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노동착취’ ‘민간 구급차 불법 운영’, 왜 지속되나?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사진은 해당 업체와 무관함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경남 김해의 한 민간 구급 이송업체 대표에게 구타를 당해 숨진 응급구조사가 이른바 노예 같은 직장 생활을 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응급구조사들의 처우 관련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요서울 취재 결과, 이들의 열악한 처우는 자금난을 겪는 민간 구급 이송업체들의 불법적 운영 방식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감독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매년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실사를 진행하고 보고를 받지만 2015년 이후 관련 법 개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문제 제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개선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적자 견디기 어려워 불법 업체 생겨나
- 응급구조사·응급환자에게 피해 고스란히 넘어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구급차 관리·운용지침’에는 민간 구급차 이송 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기준이 명시돼 있다. 업체 설립을 위한 허가 충족 기준은 ▲특수구급차 5대 이상 ▲사무실(66제곱미터 이상) ▲차고 및 부대시설(휴게실·대기실·교육실·통신시설 등) ▲자본금 2억 원 ▲구급차 5대 기준, 운전기사와 응급구조사가 2인1조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각각 운전기사 8명과 응급구조사 8명 최소 16명의 직원이 필요하다. 의사나 약사만 병원이나 약국을 차릴 수 있는 것과 달리 민간 구급차 이송 업체를 설립하는 데 특별한 자격 조건이 필요하진 않다. 위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은 누구나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관리 기준을 전부 충족하며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한 민간 구급차 이송 업체 대표 김모씨는 “1급 응급구조사로 일하다가 15년 만에 직접 업체를 운영하게 됐지만 직접 해보니 적자가 나는 구조라 운영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재 이송처치료는 일반구급차의 경우 기본요금(10km 이내) 3만 원, 특수구급차는 7만5000원이다. 10km 초과 시 1km당 각각 1000원, 1300원을 지불하게 된다. 

김 씨는 “이송처치료는 택시미터기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택시 할증처럼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20%의 할증요금도 붙는다. 정부는 의료장비가 있는 민간 구급차를 ‘환자가 타는 택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구급차는 대기시간도 있는데 30분이든 4시간이든 대기시간은 제외하고 이용거리만 따지기 때문에 내는 비용은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약국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만 민간 구급차는 보험 적용은커녕 일반 사업자처럼 보조금이나 보건업 관련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면세사업자인 것과 고속도로통행료 면제만 되는데, 공공재 성격을 띠니까 정부 기준안을 지키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운영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업체 ‘점조직’처럼 생겨나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게 어려운 민간 구급차 업체들은 암암리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운영한다. 응급구조사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법 운영업체들은 정부 허가 기준에 맞춰 업체를 설립하기 위해 자본금 2억 원을 가진 대표가 특수구급차량을 소지한 사람(일명 지입 차주·지부장)을 뽑는다. 지입 차주와 대표는 대부분 구두 계약을 맺어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업체 대표가 병원과 위탁용역계약을 맺고 지입 차주들에게 일감을 나눠주면 이들은 매달 20~50만 원 정도의 금액(지부비)을 납부하고 번 수익은 그대로 갖게 되는 구조다. 합법적으로는 업체 대표가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지만 관리·감독이 부족한 탓에 이 같은 비정상적 운영구조방식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지입 차주는 구급차에 탈 응급구조사 1명도 직접 뽑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만 업체 소속으로 돼 있는 응급구조사들은 결국 지입 차주에게 고용돼 일을 하는 셈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대표에게 지부비를 내면서 개인이 구급차를 운영하는 지입 차주들은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차량, 의료장비 등 유지비용과 응급구조사의 월급 및 사대보험을 책임져야 하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 임금체불, 사대보험 미가입 등의 문제에 봉착한다. 이로 인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카드결제 보다 현금을 종용한다. 

3년간 1급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A씨는 “민간 구급차는 근로기준법, 야간 근로수당, 유휴수당 등 법적으로 사용자가 준수해야 하는 기준을 지키지 않는 행태가 팽배하다”며 “24시간 응급환자 발생으로 근무시간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다. 교대근무가 필요하지만 업계에선 그런 개념이 전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시간 동안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는 응급의료의 질 하락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금난을 겪는 지입 차주들은 현장에서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장비조차 아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1급 응급구조사 B씨는 “지입 차주들은 의료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비응급 환자나 망자를 선호한다”며 “산소를 반으로 깎아서 쓰라거나 AED(자동심장충격기)키트가 비싸니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체온계가 필요한데도 2주 동안 고장난 체온계를 바꿔주지 않기도 했다. 응급상황에서 장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는 환자의 목숨이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련 법안 정비 필요…‘민간 구급차’ 직원 대상 교육 신설 예정”

현재 민간 구급차 업체를 관리·감독하는 곳은 지자체 보건소와 보건복지부다. 지자체 보건소는 매년 한 번씩 업체를 대상으로 직접 실사를 나가 확인하고 보건복지부에 보고를 한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구급차 관리·운용지침’의 마지막 개정은 2015년이다. 세부 기준안에는 6개월에 1회 이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1년에 한 번 실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사는 구급차량 내 장비, 현장 출동기록과 대표의 자본금 등을 확인한다. 

서울시 보건행정 관계자는 “1년에 한 번씩 실사를 나가 점검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에 보고할 때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를 하는데 서류상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적인 업체들이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맞는 방안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아직 검토된 게 없다”고 말했다. 

관계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간 구급 업체의 허가기준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세한 업체들이 난립하는 걸 막기 위해 나온 것”이라며 “안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법을 지키면서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입차 문제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고 질의가 들어와 답변이 나간 적도 있었다”며 “지입차 문제는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서류를 조작해 차를 빌리는 것까지 제재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련 법안을 좀 더 정비하려고 계속 노력은 하고 있다. 우선은 개도의 방향으로 정리해 갈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며 “매년 응급구조사 보수 교육은 진행하고 있고, 올해 민간 구급차 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과정도 신설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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