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명 전 장관 [뉴시스]
공로명 전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최승진 공문서 조작사건

“국외 퇴거 명령 받고 추방돼 한국에 돌아왔다”

- 장관님 재임 중에 아주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뉴질랜드에 있던 공관 직원이 전문을 조작해서 지방 선거에 정부가 대대적인 개입을 하려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당시 권노갑 의원에게 전했고 그것을 권노갑 의원이 폭로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
▲ 우리말로 적절한 표현이 있을 텐데, 영어로 로튼 애플 인 베럴이라고, 썩은 사과가 통 안에 들어가서 멀쩡한 사과까지 온통 망친다는 뜻이다. 그 이야기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사건이었다. 당시 1995년 3월23일인데, 이때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재해서 관계 부처 차관들을 소집했다. 우리 정부가 6월로 예정했던 지방자치제, 선거를 위한 참고자료를 33개 국가에서 수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33개국이 미주 지역, 주로 라틴아메리카, 그다음에 EU, 소위 말하자면 서구 선진국들이다. 지방자치제도 실시와 관련해서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33개 공관에 요청을 했다. 그런데 최승진이 “정부가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연기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그 전보를 변조해서 당시 가장 유력한 야당 의원 중에 한 분인 민주당 권노갑 의원에게 전한 거다.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2월에 당시 안기부가 지방자치제를 연기하겠다고 한 문서가 있었다고 폭로된 이 사건으로 한참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지방자치제 선거가 연기되는 일은 절대 없으며, 예정대로 실시된다고 기자들에게도 밝히고, 신문에도 보도했다. 그런데 최승진은 전보를 위조해서 본국에 들어가는 자기 부인 편으로 권노갑 의원에게 전했다. 그래서 부인이 서울에 들어와서 권노갑 의원 여비서한테 전하고 갔다. 

이 전보를 받은 권노갑 의원이 살펴보니, 전보가 대외비로 되어 있었다. 영어로는 오피셜 유즈 온리. 이 비밀취급 전보가 변조되어서 전달된 거다. 권노갑 의원은 이 전보를 두 달 후에 신동아 기자에게 넘겼다. 그래서 기자가 확인절차를 밟았다. 당시 문봉주 문화국장에게 전화로 사실 여부를 물었다. 그래서 “그건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내 사무실에 와서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해서 다음 날 만났다. 그리고 그 변조된 전보와 우리가 보낸 전보를 보여주면서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 기자가 그 전보를 보고 7월호 신동아에 게재했다. 왜 이 변조된 문서가 권노갑 의원한테 갔고, 권노갑 의원이 이를 진짜 문서라고 생각했을지를 추적해가면서 양측의 일들을 모두 다루면서 기사를 썼다. 

그런데 권노갑 의원은 절대 변조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공한 사람이 신분이 확실하다는 이유였다. 최승진은 당시 뉴질랜드 외신관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는데 후에 가서 권노갑 의원이 자기가 그 문서가 변조된 게 아니라고 믿은 이유를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름도 밝혔고, 그렇게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됐다. 즉각 최승진의 직위를 해제하고 본국에 들어오라고 했더니, 귀국하지 않고 뉴질랜드에 망명신청을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가 망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이어 바로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신청을 하게 되면 난민 절차가 있지 않나. 그래서 재판을 하면서 질질 끌었다. 난민 신청도 재판 결과 기각이 됐다. 

- 이후 뉴질랜드에서 추방당하지 않았나. 
▲ 그렇다. 국외 퇴거 명령을 받고 추방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결국은 형법 위반, 공문서 변조 등 여러 가지 법률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서 1심에서 2년 선고를 받았다. 그러다가 항소심, 2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는데, 그 과정에서 커다란 정치 문제가 됐다. 야당에 의해서 정부가 지방자치제를 하겠다고 했다가 연기하려 했다가 한다고, 커다란 대정부공세로 몰고 갔다. 이것이 단순한 외무부 직원의 문서 변조사건이 아니라 커다란 정치적 문제가 됐다.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서 국회의원들이 장관실로 와서 난리였다. 

그다음에 최승진에 대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민주당 국회의원 10명 정도가 뉴질랜들을 찾아가서 여러 활동도 하고 대단한 소란을 야기하게 됐다. 그래서 이 수습을 위해서 당시 이재춘 제1차관보를 현지에 보냈다. 이 사건 자체는 선준영 제2차관보 소관이었는데, 현지에 가서 최승진을 설득해서 보내는 데는 같은 강원도 사람인 1차관보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동향이라는 점이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승진이 순순히 설득당해서 들어오지는 않고, 여러 가지 저항을 했다. 뉴질랜드 정부와도 교섭을 했는데, 우리 사건이니 뉴질랜드 정부에게 좀 미안했다. 거기다가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뉴질랜드 조야를 들쑤시고 다니며 곤란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승진은 1976년에 외무부에 들어왔고, 1981년에 해직됐다. 해직된 이유는 근무불량이었다. 결함이 있는 사람인거다. 그런데 그가 해직이 된 해에 해직공무원 복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숙청당했던 공무원들이 복직을 위해서 그룹을 형성해서 대정부 투쟁을 했던 것 같다. 최승진이 위원장이었다. 상당히 정치적인 친구다. 결국은 1990년, 9년 만에 복직했다. 그래서 1992년에 뉴질랜드로 발령받아서 나갔다. 그러니까 당시 외신과에서는 최승진이라고 하면 두 손 다 들었다. 국내외로 그렇게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1995년 7월에 공교롭게 뉴질랜드 돈 매키넌 외상이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을 갔다가 오는 길에 한국 들러서 저와 외무부에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직원이 이렇게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켜서 뉴질랜드 정부에 여러 가지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동안의 여러 가지 사정과 이 사람이 저지른 과오를 이야기하고, 조속히 좀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보내려고 하더라도 이게 국내절차법상 사법적인 절차가 필연적으로 있을 것 같고,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할 수 없었다. 그런 절차를 거쳐서 뉴질랜드 정부는 해줄 일을 다 해줬다. 정치망명을 기각하고, 난민 신청도 재판을 통해서 부결했다. 그런데 난민 신청 재판은 1차 심사가 끝나고 나서 결정되면 불복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런 절차를 경유해서 결국 이 사건 자체는 1995년 발생했는데, 해결되기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이 사건으로 외무부의 명예가 실추됐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고 누누이 설명했는데도 민주당에서 정치적인 이슈로 삼기에, 권노갑 의원과 김대중 당시 위원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랬더니 외무부장관인 제게 맞고소를 했다. 그렇게 고소 사태가 일어났는데 법원에서 권노갑 의원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고 최승진은 1년6개월, 2년 후에 결국은 복역하게 됐다. 참 지금 생각해도 이 사람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했나 모르겠다. 

- 아무런 이득이 없을 텐데 말이다. 
▲ 그러니까 비정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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