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지난 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정의당 김종철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한 서면 브리핑에서 쓴 표현이다. 그는 “지금까지 정의당의 모습에 비춰,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라며 국민을 걱정해 주었다. 더해 “또한 앞으로의 파장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라며 은근히 이 사건이 가져올 파장에 기대를 거는 듯한 표현마저 곁들였다.

한편, 같은 사건에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인권과 성평등 실현에 앞장서 왔던 정의당이기에 오늘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 관련 사퇴는 더욱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표현으로만 봤을 때는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더불어민주당보다는 훨씬 유연한 논평이다. 더군다나 더불어민주당은 사건 자체가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김종철 대표의 사퇴가 더욱 충격적이라고 했다.

어쨌든 충격적이다. 가해자가 정의당의 남성 당대표이기에 그렇고, 피해자가 정의당의 여성 현역 국회의원이기에 그렇다. 사건이 발생하고 3일간 고심한 끝에 피해자는 당에 당대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알렸고, 당은 일주일 동안 조사를 실시하여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김종철 당대표는 이 결과를 인정하고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가해자는 가해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기득권을 내려놓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의 사과의 뜻을 받아들이며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 문제에 대하여 매듭을 지으려고 생각했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건은 사건자체의 충격성 때문일까 피해자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제3자들이 기어코 막장드라마를 완성하겠다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으며, 기존의 사례들에 비추어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 식의 시나리오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번 정의당 김종철 당대표에 의한 성추행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일어나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있어왔던 수많은 성추행 사건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더더욱 안타깝다.

오는 4월 7일 정치권 성추행 사건이 초래한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애초 젠더나 미투가 선거전의 핵심이슈가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전초전 성격의 선거가 되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의 레임덕을 차단하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가늠하기 위한 선거로 활용하고 있으며, 야권은 단일화 문제로 치열한 수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권 성추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애초부터 그들에게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김종철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 대한민국 정치권은 이 사건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강구해야 하며, 혹여 이러한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을 때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책임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추행 사건 발생 후 정의당 내에서 있었던 지난 열흘 동안의 과정은 우리 정당사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다른 정치권 성추행 사건이 숨기고, 떠넘기고, 왜곡하고, 본말이 전도되는 등 가해자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용기(?)있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 다르다.

다만, 정의당의 원외당대표가 현역 국회의원에게 성추행을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를 조사할 때는 당대표 직무정지라도 해 놓은 상태에서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의 신년기자회견에서의 성폭력 운운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