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최승진 공문서 조작사건

김영삼 대통령 유럽 순방

- 장관님 재임 중에 아주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뉴질랜드에 있던 공관 직원이 전문을 조작해서 지방 선거에 정부가 대대적인 개입을 하려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당시 권노갑 의원에게 전했고 그것을 권노갑 의원이 폭로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주실 수 있나. 
▲ 해명할 수 있는 건 이 사람이 정치적 망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제1차관보가 최승진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돌아오면 승진시켜준다든가 하는 감언이설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언론에 터트린다든가, 여러 가지 협박 공갈을 했다든가 등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환심을 사려고 여러 가지 애도 썼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 그럼에도 이 사건은 파장이 굉장히 있었던 거 같다.
▲ 그렇다. 더군다나 지방자치제가 5·16으로 중단이 됐다. 1995년에, 무려 34년 만에 다시 부활되는 제도였고 또 정치적으로 커다란 임팩트가 있는 일이었는데, 정부가 연기하려고 한다니 정말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정치의 장에서는 이성이 별로 작용을 안 하는 것 같다. 우리가 33개 공관에 보낸 전문들이 있는데 말이다. 

- 그렇다.
▲ 그 전보 대상 국가들이 지방자치제도의 선진국인데, 그 나라에 지방자치제도를 연기할 이유를 조사시킬 이유가 어디 있나. 그런 구실을 찾아내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낼 이유가 없다. 

- 그리고 그 33개국에 보낸 전문이 다 동일한 내용일 텐데.
▲ 그렇다. 그 원문을 팩스로 보내달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그 사본 위에 공관장이 원본임을 확인까지 해서 보여줬는데도 막무가내였다. 

- 정치적 의도로 문제를 이슈화시키려던 거 같다.
▲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그냥 정치적인 이슈로 삼은 거다. 그 지방자치제 선거가 예정대로 6월에 시행되지 않았나. 그래서 야당 소속 조순 씨가 서울시장이 되고, 여야 간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다. 

- 장관으로 부임하신 다음에 1995년 3월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유럽 순방을 하게 되는데 그 사안부터 먼저 여쭙고자 한다. 프랑스·체코·독일·영국·덴마크·벨기에를 순방하게 됐는데 순방의 가장 큰 목적과 구상은 무엇인가. 
▲ 3월11일부터 12일 이후에는 코펜하겐의 세계사회개발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이 회의를 전후해서 유럽 우방국 순방을 하기로 계획하고 전후 10여 일간의 예정으로 여행을 했다. 첫 기착지로 3월2일부터 4일간 프랑스를 국빈방문했다. 4월4일부터 5일에는 체코공화국을 방문했다. 체코 방문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었고, 특히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은 민주투사인 관계로 김영삼 대통령도 민주투사였다는 정치적인 전력에 비추어서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체코 다음으로는 독일 방문을 했는데 독일은 통일을 이룩한 나라고 우리로서는 항상 벤치마킹하려는 국가이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다음에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을 방문을 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코펜하겐으로 들어갔고 코펜하겐 다음에는 벨기에를 방문해서 EU 본부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체코 유럽 순방이 계획됐다. 

첫 방문지인 프랑스에 도착하는 날이 3월2일 목요일이었다. 바로 그날 저녁 엘리제궁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주최한 국빈 만찬이 있어서 참석을 했다. 만찬 전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다음 날은 파리 중심으로 유럽에 와 있던 특파원들과 조찬을 했고, 오전에 무명용사 묘지에 헌화를 했다. 오찬은 프랑스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 해당되는 경제단체에서 연설을 했다. 거기에 우리나라 재계 인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과의 교감하는 장소를 마련했다. 오후에는 OECD 사무총장이 예방을 했다. 마침 OECD 가입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사무총장이 대통령에게 예방을 온 것이다. 3월2일에 있었던 양국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측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을 견고히 지지한다고 표명함과 동시에 한국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 과거에도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는 프랑스가 북한과 가까웠다.
▲ 가장 전향적이다. 가령 영국의 경우는지지 여부를 표명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그에 비해서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해준 것인데, 여러 가지 당시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경제관계 등이 있어서 대충 기대되는 반응이었다. 

-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어려웠던 난제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나. 
▲ EU 협력 파트너로 들어가기 위한 한·EU 공동성명이 있었다. 프랑스는 그때 EU 의장국이었다. 그 기간에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 데 대해서 한국 정부로서는 만족스럽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한·EU 협력 증진의 토대가 될 것을 기대한다는 데 프랑스는 공감을 표했다. 그래서 경제협력 문제에서 당시에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가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는 점에도 만족을 표시했다. 기술 이전도 제대로 잘 되어가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함께 제3국의 테제베 수출에 공동으로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명하게 됐다. 

프랑스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테제베로 우리나라 동해안선, 속초와 부산을 잇는 고속철과 호남선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것을 민자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그 당시 정부 방침을 프랑스 쪽에 알려주고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은 안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네 번째는 상당히 민감한 외규장각 문서 가운데 하나를 들고 와서 반환 의사를 표명했는데 프랑스 내에서 격렬히 반대를 한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그렇게 난관이 많을지는 몰랐다”고 시인을 하면서 “전문가들의 고집을 꺾을 도리가 없다”고 등가교환 방식으로 해결 하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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