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국내 정보통신(ICT)기술 기업들의 오랜 난제로 꼽히는 것이 '유료화'다. 가입자 유치를 위해 '무료 서비스'를 내세웠던 기업들이 비용부담 때문에 이미 습성으로 굳어버린 '인터넷은 공짜' 관행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유료화를 추진했다가 망한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것이 프리챌과 한메일이다. 프리챌은 1999년 창업해 1,000만 명의 회원과 100만 개 이상의 커뮤니티 등 엄청난 인기와 전망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으나 2002년 11월 유료화 전환을 시도했다가 말 그대로 폭망했다.
 

2000년대 초 Email 대표 기업이었든 한메일(다음)은 이메일시장 70%를 장악, 1위로 등극했다. 그러나 다음은 2002년 스팸메일 방지를 명분으로 1000통 이상 메일 발송시 1통 당 10원을 부과하는 유료정책을 발표한 이후 급속히 사용자가 네이버 등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국내포털 1위 자리를 내어줬고 그 이후 1위 네이버와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2위에 머물고 있다.
 

두 회사의 유료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자만심'이다. 두 회사 경영자들은 유료화 성공요인으로 '익숙함과 탁월한 편리성을 포기 않는 소비자 습성'을 들었다. 서비스가 좋고 편하니 소비자가 부담한 '비용'이 크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프리챌은 후발 포털 사이트 사업자들에게 가입자들을 빼앗겼고 한메일 사용자들은 네이버 메일로 대거 이주해버렸다. 수익성 확대를 위해 선택한 '유료화'가 도리어 소비자 대거 이탈과 몰락을 자초한 최악의 '악수'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옛날 애기가 되어버린 포털 원시시대 애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 야권의 후보단일화 논란이 불러올 결과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야권 후보단일화 원 포인트 경선'을 요구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주장에 '선 입당 후 경선'으로 맞서며 3자 필승론까지 들고 나왔다. 그러자 안 대표는 국민의힘이 확정한 '100%시민경선'의 참여 자격을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야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경선 플랫폼'으로 압박수위를 높이자 김 위원장은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김 위원장은 “본인(안 대표)도 공당의 대표인데, 지금 다른 당에서 실시하는 경선 과정에서 무소속 이름을 걸고 같이 (경선)하겠다는 게 정치 도의에, 상식에 맞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의 ‘선 국민의힘 후보 확정 - 후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의 당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김 위원장의 전략(?)을 놓고 이러저런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향후 단일화 결론에 관계없이 김 위원장은 본전도 못 찾게 됐다.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에 관계없이 보수와 중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모두 힘을 합쳐야 겨우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못하지만 당원과 선거비, 조직력 등 모든 측면에서 국민의힘은 독립적인 결정변수다. 문제는 내세울 후보가 없을 뿐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사심을 버리고 안 대표가 제안한 ‘경선 플랫폼’과 같은 열린 공천을 본인이 먼저 제안하고 중립만 지켰어도 본전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 비록 다른 당 대표 안철수가 승리한다 해도 승리 지분 70%이상을 차지할 수 있고 ‘김종인 매직’으로 평가됐을 것이다.
 

다음은 최소한의 리스크로 본전이라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김 위원장이 ‘병풍역’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선 자당 후보 - 후 단일화’ 원칙을 내세우지만 ‘선 자당후보’보다 야권 전체의 ‘선한 경쟁’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여권의 공격이나 야권 내부의 과열경쟁을 막아주는 ‘병풍’역을 자처했다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비대위원장을 끝으로 정계은퇴는 불ㄹ가피하지만 적어도 다음 대선 전.후까지 야권의 원로이자 멘토로 최고의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중심에서 안 대표와 경쟁하듯 최일선 전투 소대장 역을 자처한 김 위원장은 본전도 못 찾게 됐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당원과 중도 유권자들을 ‘정권심판’이라는 그물 안에 가둔 물고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당후보론, 3당 필승론이 그의 오판과 자만, 교만이 겹친 ‘사심 정치’의 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단한 난센스다. 

유료화로 불편했던 네티즌들이 더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다른 포털 사이트로 손쉽게 옮겨간 것처럼 유권자 역시 과거와 달리 이념이나 진영, 지역에 관계없이 잘못한 정당에 대해서는 곧바로 지지를 철회하고 이를 SNS로 바로 확산시킨다. 지금 유권자는 정치 노마드(Nomad)다. 이미 유권자들은 김 위원장의 ‘사심 정치’에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권심판보다 김 위원장의 ‘사심 정치’ 심판에 나설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4.7 서울. 부산 시장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김 위원장의 ‘정치 공력’은 이미 끝났다. 그의 사심 정치는 국민 모두의 공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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