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에도 노하우 필요하다’ 10년차 이상 고수들 따라가 보니

깔고 자는 박스에 눈이 쌓일까봐 겉을 덮어 놓은 모습이다. [사진=김혜진 기자]
눈이 내리던 날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의 잠자리 모습.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과 최근 ‘북극 한파’까지 덮치며 밖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노숙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고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12일. 일요서울은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서 생활하는 노숙 고수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추위 잘 몰라…코로나19는 힘들다”
- 한파 속 따뜻한 남대문 지하상가 가장 인기

오전 10시. 노숙인이 많이 거주한다고 알려진 서울역 2번 출구 쪽을 향하자 중구 임시선별검사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노숙인도 코로나19 검사를 많이 받느냐’는 질문에 임시선별검사소 관계자는 “휴대폰 번호가 있어야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는데 (노숙인들) 대부분 휴대폰이 없어 검사가 어렵다”며 “근처에 노숙인을 돕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아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 광장에는 허름한 차림에 큰 가방을 매고 배회하거나 박스와 침낭을 깔고 바닥에 누워있는 노숙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임시선별검사소 뒤편 구석, 비둘기에 휩싸여 있던 노숙인 A씨는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며 “봄이든 겨울이든 다 비슷하다. 겨울은 추운 것 하나뿐인데 별로 신경 쓰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 때문인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A씨는 “종교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나 자원봉사자들, 일반인들이 마스크나 핫팩을 나눠주러 자주 온다”고 덧붙였다. 

무료급식소 표를 받기 위해 노숙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무료급식소 표를 받기 위해 노숙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코로나19로 무료급식 인원 제한…노하우 있는 ‘nn년차’는 잘 안 먹기도

10시가 지나자 광장 시계탑 쪽에 사람이 점점 모이더니 이내 서울역 파출소 앞에 차례로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숙 18년차 B씨는 무료급식소 이용 쿠폰을 받는 줄이라고 귀띔해 줬다. B씨에 따르면 점심은 오전 11시, 11시30분, 11시50분 세 타임 쿠폰을 나눠준다고 했다. 저녁은 5시, 6시, 6시50분 세 타임이다. 대부분 앞 시간대 쿠폰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인근에는 ‘따스한채움터’ ‘참좋은친구들’ ‘구세군무료급식’ 등 다양한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B씨는 “코로나19로 무료급식소도 줄고, 인원 제한까지 생기면서 쿠폰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코로나 검사 확인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고 천차만별이다”라고 말했다. 급식소 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경우는 줄을 서지 않아도 바로 표를 받을 수 있었다. 노숙 20년차 남모씨는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반찬이 부실해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때가 많다. 노하우가 생기면 알아서 다니면서 먹기 때문에 무료급식소는 온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맛 없다’고 소문난 무료급식소를 이용해 봤다. 오후 5시 정각이 되자 급식소 앞에는 줄이 늘어섰다. 직원들은 식권을 받은 후 손에 소독제를 뿌려줬다. 1미터씩 떨어진 의자 대기실에서 앞줄에 있던 사람이 다 먹을 때까지 30여분 정도 대기하다 급식소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종이 칸막이 테이블에는 고봉밥과 그 밥에 반 정도 되는 양의 김치, 콩나물, 잘게 잘린 어묵, 계란프라이 등이 담긴 식판이 놓여있었다. 먹다 보니 밥이 반도 넘게 남았지만 반찬은 이미 다 먹은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반찬을 더 달라’는 아우성이 들렸지만 직원들은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겨울철 샤워는 어떻게 할까. 남 씨는 “겨울철에는 샤워를 보통 2~3일에 한 번씩 한다”며 “누구든 이용 가능했던 서울역 근처에 다시서기 센터는 노숙인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다. 요즘은 어느 곳이든 검사 확인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많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 노숙인들 거처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 노숙인들의 거처 [사진=김혜진 기자]

“쪽방 있지만 답답해 다시 나오는 것”…술 먹고 성매매 이뤄지기도

남 씨는 오후 4시 정도가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간다고 했다. 서울역에는 일명 ‘깡통’이라고 불리는 서울역 임시 대피소와 역사 중앙 통로, 우체국 쪽 지하도 등이 그곳이다. 서울역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남대문 지하상가는 겨울철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바람이 비교적 덜 들어와 따뜻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누울 자리를 편 노숙 저연차 홍모씨는 “서울역, 시청, 을지로, 종각 등 다 자 봤지만 너무 추워 3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던 때도 있다”며 “할 수 없이 여기로 옮겼다. 물어보지 말고 직접 하루 자봐야 안다”고 기자에게 권유했다.  

집을 구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거리 노숙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쪽방집을 갖고 있는 노숙인도 상당했다. 남 씨는 “다시서기 센터에서 기초수급을 받게 도와줘서 한 달 25만 원짜리 쪽방에 사는 노숙인들도 많다”며 “집은 있지만 좁은 방에 혼자 있기 적적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뭐라도 더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뒤편 쪽방촌 모습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역 뒷편 쪽방촌 [사진=김혜진 기자]

거리에 여성 노숙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성들은 어디에서 잠을 청하냐’는 질문에 노숙인 B씨는 “여성 전용 시설이나 근처 다시서기 센터에서도 잠을 자지만 코로나19 검사 확인서가 있어야 가능한 곳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나와바리’를 돌아다니던 여성들이 밤에는 서울역에 와서도 많이 잔다”며 “술 먹으면 추운 것도 잘 모르니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술을 먹고 잠을 잔다. 그럼 아침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성매매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B씨는 “남자(노숙인)가 돈이 생기면 밥을 사준다고 하고 여자(노숙인)에게 술을 먹여 만 원짜리 여인숙에 데려가기도 한다”며 “여자가 임신을 하든 말든 나와서 그냥 가버리면 끝이다. 임신하면 지우고 다시 오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 C씨는 “여자를 하룻밤 재우고 나서 목포나 부산, 여수 등 지방에 있는 티켓다방 마담에게 넘기는 경우도 봤다”며 “거기서 소개비로 목돈을 챙긴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의원에서 수면제를 받아 술에 타면 잘 모른다”며 “여자에게 그렇게 술을 권하고 술을 마신 여자는 정신이 없어 ‘네네’ 대답하다가 보내지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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