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비행기 조종석에 올라탔다.
“출발한다.”
“굿 럭!”
여자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땡큐. 아홉시에 거기서 만나.”

남자가 시동을 걸자 프로펠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렁찬 소리를 냈다. 10초쯤 지나자 비행기는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골프장 초원을 내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8번 홀 페어웨이가 다 끝나기 전에 사뿐히 날아올랐다. 숙련된 조종 솜씨였다.

경비행기가 무사히 날아오르자 페어웨이에 남아 있던 남녀는 재빨리 지프를 몰고 카트 길을 따라 골프장 밖으로 사라졌다.
수원은 일찍 일어나 식사도 거른 채 회사로 달렸다. 오늘은 신 고리 1호기의 제1차 시험 가동을 하는 날이었다. 본격적인 가동을 하려면 아직 많은 절차가 남아 있었지만 주제어 시스템이 처음으로 풀가동하는 날이라 수원에게는 여러 모로 의미가 깊었다.

수원은 달맞이 고개를 넘으며 차창을 내려 보았다. 새벽인데도 봄바람이 제법 훈훈했다.
회사 입구 도로로 들어서자 멀리 하늘로 우뚝 솟은 발전소의 돔이 보였다. 높이는 81미터밖에 안 되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유독 당당해 보였다.
“아니, 저건?”

그때 수원의 눈에 돔 너머에서 날아오는 소형 비행기의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는 점점 발전소 쪽으로 다가왔다. 레저용 경비행기였다.
‘여기는 비행 금지구역인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비행기가 원자로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수원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회사로 달렸다. 정문에서 청원 경찰이 거수경례를 했다.

수원은 차창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저게 웬 비행기예요? 여기는 비행금지 구역 아닌가요?”
청원 경찰이 하늘을 쳐다보더니 인상을 썼다.
“아니, 저런 미친놈!”

청원 경찰은 비행기를 확인하자마자 초소로 뛰어들어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수원은 다시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실은 원자로와 붙어 있는 건물 안에 있고, 주제어실은 원자로 외벽과 거의 밀착되어 있었다.

발전소 앞마당에 도착한 수원은 차를 세운 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했다. 비행기는 원자로 돔과 거의 부딪칠 정도로 낮게 떠서 다가왔다.
“헉!”
수원은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비행기는 돔을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의 옆면에서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흰 천에 붉은 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ANATOLY!”

그 순간 수원의 심장이 요동을 쳤다. 
‘원자로를 폭파시키려는 것이구나.’
머리가 아찔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직 일곱 시 전이라 출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는 서생면 쪽에서 날아와 월내우체국 방향으로 가다가 금세 유턴해서 다시 원자로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원자로에 상당히 근접했을 무렵 비행기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낙하산이 펴졌다.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이었다. 발전소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조종사가 떠난 비행기는 맹렬한 속도로 원자로를 향해 돌진해 왔다.
수원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어, 어-, 어.”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전신이 굳어버린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1초, 2초, 3초...

갑자기 세상이 다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진동했다.
“콰쾅!”
ANATOLY 플래카드를 휘날리면서 날아온 비행기는 마침내 원자로 돔에 충돌했다. 폭발과 동시에 엄청난 폭풍이 밀려와 수원의 몸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그러고는 자동차 뒤쪽 주차장에 패대기쳤다.
비행기가 원자로 돔에 내리꽂힘과 동시에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다. 곧이어 시커먼 연기가 원자로 돔을 휘감더니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수원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귀가 멍멍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나자 교대 근무로 회사에 남아 있던 본부 당직자와 가동 중인 발전소 근무자들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왔다.
“빨리 비상사태 콜 온!”

당직을 끝내고 막 나가려던 김승식 안전부장이 본부 행정실로 도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모든 관련 기관이 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해운대 경찰서, 부산 지방 경찰청, 해양 경찰청, 지역을 담당한 육군 사단 사령부, 국정원, 부산시, 울산시 등의 모든 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폭발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해운대 소방서의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고리 원자력발전본부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방사능 유출 우려 때문에 모든 통행을 차단시켰기 때문이었다.
김승식 부장은 즉각 방사선을 차단하는 방진 작업복을 입었다. 남아 있던 사원들도 방호복으로 갈아입었다. 우선 원전 본부와 떨어져 있는 홍보관에 임시 비상 대책실을 마련하고 본부장의 명을 받아 적색 비상경보를 내렸다.
대책본부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이종문 본부장이었다.

“서울 본사에는 내가 보고했다. 빨리 현장에 안전 요원을 투입해 상황을 파악하라. 방사선 유출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면밀히 확인하도록.”
김승식 부장은 방사선 측정 계기를 소지한 직원 두 명과 함께 신 고리 1호 원자로로 접근했다.
아직 불길이 치솟고 있어 열기가 대단했다. 다행히도 방사선 측정기는 모두 N.D로 나타났다. 방사능 유출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김승식 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가 폭발이 있을 수 있다. 경보를 풀지 말라!”
보고를 받은 이종문 본부장이 강경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신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폭탄 테러 사건은 국내 모든 대테러기관과 정보기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경찰, 국정원, 군부대 및 행정 관서에서 즉각 상부에 1보를 알렸다.

- 오늘 아침 여섯 시 55분.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발전본부 신 고리 제1발전소 원자로, 정체불명의 항공기로부터 공격 받아 폭발 사고 발생. 방사선 유출 여부 미확인. 공격 목적 미확인. 폭발물 종류 미확인. 대북 용의점 미확인.

경찰, 해양 경찰청, 육군 예비사단 정보 분석 팀, 항공대, 김해와 울산 공항 민간 항공 관련 부서, 부산 소방본부 등 사건 관련 기관은 모두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았다. 임시로 설치된 고리 홍보관 비상 대책실에도 확인 요청과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곧이어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사건 발생 25분 만에 청와대 상황실에 사건이 보고되었다.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즉각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이래도 우리가 핵 개발을 늦춰야 합니까?”
김운동 안보위원이 흥분해서 탁자를 쳤다.

국무총리 산하에 비상 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국방부, 행자부, 지식경제부, 법무부, 국정원 등의 고위 간부가 참여했다. 원자로가 폭파되었다면 방사능 오염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유례없는 비극이 한반도를 휩쓸게 될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국무총리 산하의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고리 본부 대책실에서는 관계 기관 고위 간부들이 상황 점검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헬리콥터로 급히 내려온 관계 부처 장관은 진상 파악에 주력하고, 함께 온 김종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방사능 유출 가능성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현장에 소방 요원들이 투입되었습니다. 불은 거의 소진되었습니다.”
이종문 본부장이 보고했다.
“방사능 측정 결과는 어떤가?”
김종호 사장이 물었다.

“원자로 자체는 안전합니다. 원자로의 반대편에 있는 터빈 실도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원자로가 방어벽 역할을 한 셈이지요. 부속 건물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종문 본부장의 보고에 김종호 사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인근 1킬로미터 반경의 건물 유리창은 거의 다 파손되었고 3백 미터 거리에 있던 자동차 몇 대가 폭파 압력에 흔들려 뒤집혔습니다. 인근을 지나가던 자동차와 버스가 충돌해 승용차 운전자가 사망하고 버스 운전사와 승객 열다섯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런. 직원들 피해는 없었나?”
“네. 시험 가동 예정 시간이 열두 시라 근무자가 없었습니다. 일찍 출근한 직원 몇이 부상을 입었을 뿐, 인근 초소의 경비원도 무사했습니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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