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IP는 뭐고 유동IP는 뭐예요?
수원이 궁금해서 물었다.

“글을 올릴 때 사용한 컴퓨터가 고정 IP와 연결된 것이 있고, 올릴 때 마다 임시 IP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유저들은 그런 구분을 잘 못하지요.”
“시간이 급박하지 않나요? 지난번 폭발물은 조기 발견해서 무사했지만 이번에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요.”

“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액체 폭탄이 냉각수 케이블에 들어가서 폭발해도 정말 방사능 누출 위험이 없을까요?”
허견 수사관도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듯했다. 
“취수구를 통해 들어간 물은 터빈 건물까지만 들어가요. 터빈 건물은 핵연료를 취급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폭발하더라도 방사능과는 관계가 없어요. 건물이 무너지고 증기가 쏟아져 나오고 발전이 중단되는 피해는 있겠지만 방사선 누출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오염된 도구라든가, 폐기물이라든가...”
“그것도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사용한 도구나, 작업복, 장갑 같은 폐기물은 인체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밀폐 용기에 보관했다가 지하, 터널 등 절대 안전한 곳에 다시 영구 밀폐하니까요.”
“아하, 그렇군요. 제가 원자력 발전에 대해 워낙 몰라서 괜한 걱정을 했는가 봅니다.”

허견 수사관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16. 그림자 없는 침입자

아침부터 영준이 사무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차장님, 본부장님이 출근하는 대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심각한 영준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심각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좀 이상한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영준은 영문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수원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이종문 본부장실로 갔다.
“한 차장, 조금 앉으시오.”

이 본부장도 평소와 다르게 심각한 얼굴로 수원을 맞이했다.
“서울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본부장은 한참 뜸을 들인 뒤에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의 생산 원가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갔습니다.”
“생산 원가라니요?”

“한 차장이 맡고 있는 원자로 제어 시스템의 국제 입찰 내정가가 외부에 노출됐습니다. 부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원자로 자체의 국제 입찰가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회사 기밀 중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어디에 누출되었습니까?”

수원은 자기와 관계가 없는 일인 거로 생각했다. 
“프랑스의 인터넷 과학 잡지인 샹스픽셔(Science-fiction)에 게재됐습니다. 아주 악의적인 평과 함께.”
“악의적인 평이라니오?”
“우리가 생산 원가에 비해 과도한 가격 책정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자료가 한수원 차장의 보고서에서 인용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

그제야 수원은 본부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직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자료인데 어떻게 외부로 나갔겠어요?”
수원은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한 차장의 보고서에서 나온 것이 확실합니다. 지난달 한 차장이 본사에 메인 제어 시스템에 대한 부품별 생산 원가를 요청한 일이 있지요? 그때 그 서류에 한 차장이 의견을 제시해 놓지 않았습니까. 그 내용이 노출된 것입니다.” 
본부장이 인터넷 기사 프린트 본을 꺼내 놓았다. 프랑스어로 된 것이었다. 
수원은 얼른 집어서 기사를 읽어 보았다. 자신이 보고서로 제출하려고 만들어 놓은 내용 그대로였다. 수원은 난감하다 못해 앞이 캄캄했다. 

“이상하게 사건마다 한 차장이 관련돼 있군요. 어떻게 생각해요?”
수원은 답할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수원의 답을 기다리던 이 본부장이 지시했다. 
“당분간 대외엔 비밀로 하고 어떻게 유출되었나 잘 알아보십시오.”
“알겠습니다.”
수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나가 보세요.”
“죄송합니다.”
수원은 맥이 다 풀린 상태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도대체 누가, 왜?’
수원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수원을 노리고 있었다. 오피스텔 침입 시도, 도청 장치 부착, 기밀문서 유출. 이것이 모두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8년간 공부와 연구에 파묻혀 살아온 수원. 음모나 모함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수원이 책상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본사 강병욱 처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처장님 죄송합니다.”
수원은 사과부터 했다. 수원을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추천한 사람이 강 처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박사를 믿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체 누가 그런 일을 꾸몄는지 찾아내세요. 누군지 적발해야 합니다. 본사에서 조사단이 나갈 테니 적극 협조하세요.”

