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재경 정치평론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지난 14일 이뤄짐으로써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다시금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굴 태세다. 대법원은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공천 개입 혐의를 더하면 형기는 총 22년이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중 네 번째 기결수가 됐다. 지난 20174월 구속 기소된 지 39개월 만에 최종 형량이 결정된 것이다. 201610월 최순실의 태블릿 PC 공개로 촉발된 국정농단 사건도 43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기에 재판부는 재상고심에서 확정한 벌금 180억원도 확정했고, 35억원의 추징금도 확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전후 사진,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전후 사진, 뉴시스

-'박근혜 사면' 조건 완성...‘침묵하는 대통령 키는 이낙연’?
- 두명 대통령 영어의 몸사면기회, ‘기자회견’, ‘설 전후’, ‘4월 재보선

당장 청와대와 여권의 사면론에 대한 분위기는 차가운 편이다. 대법 판결 직후 청와대는 "선고 직후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이 복역하는 불행한 사건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밝힌 뒤 사면 입장을 더 이상 내지 않았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도 판결 전날인 13일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가능성과 관련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결정해야지 정치적 공방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수석은 "여당에서 사과와 반성을 얘기하자 국민의힘 일각에서 '무슨 사과 요구냐'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모순"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사과를 안했지만 사실 당(국민의힘)에서는 사과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침묵’...최재성 정무수석 정치적 충돌은 반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최근 두 전직 대통령 구속 등에 대한 사과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즉 당 대표가 사죄의 뜻을 밝혔는데 당의 한편에서 잘못된 재판이라고 따지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최 수석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면론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는 정치권 최대 이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마무리된 만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나온 사면론이 정치권에서 다시금 불이 붙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법원 판결 직후 과거 대표적 친박 인사로 꼽혔던 유승민 전 의원이 사면론을 가장 먼저 꺼내들었다. 유 전 의원은 즉각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 결단을 촉구했다. 판결이 나오던 날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사면은) 오로지 국민통합, 나라의 품격과 미래만 보고 대통령이 결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이라는 초사법적 권한을 부여한 의미를 생각해보기 바란다""사법적 결정을 넘어 더 큰 대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사면이라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 판단이 내려진 만큼 대통령이 대 통합의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나아가 유 전 의원은 친문세력을 중심으로 사면 반대론이 확산되고 청와대가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한 대목도 비판했다. 결국에는 사면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게 유 전 의원의 지적이다.

사실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은 실패했다는 게 여권 안팎의 평가다. 시기와 방법론적 측면에서 너무 앞서갔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 분위기다. 우선 시기의 경우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 무리하게 꺼낼 필요가 없었다는 지적이 중론이다. 또 방법도 사과를 거론함으로써 괜히 야권의 반발만 샀다는 비판이 많다.

사면론 최대 피해자는 이낙연, ‘결자해지해야

사면론의 최대 피해자는 현 시점에서 볼 때에는 이 대표 본인이다. 이 대표의 대권주자 지지율은 사면론 언급 후 급락했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 업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5%1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3.8%의 지지율을 기록해 이 지사를 바짝 뒤쫓았지만, 이 대표는 14.1%로 뚝 떨어져 1위와 2위와 격차가 커졌다. 1, 2위와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밖이었다는 점도 사실 예상외의 조사 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로서는 본인이 꺼낸 사면론을 잘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시기와 방법 등의 패착을 벗어나 어찌됐건 사면을 현실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되면 이른바 샤이보수층의 지지율을 일정 부분 끌어당겨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강력한 태세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 후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일단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여당 대표로서의 원론적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이런 입장은 앞으로 얼마든지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민과 당 안팎의 여론을 보면서 발언의 수위를 조금씩 조정해가며 사면의 불씨를 키워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은 올해 내내 정치권에서 핵심 이슈로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우선 시기를 보면 문 대통령의 신축년 신년 기자회견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사면을 대통령이 스스로 먼저 꺼내들지는 않겠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분명히 나올 것이고 어떤 형태든 입장을 밝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하더라도, 대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운 만큼 청와대 관계자 백브리핑 등을 통해서라도 일정 부분 여지를 두는 메시지를 낼 수 있다.

두 번째 시점은 2월 구정 즉 설날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과 국정수행 지지율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데다, 비록 코로나로 민족 대이동은 불가능하지만 명절 연휴를 계기로 여론이 반전된 적이 많았던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설 전후로 사면론이 크게 불을 일으킬 수 있을 전망이다.

세 번째 시점은 4월 재보궐선거 전이다. 부동산과 코로나 등 경제 이슈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겠지만, 샤이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사면카드는 매우 유효적절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여의도에서는 여권이 국민 대통합과 코로나 위기 극복, 경제 회생 등을 이유로 정치적 갈등의 수위를 낮추고 민생 정치를 기하자고 외치며 사면 카드를 내밀 경우 사실 꽤 큰 파장으로 선거판을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이 대법 판결이 이뤄졌다 해서 바로 사면론을 꺼내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성 친문세력을 포함해 민주당의 보통 지지자들에게도 지금 시점에서의 사면은 크게 설득력을 갖기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너 차례 사면론을 재점화 해 가면서 여론을 살피고 그 이후 적절한 상황에서 형 집행 정지 후 사면 등의 단계적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점쳤다. 어찌됐건 올해 상반기 내에는 사면에 대한 가닥이 어떤 방향이든 잡힐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전망이다.

대통령 기자회견, 설전후, 4월 재보선...임기말 불가능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사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지난 7일 신년인사회 발언을 보면 사면의 대한 속내를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해는 통합의 해"라고 운을 뗀 뒤 코로나 극복의 상황의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라며 "우리가 코로나에 맞서 기울인 노력을 서로 존중해주고 더 큰 발전의 계기로 삼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통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마음의 통합발언이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한창 나오던 때 나온 것이라 사면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상당했다. 정치적 통합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차후에 코로나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는 계기로 사면을 꺼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고유의 권한인 사면카드는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될 때라면 언제든 실행 가능한 정치적 행위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 입장에서 시기와 방법에 대한 공론화는 정치권 내부에서 이뤄져도 되고 정치권 밖에서 이뤄져도 상관없다. 다만 그 카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반면 신년 인사회에서의 대통령 발언이 전반적인 국정운영의 방향에 있어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면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분석에서 비롯된 분석이다. 문 대통령 임기 중에는 사면이 쉽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과거 문 대통령의 공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에 뇌물·알선수재·수뢰·배임·횡령 등 부패 범죄에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모두 5대 사면배제 대상인 뇌물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사면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다.

여권인사, “두명 대통령 영어의 몸, 현정권 부담

그럼에도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동시에 영어의 몸이 된 사례를 찾기 힘들다이유야 어찌됐건 두 전직 대통령 구속 상태는 현 정권에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사면이 살아있는 카드로 올해 상반기 내내 정치권을 달굴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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