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학자들은 흔히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국가정체성, 자기 나라의 위대한 인물 추앙’ 여부가 그것이다. 이 기준에 하나라도 못 미칠 경우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 해도 정신적으로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농촌 삶의 질이 얼마나 좋으냐’다. 여기에는 당연히 ‘도농(都農)격차가 얼마나 적으냐’도 포함된다. 결국 우리 농촌이 지금처럼 인구절벽으로 인한 지방소멸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농촌은 도시의 모태인데 그것이 피폐해지면 도시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인류는 지금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인 코로나19를 겪고 있다. 코로나 19 발발 수년 전에 일본의 재정경제자문회의는 향후 일본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산업으로 ‘관광과 농업’을 제시한 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을 역임한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도 ‘코로나 19’ 이후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농업을 들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적 미래학자인 재이슨 생커(Jason Schenker)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COVID 19)에서 실내 식품 생산 공장, 실내 재배시설, 농산물 유통 시설, 실험실 배양고기, 채소나 생선의 수경 재배시설 등을 미래의 유망한 분야로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영국 등에서 백신접종이 시작되었다지만 코로나 19가 단기간 내 꺾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빨라야 올 하반기, 늦으면 연말이 돼야 백신접종 효과를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변형 코로나 속출도 우려된다.

그러는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이 거주지에서 지내면서 디지털 서비스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극심한 경기침체와 실업 등으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기회요인이 있는 법이다. 코로나19로 농업과 농촌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국민들은 소득이 줄더라도 농산물 등 식품 구입에 지갑을 열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 식품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

이처럼 코로나 19는 ‘지속 가능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농업과 농촌을 ‘도농상생(都農相生)’을 통해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귀농인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년 새 3.5배 증가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해 동안 1.8배 증가한 바 있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코로나19로 인해 ‘저밀도 사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농촌거주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이처럼 미래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농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도시민들 사이에 움틀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점에 착안하여 향후 농업 예산을 크게 증가해야 한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수산분야 제외)은 15조7743억 원으로 국가 전체 예산(512조3000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8%에 불과하다. 이는 농가인구 비중이 4.5%(2018년 기준)이고, 읍·면 지역의 농촌인구가 18.8%나 되며, 고용 비중도 순수 농어업분야가 4.1%(식품·외식 산업까지 포함하면 9.3%)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코로나 19로 ‘자국 우선주의’로 급선회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퇴조하고 있으며, 식량과 생필품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제 농업은 생명경제의 기둥인 생명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농가는 소득은 줄고 경영비는 늘어 농가부채는 늘고 있다. 농업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수준의 낮은 농업예산으로는 식량자급률 46%(세계 5대 식량 수입국)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

향후 농업·농촌에 대한 투자 확대로 ‘농촌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농업예산 확대는 작게는 농촌을 위하는 일이지만 크게는 국민 전체를 위한 일이다. ‘중소농 육성정책’은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뿐 아니라 귀농을 촉진해 실업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농촌을 유토피아로 개조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경북 ‘의성군 이웃사촌지원센터’가 혁신적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정책이 많이 실현될 경우 지방소멸을 방지할 수 있고, 도농 간 양극화도 완화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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