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남인순→임순영 ‘고소 준비 정황’ 유출···“세 명이 ‘모든 기회’ 박탈”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7월13일 서울시청에 고인의 운구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7월13일 서울시청에 고인의 운구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와 가족들이 박 전 시장 피소 정황을 알린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전직 비서 A씨는 최근 공개한 입장문에서 “당신의 자리는 당신의 것이 아닌 여성과 인권의 대표성을 가진 자리고, 당신은 지난해 7월 그 가치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2차가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어떤 내용일까.

정치권여성단체 분노···진정성 있는 사과와 입장 내놔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인 전직 비서 A씨는 지난 18일 입장문을 공개했다. 이날 A씨의 가족들이 쓴 편지도 공개됐다.

A씨는 “남 의원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 제 명예를 훼손시켰고 2차가해가 벌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했다”면서 “이제라도 본인이 알던 사실을 은폐했던 잘못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7월 피해자의 고소 준비 정황을 김영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남 의원은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유출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앞서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12월30일 ‘박원순 피소 유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해자의 변호인 측에서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전달 받은 여성단체연합 대표가 남 의원에게 관련 사실을 전달했고, 남 의원이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로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 의원은 지난 5일 “나는 피소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피해자 “괴로움 지속”

A씨는 “검찰조사 결과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며 “지난해 7월 당시 임순영 젠더특보의 ‘복수의 경로로 들었다’는 말이 소명되기 부족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적어도 남인순 의원, 김영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 세 사람에 의한 괴로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에 책임지는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세 분의 잘못된 행동의 피해자는 저뿐만 아니라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 헌신하며 인생을 바치는 분들과 의지할 곳 없는 피해자들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가 10시간 조사를 받는 중에 피의자 쪽에서는 대책 회의를 통해 이미 모든 상황을 논의하고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지 않아 시신으로 발견됐다”며 “계획대로 압수수색이 이뤄졌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고, 상대방을 용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기회를, 세 분이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편에서 상처를 보듬어줘야 할 대표성을 지닌 세 분이 함구하고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보호함으로써 2차가해 속에 저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전했다.

피해자 가족들

“세 명, 6개월간 함구”

가족들은 2차가해로 인한 A씨와 가족들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토로했다.

A씨의 동생은 “누나는 불안감과 공포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심리상태”라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피해 사실 부정 및 은폐를 위한 일련의 과정, 그리고 2차가해로 인해 누나는 삶의 의욕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누나는 혼자 잘 수가 없어 어머니가 24시간 곁에 같이 있어야 한다”면서 “나는 아침이 되면 혹시 누나가 밤사이에 나쁜 마음을 먹고 실행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누나와 엄마의 안위를 확인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가족의 고통은 박 전 시장이 자살한 날 피소에 대한 사실을 알고 박 전 시장에게 전달한 김영순, 임순영, 남인순이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다”며 “또 그들은 6개월간 함구하고 있었다. 남 의원은 최근 자신이 결백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사실을 알면서도 여당 여성의원 카톡방에서 누나를 지칭할 때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검사는 자신이 박 전 시장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꽃뱀’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게시하며 누나를 직간접적으로 조롱했다”며 “민경욱 전 인사기획비서관은 누나의 실명이 포함된 편지를 공개하고 오성규 전 비서실장은 경찰 수사 발표날 거짓고소라고 했지만 다음 날 검찰에서 박 전 시장이 문제의 문자를 했다는 것을 발표하자 아무 반응을 안 보였다”고 지적했다.

A씨의 아버지도 “지금이라도 남인순, 김영순, 임순영은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면서 “특히 남 의원은 지금이라도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죄하고 의원직을 즉시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의 어머니는 “피해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내가 죽으면 인정할까?’라는 말을 한다”면서 “그런데 책임지고 피해자를 지켜줘야 할 당사자들과 서울시 고위직들은 여전히 사실을 은폐하고 있고, 있던 사실을 지워버리려 서울시 소유의 가해자 휴대전화를 가족들에게 이관했다는 사실까지 전해 들었을 때 느꼈던 비통하고 참혹한 감정을 어떠한 말로도 토해 낼 수가 없다”고 전했다.

정치권과 여성단체 등도 남 의원 등이 2차가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그간 정의당은 남 의원에게 책임 있는 입장을 요구했지만 남 의원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2차 피해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보궐 승리만을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입장문을 써서 사퇴를 요구해야만 했던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남 의원과 민주당은 안일한 대응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입장을 시급히 내놓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21일 여성단체는 남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와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진보당, 불꽃페미액션은 사무실에 항의 방문하면서 “가해자에게 조력하고 조직에 무조건 충성하는 국회의원은 여성들에게 아무 쓸모없다”며 남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관련 내용을 유출한 의혹을 받는 남 의원과 김 전 상임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수사를 경찰이 맡게 됐다.

지난 21일 서울남부지검은 “사건을 검토한 결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 밖의 범죄라고 판단된다”며 “피의자의 주거지와 범죄지를 관할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사건을 이송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시행 중인 검찰청법 시행령(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은 4급 이상 공직자, 3000만 원 이상의 뇌물 사건, 5억 원 이상의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범죄, 5000만 원 이상의 알선수재‧배임수증재‧정치자금 범죄 등에만 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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