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재경 정치평론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를 넘어서면서 이른바 진보 원로 인사와 과거 참여정부 인사 상당수가 등을 돌리고 있다. 국정농단의 적폐청산 깃발들고 첫 걸음을 뗐던 집권 초기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촛불 정신에 기초한 현 정부로서는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돌아선 배경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진보 진영의 분열이라기보다는 현 정부의 민주주의 노선 이탈에 방점이 찍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즉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적대정치의 강도가 심화하면서 건전한 비판이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현실이 고착되고 있다는 진단을 이들이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적폐청산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기할 것이라 봤던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최장집 명예교수, 뉴시스
최장집 명예교수, 뉴시스

- 진중권이 든 반문깃발강준만.한상진.홍세화 교수 학계로 전방위 확산
- 친노원조 -부터 이철희.금태섭까지 정치권, ‘비문연대형성

진보진영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른바 '문빠(문재인 대통령 극성 지지자)'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지난해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에 기고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제목의 논문에서 최 교수는 특정 정치인을 따르는 '' 현상이 시민사회 공론의 장을 망가뜨렸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빠 현상은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이지만 조작된 다수가 공론장을 지배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며 시민사회 공론장을 황폐화시켰다"고 꼬집었다.

사실 '' 현상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당시 노사모로부터 시작된 '' 문화는 시작의 단계에서는 다분히 순수한 측면이 있었다. 일종의 팬클럽 형태에서 비롯돼 나름 건전성을 갖는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장집, “빠현상 공론의장 망가트려”, 홍세화, “이성 마비시켜

하지만 이후 문빠로 이어지면서 의견을 같이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이 혐오로 변질되는 양상에 이르렀다. 직접적으로 빠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진보진영 인사들의 이탈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일반론이다. 최 교수의 지적은 결국 문 정부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 그 의미와 배경과는 상관없이 가열차게 매도되는 상황에서는 여론의 공론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더 구체적으로 문빠의 상황을 진단한 건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다. 그는 최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노사모의 경우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이 팬덤에 작용했다""지금의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지금은 그냥 좋은 인상이나 화려한 수사에 대한 단순한 호감이 작용한다""이런 감정에 빠지면 옳고 그름이나 진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이성이 마비된다"고 강조했다. 문빠가 바로 이성이 마비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더 실랄하게 홍 전 대표는 "'나와 같은 사림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틀리겠어'라고 생각하면 생각의 수정이 불가능해진다""이런 현상이 민주주의 발전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명의 진보인사인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문 정부 정치를 이른바 '싸가지 없는 정치'로 규정했다. 강 교수는 '싸가지 없는 정치(인물과 사상사)'에서 싸가지 없는 정치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극단적인 편 가르기와 증오 나아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트 남이 하면 불륜)’식 정치가 절차적 정당성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책에서 강 교수는 보다 강도 높게 문 대통령을 저격했다. 문 대통령이 중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뒤로 빠지는 고구마 같은 침묵에 임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유체이탈형 화법으로 일관한다고 쏘아붙였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제일 아쉬운 부분은 사람들이 가장 절박하게 느낄 때 갈등이 고조돼 있거나 여야간 대립이 심할 때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직접적인 형태의 소통이라든지 야당 대표나 정치인을 만난다든지 하는 것들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좀 해소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홍세화 대표, 뉴시스
홍세화 전 대표, 뉴시스

유인태, “소통방식 문제염동연, ‘회고록통해 직공

진보진영 원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의 소통방식을 문제 삼았다. 유 전 총장은 이달 초 방송인터뷰에서 문 대통령 소통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항간의 지적에 "(문 대통령이)민정수석 때 노무현 대통령을 말리는 역할을 주로 해서 습관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소통방식이 너무 적극적이라 이를 자제시키는 역할을 문 대통령이 하다 보니 본인은 정작 너무 소극적으로 됐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창업공신인 염동연 전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회고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것도 반문 선봉에 서 있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염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친노 중에 노무현 어려울 때 도와주거나 함께한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며 첫 번째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왜 실패했냐. 첫 청와대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미래를 그려 온 사람들을 옆에 두지 못하고, 막차 탄 사람들을 데려다 놓는 바람에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진보진영에 발을 대고 있으면서도 현 정부에 비판조로 돌아선 대표적 인물들로 꼽힌다. 이들은 최근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금 전 의원은 신년기자회견 직후 자신의 블로그에 금태섭의 찐 토크를 공개했는데, 진 전 교수와의 대화가 주요 내용이다. 대화록을 보면 금 전 의원은 촛불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른 여러 문제가 있다며 진 전 교수에게 신년기자회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에 진 전 교수는 보면서 박근혜 정부를 떠올렸다고 운을 뗀 뒤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씀 자체는 멀쩡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당정청이 하는 일은 사실상 대통령이 재가한 건데, 자기는 아닌 것처럼 빠져나와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고 평가했다.

특히 진 전 교수는 법무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징계를 한다고 했을 때 (문 대통령은) ‘법무부가 하기로 했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멈출 수 있었다. 장관은 대통령 부하다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가장 뼈아픈 곳을 찌르고 있는 이는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집값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차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조 교수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인물이다.

유인태 전 사무총장, 뉴시스
유인태 전 사무총장, 뉴시스

참여정부 홍보수석 출신 조기숙, ‘부동산 정책질타

글에서 조 교수는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정확한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과거 문 대통령 최측근 인사와의 만남을 회고하며 현재의 사태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두 해 전 문 대통령 최측근 인사와 부동산 문제를 놓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문 대통령이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폭락할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즉 대통령이 참모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접한 탓에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나아 조 교수는 "이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 원인이 전문성 부족에 있다고 믿는다""참여정부 때 경험이 있으니 현 정부가 들어서면 부동산 투기 같은 건 발을 붙이지 못할 거라고 믿은 저의 어리석음을 탓한다고도 했다.

그 기세를 이어 조 교수는 지난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참여정부와 문재인정부를 비교할 때 주의할 점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주로 자신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언론과 싸운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사실상 문빠를 겨냥한 대목에 눈길이 쏠린다.

조 교수는 현재 민주당 위기는 경선을 두려워한 민주당 의원들이 강성 당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조국과 추미애를 강력 지지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죽이고 방관한 데에 있다고 본다그 결과 당심이 민심으로부터 멀어졌고, 정치적 옳음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진보는 진보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인식의 결은 결국 문빠로 대표되는 집단의 배타적 경향이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요소인 소통의 창구를 막아버렸고, 그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현 정부는 진보의 노선에서 이탈했다고 보는 것으로 통한다.

상당수 진보진영 인사들이 문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문빠들의 반격이 이뤄지고, 이에 거침없는 비판을 더하고, 또 반격이 이뤄지고 하는 과정에서 진보진영 인사들의 등 돌리기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문빠가 있고 그들 논리 도마 위에는 최근 조국 사태와 추미애 윤석열 갈등이 올랐다. 두 사건이 한국사회를 뒤덮으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논리가 마비됐다는 게 진보진영 인사들의 인식으로 해석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적폐청산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문 정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적폐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하지만 그런 비판마저 적폐로 돌려 제대로 된 견제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다는 허무함이 진보진영에 퍼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조기숙 교수, 뉴시스
조기숙 교수, 뉴시스

조국사태-추윤 갈등 문파열성 지지층 결별 한몫

당과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과 대통령의 열성지지자들이 만든 불통의 울타리가 민주주의 길에 놓이면서 민심을 보라고 외치는 상당수 진보진영 인사들의 제 갈길 가기가 심화됐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평가인 셈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