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좁은 외나무 다리 양끝에서 다가온 두 마리 염소가 서로 먼저 가겠다고 뿔을 맞대고 으르렁거리다가 결국 두 마리 모두 냇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이솝 우화의 '염소와 외나무다리' 이야기다. 
 

벼랑끝전술도 있다. 북한이 북미핵협상 과정에서 취한 전술로 유명해졌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맞받아치기 전술'이라고 하고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한신이 조나라와 맞서 싸울 때 '배수진'(背水陣)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어로는 brinkmanship, brink(끝)+man(사람)+ship(이동*동사), 즉 사람을 끝으로 몰아간다는 것으로 특히 정치에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원하는 대로 유도하기 위해 상황을 아주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가는, 위기 정책이다. 한마디로 공갈(협박)전술이다.
 

치킨게임(chicken game)도 있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겁쟁이(치킨) 게임’이다. 자동차를 타고 양끝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겁먹은 선수가 먼저 핸들을 돌리면 지는 게임이다. 외나무다리 염소나 벼랑끝전술, 배수진, 치킨게임 모두 자신이 얻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극한상황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도 아니면 모, all or nothing이다. 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전술로 문명사회와는 맞지 않는 행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선거, 정확히는 4.7 보궐선거와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은 대선을 놓고 이런 비상식적인 극한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사심정치, 꼰대정치는 극을 달하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대의에 동의한다면, 본인의 주장대로 각 당 후보를 자체 선출하더라도, 실무협상싸지 거부할 이유가 없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폄하할 일도 아니다. 
 

단일화를 위해서는 각 진영간의 실무협상은 필수적이다. 경선방법과 정책공유, 선대위 구성, 더 나아가 당선시 서울시 인수위까지 합의할 것이 산적하다. 당장 메인 슬로건 하나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공보물 제작에만도 보통 수개월 걸리지만 비상상황을 감안해도 최소 한 달은 필요하다. 제대로 된 공보물도 없이 달랑 ‘야권 단일 후보’ 여섯 글자만 찍어 보낼 것인가. 당연히 2월 중순까지는 후보단일화 경선에 합의하고 2월말에는 후보를 확정한뒤 3월초에는 공동선대위를 구성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 국민의힘은 투 트랙으로 가면 된다. 하나는 자체 당내 경선 일정을 진행하고, 또한편으로는 야권후보단일화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시켜야 한다. 야권후보단일화 대의에 동의한다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필요하다면 야권 연대의 틀에서 신사협정을 맺고 각 당 후보 확정시까지 실무협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실무협상도 거부하는 김 위원장의 형태는 김정일. 김정은의 배째라식 벼랑끝전술과 다를 바가 하나 없다. 지금 김 위원장의 행태는 ‘사심정치’ 말고는 해석이 안 된다. 
 

벼랑끝전술이나 치킨게임 등 모두 상대적인 것인데, 김 위원장의 사심 행보 배경에는 안 대표 책임도 크다. 안 대표는 '후보단일화' 외에는 다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 대표가 2011년 10% 미만이었던 박원순 후보를 단박에 '양보'와 '단일화' 매직으로 서울시장을 만든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시중에서 도는 말처럼 정치내공이 '의사 안철수' 수준에 불과한 것이지 모르겠다. 안 대표가 달라졌다는데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모르겠다. 김 위원장의 몽니, 사심, 꼰대 그 무엇이든 정치와 선거에서는 제1 상수인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 등을 감안하면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그리고 우파나 중도 NGO 등에서 안 대표 지지 또는 김 위원장 탄핵 목소리가 넘쳐나야 하는데 그렇치 않다. 홍준표. 이재오 알박기 정치놀음 외엔 없다. 안 대표가 시장 출마를 선언한지가 한 달이 넘어가고, 선거가 앞으로 두달 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1인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인기업도 개발한 제품 상품성이 높게 평가되면 투자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안 대표가 지금 가장 빨리 해야 할 일은 과거의 동지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21대 총선 당시 본인은 '야권협력' 차원에서 국민의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객쩍은 소리다. 일방적인 지역구 무공전 선언은 대선 패배후 해외로 나가 여유롭게 책 쓰고 마라톤을 하고 있을 때 외롭고 힘들게 '안철수'를 믿고 지역구를 지켜온 60여명을 버린 것이다. 훌적 집나간 아버지만 믿고 굶주림을 참으며 기다렸던 자식들을 돌아오자마자 쫓아낸 꼴이다. 그리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지금도 그들에게 협조 요청조차 않고 있으며 소위 측근들은 몇몇 찾아온 이들을 문전박대하고 있다 한다. 이런 안철수에게 누가 선듯 지지선언을 하고 연대하려고 하겠나. 안 대표는 정치를 가슴 대신 '좌뇌정치'만 하고 있다. 선거를 사람 대신 AI만 믿고 치를 생각인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아직은 사람의 뇌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처럼 시시각각 능동하는 생물인 정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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