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G(우레탄원료) 시장 이끈 50년여 중견 기업, 이대로 몰락하나?

[KPX 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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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공정위가 중견 화학그룹 KPX의 집단 부당 내부거래에 칼을 빼들었다. 중견기업은 대기업 집단에 비해 기업집단 내외부의 감시와견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지만 이들의 경쟁저해성이 대기업집단에 못지않다는 이유다. 이로써 공정위가 법 위반 감시 범위를 중견 기업 집단까지 넓혀 건전한 경쟁 질서 확립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 평가금 37억 달하는 영업권 무상 제공...계약 체결, 상응 대가 지급 ‘전무’
- 현금 유동성 확보해 지분 확보 나서기...양 회장 장남 경영권 승계 발판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기업집단 KPX 소속 진양산업(주) 양규모 회장의 장남이 최대주주로 있는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이하 CK엔터프라이즈)에게 베트남 현지 계열사 비나폼(Vinafoam)에 대한 스폰지 원료의 수출 영업권을 무상으로 제공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부과 과징금은 진양산업 13억6200만 원, CK엔터프라이즈 2억7300만 원으로, 총 16억3500만 원 규모다.
 

[KPX 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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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X는 27개 계열사를 소유한 중견 화학그룹으로 자산총액은 2.3조 원에 달한다(2019년말 기준). 진양산업은 2012년부터 스펀지 원·부자재인 PPG 수출 영업권 일부를 KPX홀딩스 양규모 회장(보유 지분 6%)과 그의 장남 양준영 부회장(88%)이 주주로 있는 CK엔터프라이즈에 넘겼다. 2015년 8월부터는 수출 영업권 전부를 이전한 바 있다.

“노력 없이 독점 이윤”
이관되자 매출액 폭증


진양산업은 스폰지 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인 ‘폴리프로필렌 글리콜(이하 PPG)’를 국내업체로부터 매입해 상당한 이윤을 더해 베트남 현지법인 비나폼에 수출해왔다. 비나폼은 진양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베트남 현지 계열사다. 비나폼은 진양산업에서 수입한 원부자재로 스폰지를 생산해 현지 국내 신발제조업체(창신, 태광실업 등)에 납품했다.

문제는 진양산업이 그간 비나폼에 수출하던 원부자재 중 PPG에 대해 2012년 4월부터 물량 일부를 CK엔터프라이즈에 이관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진양산업은 2015년 8월 부터 모든 PPG 수출 물량을 CK엔터프라이즈에 이관했는데, 이 과정에서 계약 체결이나 상응하는 대가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진양산업 대표이사와 전무이사가 CK엔터프라이즈에서 각각 이사와 감사를 겸직했는데, 해당 임원이 이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CK엔터프라이즈는 2016년 12월까지 실무 인력이 존재하지 않아 다른 계열사 직원이 수출 업무를 대신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KPX 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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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양산업이 CK엔터프라이즈에 무상 양도한 수출 영업권은 평가금액이 36억7700만 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 같은 지원행위를 통해 CK엔터프라이즈가 베트남 소재 국내 신발제조업체 등에 납품되는 스폰지의 원재료 수출 시장에 아무런 노력 없이 진입해 독점적 이윤을 향유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행위로 인해 잠재적인 경쟁사업자의 진입이 봉쇄되는 등 경쟁 제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수출업 경험이 전무하던 CK엔터프라이즈가 지원 행위를 통해 사업 기반과 재무 상태를 강화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CK엔터프라이즈는 2011년만 하더라도 부동산임대업을 통한 매출액이 3억2700만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2년 PPG 수출 물량이 이관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출액이 부동산임대업 매출액의 12배~22배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 평균 영업이익 역시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약 7700만 원에 불과했지만, PPG 수출 물량이 이관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 2019년까지는 약 14억600만 원으로 1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권 승계 발판으로
무형자산 제재, 최초 사례


공정위는 이 같은 지원행위가 수출업을 영위하는 잠재적 경쟁 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봉쇄했다는 판단이다. 원료 수출사업은 가공 없이 생산업체 공장에서 베트남 현지로 바로 이동되는 만큼 특별한 시설이 불필요하며 수출(대행)업의 특성상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게 특징이다.
이 외에도 이 같은 행위가 장남의 경영권 승계 발판으로 작용했다고도 지적했다. CK엔터프라이즈가 진양산업으로부터 PPG 수출 물량을 이관받아 충분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그 수익을 기업집단의 지주회사인 KPX홀딩스 지분 확보에 활용했다는 점에서다. 양규모 회장의 장남이 기업집단 KPX에 대한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이번 공정위 제재는 경쟁저해성은 대기업집단에 못지 않는 중견 기업집단의 위법 행위를 엄정하게 조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간 중견기업집단의 경우 대기업집단에 비해 기업집단 내·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점은 문제로 꼽혀왔다. 이와 함께 가치 평가가 쉽지 않은 무형자산에 대한 무상 양도의 부당성에 제재를 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무형자산 중 영업권으로 한정하는 경우 최초 시정 사례에 해당한다”며 “대기업집단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장에서 경제력을 남용하는 중견 기업집단의 부당지원행위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감시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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