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사면론’에 길 터준 김종인... 자충수? 신의한수?

김종인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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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면’ 언급에 야권 진영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15일 자당 출신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등에 대해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사과’를 단행했다. 김 위원장은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당을 쇄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름 만에 이 대표가 ‘사면론’을 거론해 야권에선 김 위원장 사과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견해와 사면의 주도권을 오히려 빼앗겼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요서울은 이 대표의 ‘사면론’을 둘러싼 야권진영의 내홍과 그에 따른 파장에 대해 추적해봤다. 

-장제원 “이낙연, 정치적 계산하고 ‘사면론’ 언급한 것”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30일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통합을 거론하며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부자유스러운 상태에 놓여 계시는데 적절한 시기가 되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께 건의드릴 생각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이 대표는 여권을 비롯한 정치권 안팎에서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난 4일 이 대표는 또 다른 언론에 출연해 ‘정치적 계산에 의해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띄운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제 이익만 생각했다면 이런 얘기를 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치르는데 국민의 마음을 두세갈래로 갈라지게 한 채로 그대로 갈수 있을까하는 절박한 충정에서 말씀드렸다”며 “유불리만 생각했으면 말씀 안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방법으로서는 검토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렸다”며 “당에서는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사면론’에 대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언급을 피했다. 야권에선 오는 4월 서울·부산 재보선을 앞두고 이 대표가 꺼낸 사면론 주장이 김 위원장의 사과를 퇴색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과로 인한 중도층 표심 흡수를 막고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는 야권 내 진영과 국민의힘 지도부간 갈등을 유발시키기 위해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면론은 야권의 경계와는 별개로 영향을 준 듯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두고 김 위원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온도 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유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사면 이야기는 전혀 한 적이 없다”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하며 사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유 비서실장을 향해 “사면은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유영민 비서실장이 제반사항을 잘 검토해서 이 일로 서로가 불편해지는 일이 없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리겠다”고 말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야권 진영은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로 내홍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이 대표의 ‘사면론’ 주장이 기름에 불 붙이는 격으로 이어질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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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김종인 ‘대국민 사과’두고 내홍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대국민 사과에 나서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다만 구체적 일정과 방법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6일 청년국민의힘 창당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에 처음 올 때부터 예고 했던 사항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를 참작하느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대국민 사과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운을 띄웠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인 7일 당 회의에서 4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인 9일을 겨냥해 국민 앞에 사과 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금 이 시점에 사과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여당이 공수처법을 일방 통과시키려 하는 상황에서 당내 단합에 장애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김 위장은 “먼저 사과하고 비대위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내부 반발로 지금까지 미뤄왔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계획대로 사과할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지지를 얻으려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관해 반드시 사과하는 것이 당이 변화했다는 걸 가장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그동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사실상 같이 탄핵된 것이다. 그런데 당이 국민에게 정중한 사과한 적이 있냐”는 말을 해왔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김 위원장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국민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다 같이 협력해 달라”고 했다. 

