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방송’ 수신료 인상, 국민적 공감대 실패 이유는?

[사진=KBS 이사회 제공]
[사진=KBS 이사회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달 27일 한국방송공사(KBS) 이사회는 월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논란이 됐다. KBS가 공영방송 재원 확보를 위해 41년째 동결된 수신료를 올리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인상 이유를 밝혔음에도 여론은 내외부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수신료 인상만 몰두해 추진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반응은 정치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3일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 사실상 불가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수신료 인상 문제는 난항이 이어질 전망이다.

- 공영방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
- 1인 가구 등 세대 분화 가속화…20년간 지속적으로 늘 것

KBS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월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40원으로 54% 인상하는 조정안을 정기 이사회에서 상정했다. 이 조정안은 KBS 이사회가 심의, 의결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제출한다. 방통위는 접수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인상안과 소정의 승인 신청 관련 서류를 검토한 후 의견서와 함께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 최종 확정한다. 수신료 인상안은 오는 3월 국회에서 상정 예정이다. 

KBS의 조정안대로라면 수신료는 2019년 기준 6705억 원에서 1조411억 원으로 늘고 예산 비중도 46%에서 53.4%로 증가한다. KBS는 수신료 조정에 따른 공적 책무 수행 계획으로 24시간 재난방송, 공정성 강화, 대하사극 부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같은 대기획 편성 등을 포함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종편·넷플릭스·유튜브 등 상업 매체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공익만을 바라보며 가겠다”며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론·정치권 반응 부정적“국민적 공감대 부족”

지난 2일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가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76%가 KBS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4명 중 3명이 이에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그 이유로는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서”라는 답을 꼽았다. 찬성은 13%에 그쳤다. 이 같은 악화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인상을 강행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 인상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편향성 논란에 휘말리는 데다 오는 5월, 늦으면 6월부터는 종편이나 케이블 등 유료 방송들처럼 중간 광고도 가능해진다. 동시에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차별성과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도 받고 있다. 특히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 이용이 활발해지며 TV를 안 보는 시청자가 늘자 이 같은 지적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 

평양지국 개설과 같은 수신료 인상의 일부 근거 항목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KBS는 북한 관련 부정확한 보도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며 정확하고 객관적 사실 보도를 위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다만 KBS를 ‘통일방송 주관 방송사’로 명시하기 위한 연구 용역, 또 평양 열린 음악회, 평양 노래자랑 등과 같은 콘텐츠 기획·제작까지 더해 50억 원 넘는 금액을 책정한 것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KBS는 현재 수신료 인상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한 상태다. 수신료 통과에는 정부·여당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KBS 이사회는 총 11명 이사 가운데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으로 구성됐으며 통과하려면 재적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인상안이 이사회를 통과하면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치권도 수신료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며 수신료를 전기료와 분리 징수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방송 문제를 담당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동의 없는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 “코로나 속 국민 고통 분담을 위해서 KBS가 무엇을 할지 ‘공정한 태도’를 취하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도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 사실상 불가 방침을 정했다.

‘수신료 인상’ 설득 어려운 까닭

수신료 인상안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수신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영방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50%에 불과했다. 영국 BBC 64%, 오스트리아 ORF 66%, 독일 ARD 70%, 프랑스 텔레비전 뉴스 58%, 네덜란드 NOS 81%, 일본 NHK 60% 등 약 60~80%에 달하는 해외 공영방송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또 로이터연구소 조사에서 KBS는 국내 언론매체 중 뉴스 신뢰도 순위가 JTBC, MBC, YTN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이 같은 이유들로 수신료 산정의 명확한 기준이 되는 사업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납득 가능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신료가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외부 감시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KEF)’가 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KEF는 독일 공영방송 ARD, ZDF, 도이칠란드 라디오가 지원 재정을 제대로 활용하는지, 지역 사회 기여 정도 등을 감시하고 필요시 수신료 조정안을 제안한다. 

지난 10년간 1000억 원 늘어

KBS가 거둬들인 수신료는 지난 10년간 1000억 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이 납부한 수신료 총액은 6790억24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11년(5778억8000만원)과 비교해 1011억 원이 늘었다. 매년 100억 원씩 증가한 셈이다. 1인 가구 등 세대 분화가 가속화하면서 TV 수상기 보유 가구에 전기료와 함께 강제 부과하는 수신료가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수신료는 20년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차례 반복됐던 KBS 수신료 인상 시도는 여론과 정치권의 불신을 극복하지 못한 채 또다시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납득시키고 재원 구조 개선에 나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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