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터지는 진보진영 성추문... 도덕성에 큰 타격

정의당 사과 [뉴시스]
정의당 사과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또 다시 도덕성에 타격을 받게 됐다. 정의당은 지난해 벌어진 민주당 소속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비판하며 거리를 뒀지만 당 대표의 성추행으로 인해 그동안의 행보가 무색해졌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도덕적 우월성을 자산으로 삼아왔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에선 잊을 만 하면 성추문 사건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일요서울이 이를 알아봤다. 

-“진보진영 성추문, 삐뚤어진 동지의식과 후진 선민의식 탓”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소속인 장혜영 국회의원을 성추행해 지난달 25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정의당은 이날 김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하고, 김 대표를 직위해제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오늘 당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을 알려드리게 됐다”며 “지난 1월15일에 발생한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피해자는 당 소속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배 본부장은 “수차례 거친 피해자, 가해자 면담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다”며 “이 사건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심각성에 비춰 무겁고 엄중한 논의가 진행됐고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의당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당무 관련 면담을 겸한 식사자리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면담이 끝난 후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김 대표가 장 의원을 성추행한 것이다. 이를 장 의원이 지난달 17일 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 부대표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며 당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됐으며, 김 대표도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정의당은 당규에 따라 징계가 의결 때까지 김 대표의 당직을 중지하고 직위 해제했다. 김 대표는 직위 해제 결정에 앞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졌다. 정의당은 피해자인 장 의원의 의사에 따라 김 대표에 대한 법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배 본부장은 “가해자는 무관용 원칙으로 당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로 처리하겠다”라고 밝혔다. 

장 의원의 실명을 직접 공개한 데 대해선 배 본부장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밝힌 것”이라며 “장 의원이 직접 실명 밝히는 것을 결정했고, 그 결정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날 발표 직후 입장문을 내고 “함께 젠더폭력 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마음 깊이 신뢰하던 우리 당의 대표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충격과 고통은 실로 컸다”며 “또한 훼손당한 인간적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저는 다른 여러 공포와 불안을 마주해야 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인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것이 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자, 제가 깊이 사랑하며 몸 담고 있는 정의당과 우리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설령 가해자가 당 대표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당 대표이기에 더더욱 정의당이 단호한 무관용의 태도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피해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저에게 닥쳐올 부당한 2차가해가 참으로 두렵다”면서도 “만일 피해자인 저와 국회의원인 저를 분리해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영원히 피해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저는 거꾸로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저는 제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 안희정·박원순·오거돈에 김종철까지... 또 성추행 퇴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민주당 인사들에 이어 김종철 정의당 대표까지 진보진영의 성 비위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성희롱, 성폭력을 추방하겠다고 다짐하는 정당 대표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저에 대한 엄중한 징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서울·부산 재보선 선거와 관련해 “두 선거 모두 민주당의 귀책사유로 시작됐기 때문에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의해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김 대표는 박 전 시장 사망 당시 조문을 하지 않았던 장혜영, 류호정 의원에 대해 “피해자와 연대하는 측면에서 조문을 가기 어렵다는 발언을 이해할 수 있다”며 “정의당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절대로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보진영에서는 성 비위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2018년 비서의 성폭행 폭로로 자리에서 물러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민주당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잃었다. 그리고 안 전 지사는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안 전 지사는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은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6월과 12월에 각각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오 전 시장 사건이 알려지고 3개월 후인 지난해 7월에는 시민사회 운동의 상징이자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전해들은 박 전 시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어 박 전 시장의 사건을 둘러싸고 여권에선 고소인에 대해 사용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으로 2차 가해 논란이 이어졌다. 법원은 지난달 14일 다른 사건의 재판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를 보았음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 밖에도 나꼼수 멤버로 유명한 정봉주 전 의원이 2018년 성추행 의혹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영입 인재 2호인 원종건 씨가 전 여자친구의 미투 폭로로 인해 논란을 일으켜 당을 떠났다.

 

- 김대진 “진보진영, 전체주의 문화에 잘못된 습관 길들여져”

일요서울과 지난달 25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진보진영이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워 보수진영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지만 “2018년 미투운동 당시 진보진영의 민낯이 드러난 것처럼 이후에도 수많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이 날로 충격적인 소식만 들린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진보진영의 연이은 성추문 사건이 “삐뚤어진 동지의식과 후진 선민의식 탓에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고 그 원인을 진단했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단정은 어렵지만 그동안 진보진영은 여러 사회운동을 하며 전체주의적 문화에 잘못된 습관들이 이어져 온 거 같다”며 “과거 독재 정권에서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엔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민주화와 여성인권이 신장된 최근엔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진영의 반성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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