수도권과 의원과 국민의힘 사무처노동조합도 김 위원장의 사과를 지지하고 나섰다. 박진 의원(4선·서울 강남을)은 “잘못에 대한 반성은 보수의 참모습”이라며 “우리는 지금 달라지고 있는 야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 없이 어떻게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국민의힘 사무처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우리 당의 과오에 대한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에 깊은 감사와 지지를 표한다”며 “국민의힘이 사과드릴 대상은 국민이다. 국민의 일꾼이자 대표로서 사소한 잘못에도 국민께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는 계파와 개인의 신념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사무처노조도 권력을 감시하지 못한 죄, 정권을 빼앗긴 죄, 국민께 실망을 드린 죄, 깊이 통감한다”며 “잘못을 위선으로 부정하고 거짓으로 덮기보다, 사과하고 반성하는 이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굳게 믿기에, 잘못의 수치보다 사과의 용기를 택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지역 30·40대 당원협의회 위원장들도 김 위원장의 사과 입장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 김병민(광진구갑), 깁재섭(도봉구갑), 손영택(양천구을), 오신환(관악구을), 이준석(노원구병), 이재영(강동구을) 당협위원장은 지난해 12월11일 공동 명의의 성명서를 내고 이 같은 뜻을 밝혔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폭정이 날로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국민의 고통은 정권의 폭주에 비례해 커져만 가고 있다”며 “제1야당 국민의힘이 바로 서야 한다. 국민의 무너진 신뢰를 신속하게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우뚝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수정치의 가장 큰 미덕은 책임정치에 있다. 지난날 우리의 과오가 오늘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국민이 받아주실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머리를 숙이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민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야 한다”며 “낡은 과거를 부여잡고 오늘을 흔드는 것은 당의 전진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문재인 정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우리 자신의 낡은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자”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차기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김 위원장의 사과에 동조를 드러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해 12월9일 자신의 SNS를 통해 “4년 전 오늘이다. 국회는 탄핵소추를 의결했다”며 “그 뒤 4년 동안 우리 당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온몸을 던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과드린다. 용서를 구한다. 다시는 권력이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최악의 정권을 탄생시킨 가장 큰 잘못에 대해서도 함께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에 대한 지지에 맞선 비판의 목소리도 당 안팎에서 팽팽히 맞섰다. 이재오 상임고문은 자신의 SNS에 “사과는 김 위원장의 개인적 정치욕망을 위장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적어도 야당에 몸담은 정치인이라면, 국민통합을 위해 이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소속인 홍준표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의 SNS에 “여당 2중대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이·박 전 대통령 사과라고 보이는데, 그것을 강행하는 것은 5공 정권하에 민정당 2중대로 들어가자는 이민우 구상과 흡사해 보인다”며 “이민우 구상으로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반발하고 이민우 신민당 총재 체제는 무너지면서 야당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고 회고하며 김 위원장의 거취를 전망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를 안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과는 전 정권들을 모두 부정하고 일부 탄핵파들의 입장만 두둔하는 꼴이고, 민주당 2중대로 가는 굴종의 길일뿐이다. 옳은 길이 아니다”라고 김 위원장을 비판했다.  

또 홍 의원은 지난해 12월15일 SNS에 “실컷 두들겨 맞고, 맞은 놈이 팬 놈에게 사과를 한다. 참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세모정국이다. 25년 정치를 했지만, 이런 배알도 없는 야당은 처음 본다. 집단으로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서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배현진 의원(초선·서울 송파구을)은 지난해 12월6일 SNS에 “잠시 인지부조화(가 왔다). 아찔하다”며 “이미 옥에 갇혀 죽을 때까지 나올까 말까 한 기억이 가물한 두 전직 대통령보다, 굳이 ‘뜬금포’ 사과를 하겠다면 문재인 정권 탄생부터 사과해줘야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 헌정사를 뒤엎고 국민 삶을 뒤엎는 문 정권을 탄생시킨 스승으로서 ‘내가 이러라고 대통령 만들어준 줄 아느냐’는 한마디만 해줘도 족할 것”이라며 “지난 시정연설 당시 당당한 척 국회를 방문한 문 대통령을 한껏 꾸중해주실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 (주호영) 원내대표가, 그것도 국회에서 청와대 경호원에게 수모를 겪은 바로 그날”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배 의원은 “우리가 어느 지점에 분노하고 있는지 비상시를 맡은 위원장에게 현실 인식의 용기와 지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년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서병수 의원(5선·부산진구갑)도 지난해 12월6일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데 사과를 하지 않아 대한민국 우파가 제자지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인가”라며 “사과만이 ‘탄핵의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다. 저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운 온갖 억지와 모함을 걷어내고 정상적인 법·원칙에 따른 재평가 후에 공과를 논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야권 내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여곡절을 거쳐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의 뜻을 표했다. 

이낙연 [뉴시스]
이낙연 [뉴시스]

 

- “사면론, 야권 갈라치기 위한 전략”

정치권 일각에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과가 ‘사면론’의 물꼬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과 함께 청와대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야권분열 전략에 여지를 던져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김 위원장의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다.  

일요서울과 지난 6일 통화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 사면론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당이 사면을 부탁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치적 통합이나 인도적 차원에서 사면을 주장했겠나”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실익의 계산을 통해 사면론을 언급한 것이 여권 내부의 반발을 일으켜 주어 담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이 대표가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 후 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야권의 분열을 노리기 위해 사면론을 주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계를 보인 것이다. 

일요서울과 지난 6일 접촉한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이 대표가 사면론 주장은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며 “단기적으론 친문 지지층의 반발로 악재지만 궁극적으론 ‘통합의 리더십’ 이미지를 보여주고 외연확장을 할 수 있는 대선 주자로 부각시켜 자리매김 하려는 방향이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요서울과 지난 7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의 사면론 주장은 야권과 범보수진영을 정치 공학적으로 갈라치기 위한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로 촉발된 이 대표의 사면론이 앞으로 야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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