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지난 26일, 일요서울은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았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죽음, 즉 고립사(孤立死)가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는 2018년부터 ‘공영장례서비스’를 최초 도입, 무연고자 장례 지원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매년 존엄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만 660명의 무연고자가 이곳을 거쳐 갔다. 전년도에 비해 55.8% 늘어난 수치다. 이날 기자는 직접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두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 같은 목숨 무게 지닌 이들, ‘무연고자’의 죽음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이곳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저소득시민을 위한 소박한 빈소입니다. 고인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공공(公共)이 배려해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장례의식 공간과 시간을 보장하고자 마련한 엄숙한 곳입니다.” 서울시립승화원 건물 2층 7번 빈소 앞에 붙어 있는 ‘그리다’ 푯말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오후 1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공영 장례가 진행될 7번 빈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 남짓한 공간에 단출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백합꽃과 파스텔 톤 장미꽃들 사이에 ‘근조(謹弔)’라고 적힌 액자 아래에는 고인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위패가 놓여 있었다.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가 계속 늘면서 장례식은 오전 10시와 오후 1시로 나뉘어 하루에 두 사람씩 두 차례 진행된다. 이날 오후 장례에는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와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활동가, 장례업체 직원 2명이 함께 참여했다. 시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 발길이 뜸했다.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장례 20여 분간 진행…화장 후 ‘추모의집’으로
60~70% 연고자 있지만 위임이 다수

오후 1시가 되자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매일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진행하는 박 이사는 고인 소개부터 시작했다. “주0순 님은 1932년생으로 지난 1월16일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사인은 미상, 유골은 무연고 ‘추모의 집’에 모셔질 예정입니다. 김0수 님은 1948년생으로 지난 1월17일 요양병원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사인은 영양실조로 인한 심부전입니다. 마찬가지로 유골은 추모의 집에 5년간 보관될 예정입니다.”

1분간 묵념을 하고 나서 홈리스 활동가와 장례업체 직원 하모씨는 향을 피우고 고인에게 마지막 식사를 올리기 위해 제사상에 차려진 밥그릇을 열고 수저를 놓았다. 이윽고 술을 따르고 제배가 이어졌다. 박 이사는 천천히 축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후 기자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혼자인 무연고 사망자의 외로움을 바라보며”로 시작하는 조사(弔詞)를 낭독하고 나서 국화꽃 헌화가 이뤄졌다.

20여 분간의 장례가 끝나고 고인의 시신을 화장하러 가기 전, 고인의 사망 진단서를 유심히 살피던 박 이사는 “고인 김 씨는 20살에 일가창립(一家創立)을 한 것으로 봐서 고아 출신이라 호적이 없어 뒤늦게 가정법원에서 호적을 만든 것 같다”며 “주 씨는 집에서 사망한 후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봐서 고독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고인의 정확한 사망 이유 파악은 어렵다”며 “고인의 지인이 빈소에 방문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이상 삶의 조각을 단편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무연고자 결정 절차 관련, 박 이사는 “어떤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안치되면 식장에서 구청으로 고인의 가족을 찾아 달라고 연락하는데 이때까지는 무연고자가 아니다”라며 “구청에서 가족을 찾아보면 30% 정도가 김 씨처럼 부모·아내·자녀 등 아무도 없는 무연고자이고 60~70%는 가족 등 연고자가 있음에도 위임을 하거나 구청에서 14일간의 기한을 주는 동안에도 답변을 아예 피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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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베이비박스 앞 아기도
‘혼자 아니다’ 위로…누구나 고인 애도할 수 있어

‘고인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에 박 이사는 “무연고 사망자는 특정인으로 정해놓고 볼 수 없다”며 “우리 이웃 중에 누구든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연고자 공영 장례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지난해 12월 베이비박스 앞에 버려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아기부터 쪽방촌에서 지내는 노숙인, 어린 자녀를 홀로 키우다 화재로 사망한 여성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무연고자 공영 장례로 치러지고 있었다. 

박 이사는 “안타까운 건 죽더라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 걱정하는 무연고자가 많다”며 “특히 쪽방촌에 사는 노숙인들이 이런 걱정을 많이 한다. 쪽방촌을 방문했을 때 한쪽 벽면에 무연고 담당이라며 내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2층 7번 빈소에서는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가 진행되고있다. [사진=김혜진 기자]

장례 주관 지침 개선 “아직 더 개선돼야”

기존 법률상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지침을 개선해 가족이 아니어도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했다. 고인과 가까이 지냈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어서 장례를 치를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반겼다. 하지만 법률상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권한은 고인의 사후에야 인정되기 때문에 장례가 지나치게 늦어진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사후 신청서를 내고 절차를 밟다 보니 장례를 치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박 이사는 “보건복지부가 제도 지침 사항을 개선했지만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실제 적용이 어렵다”며 “이 사항은 지침 사항이기 때문에 법률과 충돌할 수도 있어 실질적 법률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법제도의 한계도 지적했다. 박 이사는 “이와 함께 민법이나 의료법도 함께 개정돼야 한다”며 “가령 자녀와 오래 단절이 돼 자녀가 시신을 포기하더라도 형제들이 장례를 치러주지 못한다. 장사법에는 형제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의료법에는 직계 가족이 없는 사람에 한해서만 형제가 사망 진단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형제를 무연고자 장례로 치르는 안타까운 경우도 다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이제는 내 뜻대로 준비하는 ‘내 뜻대로 장례’가 필요하다”며 “가족이 있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울 경우, 가족이 없지만 새로운 관계의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줄 수 있는 경우, 가족도 지인도 없으면 같은 시대를 산 시민들이 장례를 치러주는 경우 이 세 가지가 공영 장례제도의 이상적인 틀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날 두 고인의 시신은 승화원 운구전용통로로 들어가 약 1시간 동안 화장됐다. 화장이 끝나고 커튼이 열리자 분골이 가루로 곱게 갈려 나온 모습이 보였다. 박 이사는 “영양실조가 사인이었던 김 씨의 관은 유독 가벼웠는데 유골 가루도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아마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이셨을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장례를 치른 사람들은 유골함을 들고 옛 무덤이라 불린 승화원 뒤편 ‘유택동산’에서 고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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