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양모와 살해 의견 교환 등 ‘공모’ 있었는지 밝혀야”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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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양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을 두고 가해자인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지난 8일 기준) 양모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와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아동학대·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양부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유기·방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상습 학대의 정황은 있지만 물증을 찾지 못한 검찰은 법의학 전문가들에게 사망 원인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이 때문에 오는 13일 열리는 첫 공판에서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요서울 취재 결과, 현재 양부를 살인죄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양모와 살해 의도가 담긴 의견교환 등 공모가 있었는지 확인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 알려진 피해 증거만으로도 양모는 살인죄 성립 가능
- 양부모의 ‘살인 고의성’ 밝혀내야

지난해 1월 생후 7개월이던 정인이를 입양한 양모 장모씨는 상습 학대를 해오다 270여 일 만인 지난해 10월13일 아이의 몸에 강한 충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내부 장기가 심각하게 손상될 정도로 다친 정인이는 결국 사망했다. 장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놀다가 소파에서 떨어졌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검찰에서는 “밥을 먹지 않아 화가 나서 손찌검했다”고 혐의를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양부 안모씨는 검찰 조사를 통해 아동학대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4월경 강제로 아이의 신체를 억압해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등 정서적으로 학대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아동유기·방임 혐의도 적용된 것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해 말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양 사망원인 재감정을 의뢰했다. 당시 정인이는 등 쪽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인해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충격이 가해졌는지는 명확치 않아 검찰은 양모 장 씨의 공소장에 살인죄를 적지 않았다. 재감정 결과 가해진 충격의 정도가 고의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고, 이에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살인죄를 적용할 여지도 열려 있다. 

현행법상 규정된 아동학대치사죄 형량 자체는 낮은 편이 아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죄 양형기준으로 가중영역 상한에 따라 최고 징역 10년형을 권고하고 있다. 죄질이 좋지 않아 형을 가중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특별조정’을 통해 최대 15년까지 가중할 수 있다.

양부, 현재 살인죄 적용 어려워… 살해 의견교환 메시지 등 새 증거 필요”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의 가해 부모에 대해 살인죄로 의율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양모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양부는 방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정인이의 피해와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7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정인이 사건을 ‘살인죄’로 재수사를 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새로운 증거 발견 등 변동사항이 없다면 재수사는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태정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고문 변호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미필적 고의든 확정적 고의든 ‘살인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며 “정인이 양부모가 학대를 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단순히 아동학대 수준인지 그걸 넘어서 아이를 죽일 의도를 갖고 학대를 한건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췌장 절단에 의한 복부손상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도 인과관계를 살펴 고의성을 입증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변호사는 “경찰에서 부검의들에게 재감정을 요청했는데 부검의들 의견으로 단순 학대가 아닌 최소 사망까지 예견할 수 있을 정도의 인과관계가 입증된다면 그게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다”며 “이를 근거로 공소장에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소아과의사회 측에서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을 보면 살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나왔다”며 “충분히 살인죄 성립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검찰이 고소장 내용을 살인죄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구속기소 된 정인이의 양모 장 씨는 물론 양부 안 씨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은 한 달여 만에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유기·방임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된 양부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을지와 관련, 양 변호사는 “사망 현장에 양부가 같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양부를 살인죄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양부에 살인 책임을 물으려면 살인이나 가해행위를 직접적으로 한 양모와 의견교환 등의 ‘공모’가 있었는지를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수사에서 정인이 사망에 대한 원인뿐 아니라 다른 증거, 예를 들면 양부모의 의견 교환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의 증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인이 양부모의 첫 공판은 이달 13일 열리게 된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이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첫 재판을 여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지난 5일 기준 550여 건에 달하는 진정서가 도착했다. 시민들은 양부모를 엄벌해야 한다며 진정서를 냈다.

한편 법사위는 지난 8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 ‘민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아동학대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함이다.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수사기관이 의무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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