강 처장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조사단이 언제 오나요?”
“아마 지금쯤 고리에 도착했을 겁니다. 의심이 증폭되기 전에 범인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이런 일이 한 박사 장래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해선 안 됩니다.”

전화를 끊고 수원은 그 자료를 어디에 보관해 두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무실과 집에 있는 PC였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한 후에 좀 더 세밀히 살펴보고 마무리 짓기 위해 USB 메모리에 담아 집 컴퓨터에 옮겨 저장해 놨던 것이다. USB는 핸드폰 고리에 항상 매달려 있었다. 어쨌든 이 셋 중 하나에 있던 자료가 유출된 것이었다. 
그때 영준이 들어왔다. 

“자료 유출 사건에 대해 들으셨나요?”
수원이 미리 귀띔해주지 않은 영준을 향해 섭섭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안합니다. 전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제 불찰이에요.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주 차장님, 혹시 제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보시나요?”
“그럴 리가요.”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누군가가 한 차장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리는 것 같습니다. 집에 침입하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도청 장치를 설치했던 것도 그렇고요.”
역시 영준도 수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혹시 정보를 빼낸 흔적이 컴퓨터에 남아 있을까요?”
“복사해 갔다면 남아 있을 겁니다. 제가 컴퓨터를 좀 아니까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선 회사 컴퓨터를 살펴볼까요?”

영준은 수원의 컴퓨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이제 집에 있는 컴퓨터를 살펴봐야겠군요.”
USB는 수원이 항상 손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거기서 자료가 유출됐을 리는 없었다. 
“그럼 퇴근 후 저희 집으로 함께 가 주시겠어요?”
일과가 끝나자 두 사람은 수원의 차로 함께 이동했다. 차를 타면서 영준은 수원의 차를 구석구석 살폈다. 도청 장치가 있는가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 중국 대포폰의 주인을 찾았답니다.”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영준이 말했다. 
“아, 그래요?”
“한국 여행사에 근무하면서 주로 중국을 드나드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도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한 짓이랍니다.”
“부탁한 사람이 누구래요?”

“그걸 모른답니다. 여행사에 왔던 고객이라고 합니다. 돈을 준다기에 그냥 한 것이랍니다. 전화요금도 그 사람이 직접 입금시켰는데, 매달 전화요금보다 많은 액수를 보내왔답니다. 머지않아 그 사람 정체도 찾아내겠지요.”
“그 사람이 아나톨리겠군요.”
“사이버 협박범일 수도 있습니다. 참, 문제의 협박문을 올린 컴퓨터를 추적 끝에  알아냈답니다.”
“그래요?”

“서울 삼성동에 있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의 휴게실 컴퓨터랍니다. 전에 고리 원전 게시판에 두 건의 경고를 올린 지역도 그 근방이라고 합니다.”
“누가 올렸는지는 밝히지 못했나요?”
수원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CCTV로 그 시간대에 그 컴퓨터를 이용한 사람을 찾아내고 있는가 봐요. 조만간 밝혀질 겁니다.”

“동일 인물의 짓일까요?”
“경찰에서는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폭발물 사고가 더 일어나면 우리 회사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예비사단까지 동원돼 고리에 인접한 바다를 모두 봉쇄했으니 더 이상 침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폭발물 경고문을 올린 사람의 아이디가 ‘친구’였지요?”
“예.”

“왜 하필 친구라는 아이디를 썼을까요?”
“글쎄요.”
영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어법? 아님 비아냥?”
“친구든 적이든 그 누구라도 우리 원전을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원전은 우리나라 미래니까요.”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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