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입법에 ‘안전 공백’ 드러나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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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해 12월10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는 만13세 이상이 면허가 없어도 탈 수 있고 헬멧 미착용 시 부과하던 범칙금도 사라졌다. 안전사고 확산 우려가 커지자 개정안 시행 전날인 12월9일 면허를 가진 사람만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하는 ‘재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추가된 규정은 유예기간 때문에 바로 적용되지 않아 4개월간의 ‘입법 공백’이 발생했다. 정부는 재개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4월까지 경고·계도활동 활발하게 한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단속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법안에는 또 다른 빈틈도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재 만 13세 이상 탑승 가능…4월 이후부턴 만 16세 이상
- 전문가 “정부, 주차구역 가이드라인 마련…철저한 단속도 필요”

국회가 지난해 5월 통과시킨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10일부터 만 13세 이상이 면허 없이 전동킥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회는 부랴부랴 만 16세 이상에 면허가 있어야만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을 전날인 9일 통과시켰다. 재개정안은 공포 후 4개월이 지나야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내년 4월 전까진 만 13세 이상 무면허자도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다.

개정 도로교통법은 전동킥보드가 차도로 다니다 발생한 사고가 잦아 자전거도로로 다니도록 하기 위한 개정안이었는데 ‘만 13세 이상’부터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안전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등 PM 관련 교통사고는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 작년 447건으로 급증했다. 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사고를 일으키는 전동킥보드를 고라니에 빗대어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정경일 교통사고전문 변호사는 일요서울에 “철저한 안전교육과 안전한 이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면 적절한 나이대로 볼 수 있겠지만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은 만 13세 이상의 어린이를 험지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며 “통행 방법이 자전거와 동일하기 때문에 자전거 안전교육 시 전동킥보드 등 PM 안전교육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식 졸속 입법’4월까지 안전 공백 기간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난 12월20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은 올해 4월 말까지만 바뀐 개정안에 내용처럼 전동킥보드 이용 가능 연령을 만 16세에서 만 13세로 낮췄다. 이 기간에는 운전면허증도 필요 없다. 그러다가 4월 이후로 다시 만 16세로 연령이 이용 연령이 올라가고, 운전면허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전동킥보드 이용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4개월의 공백이 발생한 이유는 상황에 닥쳐 급하게 처리하는 ‘국회식 졸속 입법’ 때문이다. 

공정위는 안전 공백 기간에 대응하고자 전동킥보드 대여·판매 업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네이버, 11번가, 쿠팡 등 8개 통신판매중개업체와 온라인 쇼핑 협회에 이용 가능 연령, 안전장비 착용 등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리라고 요청했다. 또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를 개정해 이용자 준수사항과 사고 위험성 등에 대한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학부모들에게도 자녀가 만 16세 미만이거나 면허가 없다면 전동킥보드를 구매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당부한 바 있다. 

시민 통행 방해에도‘주차 무질서’ 문제는 포함 안 돼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간단하게 대여·반납할 수 있는 신개념 이동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전동킥보드의 주차 무질서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자전거도로·지하철역 입구·산책로 등 곳곳에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충돌 등 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 도로교통법안에는 공유 전동킥보드의 주차 기준 등 이용 질서에 관한 규정은 담겨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서울시는 킥보드 주차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시는 킥보드 주차권장구역으로 ▲가로수·벤치·가로등 등 보도에 설치된 주요 구조물 옆 ▲자전거 거치대 주변 ▲이륜차 주차장 ▲보도 측면 화단·조형물 옆 등 12가지 유형의 장소를 꼽았다. 주차금지구역으로는 ▲차도·자전거도로 ▲차도와 인도 사이 턱을 낮춘 진입로 ▲횡단보도·보도·산책로 진입을 방해할 수 있는 구역 ▲보도 중앙 ▲버스정류소 및 택시 승강장 10m 이내 등 14개 유형을 꼽았다.

이어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도 제8차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 결과를 발표하며, 전동킥보드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때 공개된 주·정차 금지 구역은 총 13개다. ▲보도 중앙 ▲건널목·산책로 ▲점자블록·엘리베이터 입구 ▲버스정류장·택시 승차장 ▲건물·상가 보행자 진·출입로 ▲차도 ▲턱을 낮춘 진·출입로 ▲자전거 도로 ▲소방시설 5m 이내 구역 ▲육교 위와 지하 보차도 안 ▲계단·난간 ▲터널 안과 다리 위 ▲통행 제한 구간 등이 포함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이는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처벌이 내려지진 않는다. 

정 변호사는 “길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 때문에 민원이 늘면서 정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는데 이 가이드라인대로 주차가 이뤄진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이긴 한다”면서도 “가이드라인뿐 아니라 위반 시에 철저한 단속으로 과태료 부과 내지 견인 조치가 따라야 근원적인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동킥보드 자체는 새로운 미래형 이동수단으로 4차 산업 혁명으로 볼만큼 혁신적인 이동장치고 긍정적인 면이 상당히 많다”며 “이 같은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해 이용을 장려하는 것은 좋다. 안전을 위해 차도가 아닌 자전거도로로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좋지만 충분한 공간 확보와 안전 교육, 피해에 대한 보험 이 세 가지 부분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를 풀게 된다면 사고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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