고, 낼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앞서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에 대해 사과를 하고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인 것도 지도부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당 내에서는 애당초 이 대표의 사면론이 청와대와의 교감 없이 나왔을 리 없다고 분석하며, 이에 대해 여권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사과를 요구하는 데 대해 "모순됐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회의실 향하는 김종인-주호영 [뉴시스]
회의실 향하는 김종인-주호영 [뉴시스]

 

한 초선 의원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권한인데, 대통령과 사전 교섭 없이 그 말을 할 수 없었다고 본다"며 "또 내뱉었다가 반대 여론이 심하니 슬그머니 '당사자의 반성' 전제를 운운하는데 조롱당하는 느낌이다. 더 내려놓을 것도 없을 만큼 바닥에 있는 분들에게 반성하라는 것도 모순이다. 사면 요건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누가 요구할 권리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입장을 유보한 지도부와 달리 당 일각의 친이(親李), 친박(親朴)계 정치인들은 여당의 입장 변화에 "시중 잡범들이나 하는 이야기" "장난감 취급하나" "극악무도한 짓"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사면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당사자들은 2년, 3년에 걸쳐서 감옥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억울한 정치보복으로 잡혀갔는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며 "사면하는 사람이 칼자루를 잡았다고 '너 반성해라, 사과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역대 어떤 정권도 그런 적은 없었다"고 격분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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