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보다 기업 본래 가치 주목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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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재벌그룹 총수들이 구속됐을 때 주요 계열사 주가가 전체 증시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이목이 쏠린다. 한 누리꾼은 해당 기사에 댓글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재벌 오너 일가가 구속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부담을 덜어 주가의 상승요인이 됐다"며 반겼다.

반면 기업들은 '총수의 부재로 의사결정이 늦어져 사업적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두 논리는 재벌 총수나 고위직 임원의 구속이 문제가 되면 반복되는 주장이다. 과연 재벌총수의 수감기간 주가가 더 올랐다는 것이 사실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팩트체크해봤다.

- SK 한화 CJ 오리온 등 과거 총수 부재 때 주가 올라
- '사회적 부담 덜어 주가 상승요인 됐다' 분석도


재계는 총수들이 수감될 때마다 기업 경영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간 사례를 보면 최소한 증시에서는 총수의 공백이 반드시 기업가치 하락으로 직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재벌 총수 구속 이후 주가가 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한국거래소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삼성·SK·현대차·롯데·한화·CJ·오리온 등 주요 그룹 총수가 수감된 총 9개 사례 중 7개 사례에서 총수 수감 기간 그룹 지주사 등 대표 종목의 상승률이 코스피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구속 수감된 2017년 2월 17일 직전부터 2심 집행유예로 풀려난 2018년 2월 5일 직전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25.46% 올라 코스피(21.31%)를 압도했다.

SK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횡령 등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고 수감된 2013년 1월~2015년 8월 SK 주가는 198.56%나 뛰어올라 코스피(0.97%)를 완전히 앞질렀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비자금 조성·회삿돈 횡령 등 혐의로 2006년 4~6월 수감된 기간 현대차 주가는 7.70% 하락했지만 코스피(-14.11%)보다는 선방했다.

한화의 경우 김승연 회장은 2000년대 이후 '보복폭행' 사건(2007년 5월~9월), 부실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사건(2012년 8월~2014년 2월) 등 두 차례에 걸쳐 수감 생활을 했다.

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감 기간 한화 주가는 각각 35.51%, 14.08% 상승해 코스피(+14.76%, -1.72%)를 앞질렀다.

이재현 CJ 회장이 2013년 7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2016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CJ 주가도 76.21% 뛰어올라 코스피(+9.95%)를 크게 웃돌았다.

오리온도 담철곤 회장이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2011년 5월~2012년 1월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오리온홀딩스(당시 오리온) 주가는 40.92% 올라 코스피(-7.05%) 수익률을 50%포인트 가까이 상회했다.

최근 들어서는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법정 구속 때도 재계는 기업 경영에 악영향이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증시그래프만 본다면 달랐다. 거래소에 따르면 삼성그룹주 전체 시가총액은 지난달 22일 현재 총 797조2000억원으로 이재용 부회장 구속 당일인 지난 18일(775조6000억원)보다 21조6000억원 늘었다.
앞서 18일 삼성그룹주 시총이 이 부회장 구속의 여파 등으로 총 28조원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나흘 만에 감소분의 약 77%를 이미 만회한 셈이다.

물론 재벌총수 구속 이후 주가지수는 올랐지만 코스피는 하락한 기업도 있다. 롯데의 경우 신동빈 회장이 경우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8년 2월~10월 수감됐을 당시 롯데지주 주가는 15.23% 하락, 코스피(-4.65%)보다 저조했다.

또 최태원 SK 회장이 분식회계 사건으로 처음 수감됐던 2003년 2월~9월 SK 주가는 16.29% 올랐지만 코스피(+23.96%)에는 못 미쳤다.

역대 총수 구속 사례로 볼 때 총수 구속 이후 주가가 오른 경우가 적지 않아 재벌 총수 구속이 경영 위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한 누리꾼은 "주가가 급락하고 천문학적인 돈이 증발할 거다, 개미들 곡소리날거다란 식으로 위기를 부풀려서 재벌총수의 실형을 피해보려는 얄팍한 술수가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사례를 보면 총수의 수감 사실과 주가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업마다 총수의 의사결정 비중 등 사정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영향이 있을 수 있어도 중장기 펀더멘털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도 반도체 업황이 좋은 점을 고려하면 주가에 대한 이 부회장 구속의 장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주가는 "선결재가 이뤄지는만큼 구속 당시의 그래프보다 2~3개월 후의 그래프를 봐야 한다"며 "너무 한 면만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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