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육군 지역 사단 작전 참모와 서울의 경찰청장, 부산시장이 대책실에 들어왔다.
“현장 주변 1킬로미터까지 병력을 배치하고 출입 통제를 했습니다.”
사단 참모가 보고했다.

“경찰에서도 특공대가 대기 중입니다. 만에 하나 방사능 오염이 있을 것에 대비해 주민을 소개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장이 보고했다.
“다행히 방사능 오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종호 사장이 말했다.
“자폭한 조종사의 흔적은 찾았나요?”
국정원 부산 지부장이 부산 경찰청장을 향해 물었다.
“아직, 현장 감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장이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다가 대답했다.

“김해공항과 울산 공항에서는 사고 비행기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민간 비행기인 경우 비행 전에 신고하는 게 규칙이잖소.”
국정원 지부장이 물었다.
“신고하지 않은 정체 미상의 항공기였습니다.”

부산 경찰청장이 대답했다.
수원은 한참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정신이 드세요?”
수원이 사방을 둘러보자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물었다. 그러나 수원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뭔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었다. 수원은 엄청난 폭발음을 들은 순간 몸이 붕 떴다가 땅바닥에 곤두박질 친 것이 기억났다.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일어서려고 애쓰다가 다시 쓰러진 뒤로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물 좀 주세요.”
수원은 자신이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수원은 간호사가 주는 컵을 받으려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 팔과 다리가 아파왔다.
“제가 어떻게 된 거예요?”

수원은 주위에 있는 낯선 사람들을 보고 물었다.
“찰과상 정도의 부상이니 염려 마세요.”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수원의 귀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수원은 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원이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사들이 달려왔다.
“저, 제 귀가 멀었나요?”

수원은 가장 먼저 온 의사를 보고 물었다.
“아닙니다. 폭음으로 일어난 일시적 현상입니다.”
수원이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간호사가 재빨리 글로 써서 보여 주었다. 
“언제 회복되나요?”

수원의 물음에 다시 간호사가 글로 답해 주었다. 필담 아닌 필담이었다.
“한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여기는 어딘가요?”
“해운대 시립병원입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요?”
“회사 사람이 차에 태워 오셨어요.”

“회사 사람?”
“예. 주차장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네? 아, 그렇군요.”
수원은 주영준 차장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영준은 항상 7시 전에 출근했는데 그날도 회사 앞에 거의 이르렀을 때 폭발 사고를 목격했다. 황급히 사고 방향으로 달려가던 영준은 건물 앞에 쓰러져 있는 수원을 발견했다. 숨은 쉬고 있었으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영준은 즉시 수원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로부터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영준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수원은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결리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일어나 앉을 수는 있었다. 단지 귀가 안 들리고 멍멍해서 불편할 뿐이었다. 
수원은 빨리 회사로 연락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것을 보고해야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원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핸드폰이 없었다.
“핸드폰 좀 빌려 주시겠어요?”
수원은 간호사한테 부탁했다.
“병실에서는 핸드폰을 쓸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병실에서는 핸드폰 사용 금지라고요.”
간호사가 팔로 엑스 자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그럼 잠깐 복도에 나갔으면 하는데요.”

간호사는 밖에 나갔다가 빈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 수원은 간신히 휠체어에 앉았다. 간호사가 환자 대기실 쪽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다. 

마침 신 고리 폭탄 테러 사건을 긴급 뉴스로 보도하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원자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앵커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으나 화면 밑의 자막을 통해 수원은 뉴스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원자로는 안전. 
- 비행기에 폭탄 탑재한 것으로 추정. 

- 조종사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아.
이어서 신 고리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해설이 이어졌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소요 경비가 백만 달러나 드는 실험이었습니다.”
해설자는 심각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미국 무역센터 건물을 주저앉힌 보잉 767이 시속 560킬로미터로 원자로 돔에 충돌한다고 가정하고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결과, 원자로는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역센터 건물은 알루미늄과 콘크리트가 주 재료였는데, 알루미늄은 충격에 약해서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당시 실험 대상이 된 원자로는 다섯 겹의 방어벽을 갖춘 돔 형식이었습니다. 가장 안쪽의 연료 펠렛 방호벽을 비롯해 납, 철근, 철강 등으로 된 네 겹의 방호벽과 마지막 표피는 1미터 20센티미터의 철근 콘크리트로 지붕까지 씌워져 있었습니다. 바닥은 6.5 강도의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진 설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해설에 이어 관련 회사인 한국전력,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의 관계자들이 나와 신 고리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해 설명했다. 
“신 고리 1호기는 미국에서 실험한 원자로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폭탄 테러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앵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전하는 것으로 특별 방송을 마무리했다. 
“여기 나와 있었군요.”
영준이 수원을 발견하고 어깨를 툭 쳤다. 작업복 차림이었다. 영준의 목소리가 수원의 귀에 모기소리만큼 들렸다. 청력이 조금 돌아온 모양이었다.
“지금 적색경보 중일 텐데 현장을 벗어나도 되나요?”
수원은 고맙다는 말도 않고 업무 걱정부터 했다. 

“방금 해제되었습니다. 원자로는 안전하고, 메인 제어시스템도 큰 손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비행기가 부딪힌 지점이 주제어 시스템실의 반대쪽이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수원은 주 제어시설이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이거요.”
영준이 수원의 핸드백을 건네주었다. 
“제 차에 떨어져 있더군요.”

수원은 핸드백을 열어보았다.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누구 짓인지 밝혀냈나요?”
“아직 모른답니다. 총리 주재 대책 본부는 일단 해산했고 수사본부가 새로 설치  되었습니다. 한 차장의 목격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 문동언 경위와 낯선 남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수사본부 요원들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놀랄 틈이 없었어요. 바로 기절해 버렸거든요.”
수원은 문동언 경위와 함께 남녀에게 목례를 했다. 청각 기능이 거의 다 회복돼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었다.
“수사본부로 모시고 가려 했는데... 병원을 떠나기가 어렵겠군요.”
문동언 경위가 수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병원 안에 환자 상담실이 있어요.”
간호사가 제의를 했다.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들키지 않게 자리를 옮깁시다.”
일행은 비어 있는 진찰실로 들어갔다.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손진훈이라고 합니다. 부산 시경 수사과장입니다.”
문동언 경위와 같이 온 남자가 말했다.
“오늘 사고 현장에서 목격하신 걸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그러지요.”

“녹음을 좀 하겠습니다.”
같이 온 여자 요원이 녹음기를 탁자 위에 내놓았다.
“제가 회사 문을 막 들어설 때였어요. 경비행기 한 대가 우리 회사를 향해 낮게 뜬 채 다가오고 있더군요. 비행기가 신 고리 2호기에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왔어요. 저는 건물 앞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비행기를 지켜보았어요. 다시 돌아오던 비행기가 발전소 돔에 1백 미터 가까이 다가왔을 때 조종사가 밖으로 뛰어내렸어요. 그와 거의 동시에 낙하산이 펼쳐졌고요.”

“조종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요. 비행기를 목표물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하고 탈출한다는 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손진훈 수사과장의 말이었다. 
수원은 말을 계속했다.
“비행기는 그대로 날아와 돔에 충돌했어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불꽃이 솟아오르고, 저는 폭풍에 쓰러졌고요.”

수원은 그 충격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참! 비행기가 플래카드를 달고 있었어요. ANATOLY, 일곱 자였습니다.”
“아나톨리라고요? 거 보십시오. 그 놈들 짓이 틀림없습니다.”
문동언 경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손진훈 과장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설명 고맙습니다. 몇 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수원은 간호사가 가져다 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질문을 기다렸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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