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팬더믹과 팬덤,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사회를 지배했던 용어다. 1년 전에는 누구에게나 낯선 용어였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두 용어 모두 정치학 용어는 아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현실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정치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팬더믹(pandemic)은 전염병 혹은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령하는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등급인 6등급을 팬더믹이라고 한다. 팬더믹(pandemic)이란 말은 그리스어 ‘pan(모든)’과 ‘demos(사람들)’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모든 사람이 감염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2020년 3월 10일 팬더믹의 대체용어로 ‘감염병 세계유행’을 제시했지만, 외래어인 팬더믹이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더 실감나는 용어인 듯하다.

팬덤(fandom)은 스포츠 선수 팬이나 가수, 배우 등의 대중문화 팬을 뜻하는 ‘팬(fan)’과 영지(領地)·나라 등을 뜻하는 접미사 ‘덤(-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을 가리킨다. fan은 fanatic(광신자, 열광자)을 줄여서 쓴 말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러 팬덤현상이 있지만, BTS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팬덤현상은 문빠 혹은 문파(文派)라고 불리는 ‘문재인 팬덤현상’이다.

팬더믹과 팬덤, 두 외래어가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현실정치에 미친 영향이나 발음의 유사성 등으로 인해 매우 연관성이 강한 용어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이들 용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관성이나 유사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오로지 우리나라 현실정치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하나만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팬더믹과 팬덤은 지난 1년여 동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힘의 원천이다. 본인들조차도 패배를 예측했던 4.15총선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팬더믹 상황을 정세균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어 세계의 모범이 될 만한 방역체계, 소위 ‘K방역체계’를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압도적 총선승리를 이끌었다. ‘문재인 팬덤현상’은 ‘조국 지키기’와 ‘윤석열 쪼아내기’ 등으로 진화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의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시현상이었다. 결과가 좋으니 과정도 좋았던 것에 불과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K방역체계’의 구멍이 노출됐다. 상정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발생하였으며,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은 집단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문재인 팬덤현상’은 정부여당의 눈과 귀를 막았고, 대통령을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건재하며 그의 검은 살아있는 권력을 겨누고 있다. 현재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여당은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이 난국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길이 있을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팬더믹과 팬덤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팬더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각각의 일상일 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이었던 코로나19가 어느덧 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생활 속의 공포를 우리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팬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다. 화려함과 열광의 이면에는 어두움과 파탄이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판을 싹 바꾸어야 한다. 팬더믹의 공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 팬덤정치에 올라탄 사람들을 끌어내려야 한다. 감정의 정치를 끝내고 이성의 정치로 체인지 해야 한다. 팬더믹과 팬덤사이 더불어민주당이 사는 길이 흐릿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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