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재명 경기지사 및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지지율 경쟁에서 밀리면서 자칫하면 차기구도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탈출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다. 차기 구도에서 이낙연 대표가 처한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한 때 대세론을 누리던 차기주자가 맞나 싶으로 정도로 최근에는 완전한 하락세다. 이 대표의 사면 화두 언급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극단적 진영 논리가 판을 치는 정치권에서 국민통합형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선점하는 부수효과를 노린 것으로도 수 있다. 물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는 여야, 보수진보, 영호남 등 정치적으로 너무나 예민한 사안이다. 여야 어느 한쪽도 손쉽게 유불리를 장담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 이 때문에 이 대표가 고심 끝에 내놓은 사면 카드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다만 신중한 이 대표의 성격을 고려할 때 숨겨진 정치적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회의주재하는 이낙연 대표, 뉴시스
회의주재하는 이낙연 대표, 뉴시스

- 이재명 윤석열에 열세지지율 추가하락 방지 승부수
 반응 자제에도 대통령과 사전 교감설흘러나와

표면적으로 본다면 이 대표의 완패다. 새해 벽두부터 사면 화두를 던졌지만 득점은 없고 실점만이 넘쳐났다. 민주당 친문 지지층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청와대 역시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보수야권 역시 겉으로는 환영 입장이지만 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는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상처만 입은 셈이다.

다만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대선이 본격화하기 전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적지 않다. 특히 차기 대선국면에 접어든 이후 이 문제가 논의되면 여야 모두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느라 오히려 정치적 갈등과 공방만 커질 수 있다. 사면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전제돼야 한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총대를 맸다는 분석이 적잖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이 대표가 여야 정치권 최대 난제를 해결할 경우 역설적으로 차기 발걸음은 보다 가벼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지율 추락 막고 중도층 외연확대대통령 사면 승부수 왜

이 대표는 왜 새해 벽두부터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예민한 화두를 꺼내들었을까? 이는 이 대표가 최근 처한 정치적 위기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축년 새해를 맞아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차지 지지율 조사에서 이 대표는 수모 아닌 수모를 당했다. 10여개 안팎의 여론조사에서 1위는 모두 라이벌인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총장이 차지했다. 이 대표는 2·3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대 기반이던 친문 지지층이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기구도에서 탈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날개없이 추락하는 지지율 하락세를 막아야 한다.

또 합리적 중도 성향이 강점인 본인의 정치적 이미지를 활용해 중도층 외연확대를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경쟁력도 보여줘야 한다. 만일 이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가 통하지 않는다면 이 대표는 향후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율 추락으로 후보교체론에 시달린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친문진영 내에서는 한때 이낙연 대표로는 안심할 수 없다며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호남후보 한계론에 무게를 둔 이 대표에 대한 회의론은 이른바 3후보론으로 이어졌다. 이 대표가 차기구도에서 완전히 탈락하기 전에 대안을 미리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김경수 경남지시가 친문진영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른바 드루킹댓글 재판의 영향으로 김 지사가 차기 구도에서 사실상 탈락하면서 3후보 숨은그림찾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만 이 대표가 차기 레이스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계속 흔들릴 경우 친문 핵심 진영에서는 새로운 후보 찾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계은퇴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권 도전 의지가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정세균 국무총리, 강원도지사를 지낸 친노·친문진영의 적자로 차기 다크호스로 분류되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거론된다. 아울러 여권 일각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된다.

내부 반발대통령 통합의 해사면 시사?

재판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재판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국민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이낙연 대표 새해 통신3사 인터뷰)

이 대표가 제기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지지율 추가하락을 막고 중도층 외연확장을 위한 정치적 승부수였다. 특히 민주당은 21대 총선 이후 180석의 거대 여당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다. 다만 부동산 이슈, 공수처 설치, 변창흠 국토부장관 임명 강행 등 각종 악재로 지지율이 줄곧 추락했다. 지난 총선 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와 민주당을 지지했던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근 30% 중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레임덕 상황이다. 민주당 역시 국민의힘에 지지율이 뒤지는 것은 물론 4월 보궐선거가 예정된 서울·부산지역에서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권 수장인 이 대표로서는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면서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셈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속되는 정치사회적 갈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과 상생의 정치라는 명분 아래 전직 대통령 사면이 필수적이라는 계산이다. 4월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공학적 접근으로도 나쁘지 않다.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본격 추진될 경우 야권 내부를 뒤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단행될 경우 탄핵문제를 놓고 보수야권 내부가 또다시 내홍에 휩싸이면서 분열 양상을 빚을 수도 있다.

다만 이 대표의 승부수에 대한 여권 안팎의 반발은 예상 밖으로 거셌다. 특히 민주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은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본인의 대권행보에 사면문제를 악용했다는 지적이었다. 당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물론 탈당과 함께 차라리 국민의힘에 입당하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이후 전략적 후퇴를 결정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당사자들(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성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당원과 국민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사면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지 터질 수밖에 없는 이슈다. 시기와 방식의 문제이지 이 문제를 영원히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 연말 여야 정치권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의 디데이(D-day)가 오는 31, 삼일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사면의 키를 쥐고 있는 청와대도 극도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사면론을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자 실제로 건의가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물러서며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꺼렸다. 다만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축년 새해 신년 인사회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의미심장했다.

이 대표가 꺼낸 사면론의 파장이 식지 않는 상황에서 새해는 통합의 해라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라고 언급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전직 대통령 사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면서 즉각적인 부인에 나섰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물밑교감 속에서 간접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왔다.

사면 찬반 팽팽사면 현실화 때 국민통합 리더 이미지

재판에 참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재판에 참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2021년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다. 오는 4월 차기 대선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다. 4월 재보선 이후 여야 모두 지도체제 정비를 통해 20223월까지 본격적인 차기 대선국면으로 접어든다. 이후 권력의 중심추는 현재권력인 문 대통령보다는 미래권력인 여야 차기주자들에게로 넘어간다.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악역은 구조적으로 현직인 문 대통령이 맡을 수밖에 없다.

물론 관건은 여론의 추이다. 전직 대통령 사면 여부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정치적 후폭풍과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 따르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7.7%, 반대는 48.0%로 각각 나타났다. 찬반 양론은 지역·세대별로도 엇갈린 가운데 정당 지지층별로는 더욱 극명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사면 반대가 88.8%로 나타나면서 10명 중 9명이 반대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찬성 응답이 81.4%에 달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고려하면 이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는 여야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악재가 될 전망이 높다. 다만 팽팽한 찬반여론과는 달리 국민통합으로 명분으로 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사면이 단행될 경우 정치적 열매는 오롯이 이 대표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유불리와 관계없이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사면 화두를 선제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면서 과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사면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민통합을 위해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전직 대통령 사면 과정에서 보수진보간 국론분열 양상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고령의 전직 대통령을 언제까지 감옥에 가둬둘 수는 없다. 사실상 식물상태인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된다 해도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이 대표가 악역을 맡았지만 사면이 성사될 경우 국민통합형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구축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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